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 총무이사)

[라포르시안] 전 세계 의료기기업계가 유럽 MDR(Medical Device Regulation) 제도 시행에 따른 기술문서 및 라벨 개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같이 의료기기 변경허가 제도가 단단한 곳에서는 그 파급효과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의료기기 신제품이 획기적인 숫자로 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기업체들의 인력난이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다가올 갱신제 준비는 제쳐 두고 당장 MDR로 인한 국내 허가 등 사항 변경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변경허가 제도는 크게 중요한 변경만 관리하지는 않는다. 허가증 등에 기재된 각각의 개별사항 하나하나가 중요한 요소이다. 안전성, 유효성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해 사전 승인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경미한 변경 제도를 도입하면서 판단을 결정하는 흐름도가 함께 도입됐지만 의료기기 허가 규정에서의 경미한 변경사항과 무조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단순변경 또는 기술문서 심사 변경으로 진행해야한다. 따라서 사전 승인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에서는 변경 전·후 라벨이 혼재돼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것은 불가하다. 변경 이전 제품을 변경 승인 이후에도 일정 기간 수입해 팔아도 좋다는 유예기간(grace period) 같은 것도 없다. 반드시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그날 전후로 제품은 바뀌어야 한다. 물론 그 특정 시점은 허가 등 변경 승인일이며, 그 승인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허가 등 변경은 제조 또는 수입허가 변경이기 때문에 제조일자·통관일자 기준으로 조절을 하며 대부분은 예상 기간 전·후로 재고를 조절하고 선 출고를 하거나 미리 재고를 쌓아두는 등으로 제품 수급을 조절한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국가에서는 제도가 상당히 유연한 편이어서 대부분 성능이나 사용 목적에 큰 변경이 없다면 사전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본 역시 북미지역과 유사점이 많다. MDR을 도입한 유럽 또한 중대한 변경이 아니면 짧은 심사 기간을 거쳐 승인 후 변경된 제품을 생산하며 특정일 기준으로 제품이 바뀌어야 만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혼재된 제품 유통이 가능하다.

국내에서 가장 빈번하게 해야 하는 변경허가 중 하나가 유효기간과 원재료이다. 유효기간의 경우 제품 변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출시 이후 장기간에 걸쳐 실시간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제공되는 안정성 시험 결과 보고서로 허가 변경을 획득해야한다. 이 때문에 1~2년에 한 번씩 변경이 발생하게 되고, 이때마다 물류 담당자들은 재고 관리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제품의 변경이 없고, 동일한 시험 프로토콜로 안정성 시험이 이뤄져 유효기간이 연장됐음에도 반드시 사전 승인을 꼭 획득해야하는지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경미한 변경사항에 대해서는 허가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불필요한 절차적 규제를 줄이고, 기업의 부담을 경감시킴으로써 다양한 의료기기 제품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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