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가난한 이들의 생명, 돌봄이 대안이다

[라포르시안] 폭우의 피해를 다 회복하기도 전에 초강력 태풍 ‘힌남노’의 피해가 걱정이다. 언론은 실시간으로 태풍의 경로와 그 위력을 보도하고, 태풍의 직접적 영향권으로 예측되는 지자체(남성 고위공무원)들은 비상대책회의 등 재난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분주하다. 지난 재난의 가혹한 결과를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아래’의 불평등한 고통이 무색하게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가난 사파리’라 했던가(관련 자료 바로가기). 가난의 고통은 특히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구경거리 되기 쉽고, 재난이 아닌 일상에서는 그 고통이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관심조차 받기 어렵다. 가난을 재난과 죽음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는 한, 모순적이게도 가난으로 인한 죽음은 반복해서 재현된다. 최근, 우리가 또다시 목도한 가난의 죽음‘들’이 증거다. 

이 죽음들에 사회가 다 함께 애도하며 사회적 ‘죽임’이라 분노했다. 그 책임을 통감했는지 대통령은 곧바로 ‘특단의 조치’를 주문했고, 보건복지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전담팀’을 발족했다. 시민사회의 비판처럼 위기에 처한 이를 찾아서 필요한 제도를 지원하도록 체계를 개편하고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기술주의적 접근은 임시방편조차 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가난의 죽음이 그 증거다.

빈곤 활동가들은 수급 대상자를 발굴할 것이 아니라 빈곤과 불평등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찾고 또 제거하라 요구했다. 동의한다. 사각지대를 찾는다 한들 이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경우가 많고, 제도가 있다 한들 까다로운 자격조건으로 인해 가난을 증명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제도에 선정되기 어렵다는 인식은 비수급 빈곤 가구 및 개인이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신청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참고자료 바로가기).

우리는 가난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기에 더해 돌봄의 윤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돌봄 관계를 잘 보살펴야 한다. 가난의 돌봄은 일방의 ‘불가피한 의존’과 연관되어 있다. 기존 복지체계에서 가난의 돌봄은 자신의 힘만으로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 일방적으로 주는, 그래서 일방적으로 받는 돌봄이다. 하지만 실상 가난은 불가피한 의존인인 자기 자신, 가족, 또는 이웃 등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든, 돌봄을 제공해야만 하는 이들의 돌봄 필요 즉, ‘파생된 의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가난으로 인한 많은 죽음이 가난한 동시에 그 속에서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누군가의 부담과 이에 따른 취약성을 매개로 한다. 따라서 일방의 필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주고받는 돌봄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새로운 돌봄 필요에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가난은 파생된 의존인에 대한 차별과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평등의 결과다. 따라서 가난과 죽음의 관계는 선형적이지도, 일차원적이지도 않다. 특히 여전히 주된 돌봄 제공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가난과 죽음의 관계는 젠더 불평등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정확한 통계조차 없어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지만, 보도된 사례 대다수가 여성(가구)의 죽음이다. 2020년 기준 남성 가구주 가구 중 가구 빈곤율은 14.5%인데 반해 여성 가구주 가구에서 가구 빈곤율은 33.9%에 달한다(참고자료 바로가기). 실업 등 코로나19의 부정적인 경제 영향이 돌봄 부담이 주어진 (유자녀) 여성에게 불균형하게 컸음을 의미하는 ‘쉬세션(She-cession)’ 혹은 ‘맘세션(Mom-cession)’이 보여주듯(참고자료 바로가기), 위기나 재난 상황에서 여성 가구주의 빈곤 위험은 유독 크다. 한편, 빈곤의 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있는 한부모 가족 가운데 65.5%가 모자 중심 가구이며, 부자 가구(평균 약 247만 원)보다 모자가구(평균 약 169만 원)에서 평균 소득이 상대적으로 더 낮다(참고자료 바로가기). 이러한 결과는 가난의 문제에서 돌봄이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돌봄 제공자의 취약성을 강화하는 차별, 불평등, 억압, 착취 등의 구조적 부정의를 반드시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에서 건강 돌봄의 보장이 필수적이다. 가난과 질병은 악순환하며 공존한다. 또한 가난의 죽음은 소득 결핍을 넘어 불안정한 주거, 부족한 음식, 불충분한 의료이용, 불건강, 사회적 관계의 단절, 노동력 상실 등 삶의 모든 조건이 망라한 결과다. 나열한 많은 조건들이 또한 건강의 결정요인이라면 건강을 잘 돌보는 것에서 가난의 고통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돌봄의 윤리로 가난을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권력이 서로 연대하여 그 힘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돌봄은 관계에 그 본질이 있다. 보살핌과 공감은 결국 동원과 강요가 아닌, 참여와 협력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참여와 협력은 민주적 공공성으로 이어진다. 

돌봄의 결핍은 비의존적이고 이성적이며, 또 경제적인 개인의 존재를 전제한다. 매일을 살아가는 이들을 권리가 아닌 의무의 주체로 상정함으로써 취약한 이들을 차별하고 또 배제한다. 의존하는 이들의 힘이 약한 각자도생의 시공간에서 민주적 공공성은 실천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되고, 이곳에서 가난은 계속에서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존적 존재로의 개인, 그 개인들이 존엄하고 온존한 상태에서 서로 보살핌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구조로의 변혁이 필요하다. 돌봄 윤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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