이상열(대한정신약물학회 이사장, 원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북 정신건강복지센터장)

[라포르시안] 국내 정신장애 환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최근 5년 간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인해 치료받은 환자 수는 약 900만명에 육박한다. 2021년 진료받은 환자 수는 약 172만 명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보다 14.2% 증가했다. 코로나19 유행 전과 후 연령대별 환자 증가율을 살펴보면 20대가 42.3%로 가장 많았고 ▲10대 이하(33.5%) ▲30대(24.9%) ▲10대(22.1%) 등의 순이었다. 

급증하는 정신장애 환자 수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은 여전히 낮다는 것이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정신 약물 분류체계가 ‘기능‘이 아닌 ‘적응증’에만 맞춰져 있다보니 환자들의 오해와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신장애는 질병부담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이 국가의 정책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어 정신장애 환자들의 적기 치료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라포르시안은 대한정신약물학회 이상열 이사장으로부터 국내 정신장애 환자들이 겪고 있는 치료 접근성의 한계와 현실적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 보건당국 통계에 따르면 국내 정신장애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기존에 치료받지 않았던 정신장애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통계에 잡히는 경우도 있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늘어난 것도 이유이다. 특히, 아동·청소년 정신장애 환자의 증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동·청소년 시기에 부모로부터 충분히 양육 과정을 거치지 못했거나, 외상 경험 및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은 채로 성인이 돼  유병률 증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신장애 치료는 어느 한 시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내 청소년 인구 수는 감소세지만 이들의 정신건강이 담보되지 않고 성인이 된다면 국내 정신장애 유병율은 훨씬 더 증가할 수 있다. 
 
- 국제 의학저널인 '란셋(Lancet Infectious Dises)'지에 실린 연구를 보면 정신장애는 '질병부담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장애'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우울장애는 가장 높은 질병부담을 야기한다고 돼 있다. 정신장애 치료 비용을 재난적 의료비와 비교할 수 있나.

= 국가적 관점에서는 질병에 대해 단순히 의료적 비용만 생각한다. 하지만 의료적 비용 외에도 환자의 생산성 등 직업적 기능을 포함해 일상 생황에서의 상실률을 생각하면 우울증 등 정신장애의 질병부담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암은 진단과 치료 비용이 많이 들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직업적 기능이나 사회적 기능은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울증은 일상생활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비의료적 비용, 즉 사회적 비용의 손실이 훨씬 더 클 수 밖에 없다. 

- 정신장애 환자들의 약물 치료 접근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다. 어떤 이유 때문인가.

= 정신약물에 대한 오해가 많다. 대한민국 약전에서 정신약물의 분류체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빌리파이'의 경우 도파민 스테빌라이저라는, 도파민을 안정화하는 독특한 작용 기전에 근거해 우울증 치료제로도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아빌리파이는 조현병 약으로 돼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 그 약을 처방하면 ‘내가 왜 조현병 약을 먹어야 하나’라고 반응한다. 오늘도 비슷한 경우를 경험했다. '리보트릴'은 우리나라 분류 체계에서 간질에 처방하는 항전간제로 돼 있다. 이 약의 작용 기전은 항불안제이기 때문에 불안한 사람에게 처방할 수 있는데 환자가 왜 자신에게 간질약을 처방하냐고 반문했다.

이런 이유로 정신 약물에 대한 오해가 커지면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급성기 증상은 뇌가 가지고 있는 안정성이 깨져서 오는 건데, 환자들이 약물을 오해함으로써 중요한 치료적 시기를 놓치게 되면 증상이 만성화 되거나 치료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초기에 조속한 약물 치료를 통해서 빨리 증상을 잡으면 환자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정신약물의 분류체계를 살펴보면 과학적 작용 기전에 근거하고 있다. 이미 일본이나 유럽이나 미국은 분류체계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약물 분류 체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 식약처도 정신 약물에 대한 분류 체계를 최신의 과학적 작용 기전에 근거한 세계적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 

- 일부 정신약물에 대한 보험급여 미적용 등도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 우울증이나 조울병의 본인 부담률을 낮추면 치료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텐데 정부가 보험급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일부 정신약물 치료제는 약가를 놓고 정부와 제약사 간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문제는 그 기간만큼 환자들은 해당 약에 대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필요한 약제나 대안이 없는 경우는 관점을 환자에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자살 시도가 있는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스프라바토가 유일한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비급여라는 이유로 치료 접근성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다. 국가는 자살률을 낮추겠다고 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결국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국가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뜻이다. 국가는 신체 질병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민 삶의 질은 신체도 좋아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정신 건강이 담보되지 않으면 절대로 좋아질 수 없다.

조울병 환자들이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정받아 본인 부담이 감소함으로써 지속적 약물 치료를 하게 되면 재입원도 줄게 되고, 국가적 보건비용도 줄어들 것이다. 자살 사고가 있는 우울증 환자에게 임상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제약사가 협의해 적당한 가격에 스프라바토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환자를 생각하면 건강보험 급여 적용만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지역사회 차원에서 주민 정신건강 관리도 중요하지 않나.

= 현재 센터장을 맡고 있는 전라북도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전북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자살 고위험 대상자의 지속적인 치료 관리 및 자살 재시도율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자살 사고·자살 시도자 및 주요 우울 장애 환자에게 스프라바토 약제비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환자 1인당 연간 최대 240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스프라바토 1회 투여만으로 자살 사고가 30~40% 감소됐다는 다수의 해외 데이터가 있다. 이같은 데이터를 근거로 4회 투여까지 지원하고 있다. 

스프라바토 치료비 지원사업에 상당수 환자들이 지원했고 치료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사례를 들자면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공무원은 많은 약을 써봐도 듣지 않고 여러 병원에서 입원도 해봤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자살 사고도 심해졌다. 이런 환자가 전북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진행한 스프라바토 치료비 지원사업을 통해 증상이 개선돼 직장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고, 지금은 원활하게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 전북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자살 고위험군 치료 관리 사업이 각 지자체의 주민 정신건강 사업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 당연히 가능하다. 지자체의 승인이 중요하지만 전시적 행정이 돼서는 안 된다. 지자체의 담당 부서가 자살 사고나 자살 시도가 있는 중증 우울장애 환자들의 실질적 자살률 낮추기 위해 반드시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정신건강복지센타와 협의해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환자를 생각하면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면 각 지자체가 전북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롤모델로 삼아 의지를 갖고 사업을 확대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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