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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력 부족 '노동력 갈아넣기 → 불법의료 → 의료질 저하'...고통의 악순환 구조보건의료노조, 전국 99개 의료기관의 의사인력 실태 조사 결과 공개
의사인력 부족으로 “PA 대리수술⋅시술 등 불법의료 만연”
의대정원 확대 등 의사인력 확충 5대 요구 제안

[라포르시안] "담당교수는 5분도 안되는 환자 진료를 더 짧게 줄이기 위해 PA 간호사들에게 의사가 해야할 진료 업무를 떠넘기고 있다, 전공의 업무의 상당 부분도 간호사들이 하고 있다."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의 증언, 전국보건의료노조 '의사인력 실태조사' 중에서)

전국 의료기관 중 상당수가 심각한 의사인력 부족을 겪고 있으며, 이 때문에 부족한 의사를 대리하는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 인력 운영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PA 인력이 수술과 시술 등 의료법상 불법으로 규정된 면허 이외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이 적정 의사 인력을 확충하게끔 적극적인 정책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같은 불법의료가 고착화되고, 보건의료노동자의 노동강도를 강화시켜 이직을 부추기고, 이직으로 인한 인력부족은 노동강도 강화를 가속화하는 악순환 구조가 갈수록 굳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30일 '의사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과 증언대회'를 열었다. 증언대회 참가자가 의사인력 확충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30일 오전 10시 10분부터 조합 회관에 있는 생명홀에서 '의사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과 의료인력 부족에 대한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번에 발표한 실태조사는 올해 8월 16일부터 9월 2일까지 보건의료노조 산하 99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의료기관 특성별로는 사립대병원 29개, 국립대병원 10개, 특수목적공공병원 22개, 지방의료원 20개, 민간중소병원 18개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의료기관이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정원과 현원의 격차가 가장 큰 곳은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특수목적공공병원, 민간중수병원, 지방의료원 순이었다. 

의사 정원과 현원의 격차가 가장 큰 곳은 A국립대병원으로, 전문의와 전공의를 합쳐 정원 587명에 현원 481명으로  정원 대비 106명이 부족했다. 사립대병원 중 정원과 현원의 격차가 가장 큰 곳은 B사립대병원으로 정원 대비 73명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병원인 J지방의료원(25명)과 K지방의료원(20명)은 정원 대비 의사인력이 20명 이상 부족했다. 

의사인력이 크게 부족한 병원에서는 의사업무를 대체하기 위해 광범위한 PA 인력 활용이 이뤄지고 있었다. 

단일 의료기관으로 PA인력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곳은 한 사립대병원은 그 수가 200명에 달했다. PA인력 현황에 응답한 27개 사립대병원의 PA인력은 총 2,107명으로, 1개 의료기관 당 평균 78명으로 집계됐다. 9개 국립대병원의 PA인력은 총 671명으로 1개 의료기관 당 평균 74.5명이었다. 지방의료원 중에서도 20명이 넘는 PA를 활용하는 곳이 있었다.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의사인력 부족 의료현장 실태조사' 자료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불법의료행위가 꼽혔다. PA에 의해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불법의료행위는 대리처방, 대리동의서 작성, 대리수술 및 처치였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의사 아이디(ID)·비밀번호 공유를 통해 의사가 아닌 간호사 등이 직접 처방전을 대리 발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총 응답 의료기관 97개 중 73개(75.25%)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완전히 없어졌다’고 응답한 의료기관은 10개(10.30%)에 불과했다. 

환자·보호자에게 시술·수술동의서 징구를 의사가 직접 하지 않고 간호사 등에게 떠넘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총 응답 의료기관 97개 중 67개(69.07%)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완전히 없어졌다’고 응답한 의료기관은 13개(13.40%)에 그쳤다. 

특히 수술·시술·처치 등 의사업무를 의사가 직접 하지 않고 간호사, 조무사 등 타 직종이 대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총 응답 의료기관 95개 중 60개(63.15%)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완전히 없어졌다’고 응답한 의료기관은 17개(17.89%)에 불과했다.

의사가 부족하거나 의사를 구하지 못해 실제 진료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진료과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조사도 이뤄졌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비뇨기의학과, 일반외과, 일반내과, 정형외과 순으로 많았고, 의사인력 부족은 특정 전문 전료과에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의사인력이 있지만 80세 전후의 고령이어서 판독업무가 어려워 비용을 지불하고 외부에 판독의뢰를 하고 있거나 진료만족도가 떨어져 환자가 내원 병원을 바꾸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응답도 있었다. 

의사인력 부족은 심각한 진료 차질을 초래하고 있었다. 실태조사에서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지방의료원이 호흡기전문 의사를 구하지 못하거나, 산재환자를 대상으로 재활전문병원으로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에 재활의학과 의사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자들이 겪는 피해도 컸다. 피해 유형을 보면 ▲의사가 없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이나 시술·처치를 하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침 ▲수많은 환자들이 제대로 된 진료와 계획적인 진료를 받지 못함 ▲긴급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응급환자 대처가 늦어짐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대한 즉각적인 처치나 투약, 처방이 이뤄지지 못함 ▲의사가 없어 연계진료나 협진진료 불가능 ▲야간진료, 주말진료, 공휴일 응급진료 미실시 등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환자들이 먼 지역에 있는 타 의료기관으로 이동해 원정진료와 원정출산을 하거나 타 의료기관을 알아보고 이동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해 병원에서 근무하는 타 직종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고충은 의사업무를 대신해야 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가 불명확하고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의료현장의 현실이다. 

특히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자·보호자의 불만과 민원이 그대로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감정노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해 의료현장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식사시간 부족과 휴가 사용 불가 등 삶의 질도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보건의료노조 '의사인력 부족 의료현장 실태조사' 자료

의사인력 부족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업무 과중, 의사업무에 대한 회의감과 사기 저하 등 의사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적정 의사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사들은 장시간노동과 높은 노동강도, 업무 과중, 수면 부족, 번아웃, 이직에 내몰리고 있다.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상황을 보면 의사가 부족해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으며, 1년에 100일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야간당직 때 밤새 환자 돌보고 휴식시간 없이 다음날 주간 근무를 서면서 업무강도와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휴일 및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근무시간 초과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거나 1명의 당직의가 타 진료과 환자까지 모두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전문성도 떨어지고, 과도한 업무량으로 업무가 지연되면서 환자·보호자로부터 불만이 쏟아져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의사도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결국 병원을 그만두고 개원을 선택하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다시 의료기관의 인사인력 구인난을 심화시키고 의사와 보건의료노동자 근무환경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의사인력 부족 실태 증언에 나선 한 대학병원 소속 보건의료노동자는 "의사인력 부족은 진료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병원 운영에도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며 "응급실 당직의는 연봉 3억원을 주어도 구하기 어렵다, 상급종합병원이지만 소아 환자는 치료를 하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 공공병원 노동자는 “전공의 정원이 32명인데 현원은 10명이나 적으니 서로에게 업무가 가중되고 있고 전공의 업무가 과중하니 PA들이 이 일을 대신하게 된다"며 "의사를 만나기 어려우니 환자들의 불만도 가중된다. 수술환자를 제대로 입원시키지 못하고 있고 환자가 잠자는 밤늦은 시간까지 수술 동의서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코로나 전담병원이지만 감염내과 전문의가 아예 없는 어처구니 없는 실정이 지속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의사가 부족하니 당직 의사는 경험이 없는 신규 의사가 100명 넘는 환자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니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부족한 의사로 인해 대리 수술, 대리 처방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의사들도 고된 업무를 동료 의사와 나눠서 할 수 있도록 의사일은 의사가, 간호사 일은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의사인력 확충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의사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 ▲기피 필수 진료과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 마련해 추진 ▲우수한 의사 인력을 양성하고 고르게 공급하기 위한 의사 인력정책 추진 ▲불법 의료 근절하고 직종간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 ▲9.2 노정합의에 따라 의사인력 확충을 위한 사회적 대화 추진 등 5가지를 요구했다.

무엇보다 의사인력 확충을 위해서는 의대정원 확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OECD 보건통계 2022'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한의사 제외시 2.0명)으로 OECD 국가 평균치인 3.7명보다 1.2명(한의사 제외시 1.7명)이나 적다. 상황이 이렇지만 의대정원(3,058명)은 17년째 동결 상태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인력 확충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협과 병협, 간협, 보건복지부, 시민사회, 국회 등에 즉각적인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것"을 제안하며 "전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의대 신설 운동과 의대 정원 확대 운동, 공공의대 설립운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비롯한 의사 인력 확충 운동에 각계 각층이 함께 참가해 달라"고 제안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대 입학 정원 3,058명은 17년째 동결되어 있다. 의사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의사 인력 확충 없이 환자 안전, 공공병원 확충이나 한국의 의료의 미래는 없다. 10월 12일 노동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비롯해 의사 인력 확충 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겠다”고 밝혔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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