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복지부, 9.2 노정합의 1주년 기념 토론회 열어
공공의료·의료인력 확충 등 핵심과제 이행 성과 미진
"구체적 진전 없으면 2023년 또 한번의 큰 투쟁 불가피"

[라포르시안] 코로나19 4차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8월, 전국보건의료노조 산하 124개 지부 소속 136개 의료기관이 동시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여기에는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 등 감염병전담병원은 물론 주요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도 대거 포함돼 있어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방역 대응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보건의료노조 산하 병원들이 총파업 투쟁을 결심한 건 정부와 병원들이 코로나19 유행 장기화로 불거진 공공의료 및 의료인력 확충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 없이 임시방편의 미봉책만 남발했기 때문이다.  

2020년 2월 이후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는 상태에서 국공립병원 등 전담병원에 소속된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확진자 발생이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속에서 제대로 된 감염병 대응체계도 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희생과 헌신을 강요받으며 근근이 버텨왔다. 

정부는 유행 확산세가 심각해지면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단편적인 치료병상과 인력 확보 정책을 제시하다가 유행이 한풀 꺾이면 유야무야 덮고 넘어가는 행태를 보였다.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하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방치한 채 민간 파견인력을 배치하는 임시방편 대책만 되풀이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에 시달리던 공공병원 의료진은 4차례에 걸친 유행 기간 동안 소진에 탈진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간호사 등 많은 보건의료 노동자가 이직과 사직으로 병원을 떠났다. 결국 참다못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며 총파업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관련 기사: 감염병전담병원 등 136곳 보건의료노동자 9월 2일 총파업 예고...이유는?

이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우리도 파업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후 1년 7개월을 버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전을 이대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절박한 상황에 대해 호소했다. 

다행히 감염병 전담병원 등 전국 136개 의료기관이 9월 2일 총파업 돌입 5시간 앞두고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간 노정교섭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역사적인 '9. 2노정합의'가 도출된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와 복지부는 9.2 노정합의에서 공공의료 확충과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처우 개선등에 합의했다. 주요 교섭 타결 내용을 보면 ▲코로나19 대응 의료인력 기준 마련 ▲감염병 대응 의료인력에 생명안전수당 지급 제도화 ▲2025년까지 70여개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의 책임의료기관 지정 운영 ▲공공병원 신축·이전신축·증축 지원 등을 담았다. 

또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수 제도화 ▲2026년까지 300병상 이상 급성기병원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제도 전면 확대 시행 ▲교육전담간호사제 민간의료기관까지 확대 시행 ▲2022년 1월부터 야간간호료와 야간전담간호관리료를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 ▲5대 무면허 불법의료행위 근절 ▲예측가능하고 규칙적인 교대근무제 시범사업 시행 ▲비정규직 고용 제한을 위한 제도개선 등이 노정합의에 포함됐다. 

보건의료노조는 9월 1일 보건복지부와 공동 주관으로 9.2 노정합의 1주년 기념 국회 토론회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는 9월 1일 보건복지부와 공동 주관으로 9.2 노정합의 1주년 기념 국회 토론회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오늘(2일)로 '9.2. 노정합의' 1주년을 맞았다. 지난 1년 간 노정합의 사항은 얼마나 이행됐을까. 공공의료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은 진전이 있었을까.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와 보건복지부 간 9.2 노정합의 1주년을 기념해 이행 경과와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토론회가 지난 1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국회의원들은 공통적으로 ▲코로나19 생명안전수당(감염관리수당) ▲교대근무제 개선 시범사업 시행 ▲야간간호료 확대 등 노정합의 내용 중 일부가 이행됐지만 의사인력 확충과 국립대병원 보건복지부로 소관부처 이관 등의 합의사항은 전혀 추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공공의료 확충 부문 이행에 있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국회 질의에서 지속 추진 의지를 밝히고, 이기일 보건복지부 2차관 역시 보건의료노조를 직접 찾아 이행 의지를 밝힌 만큼 정권이 교체되어도 노정합의 이행은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한다”며 “복지부는 물론 여야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이행을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듯 앞으로도 노정합의 이행을 위해 함께 힘써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토론회 영상 축사를 통해 “(노정합의 이행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면이 많다고 느끼실 것”이라며 “정부는 노정합의의 원만한 이해를 위해 보건의료 현장에서 헌신하시는 여러분과 신뢰와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이 '9.2 노정합의 이행경과와 이후과제– 역사적 합의, 역사적 이행'을 주제로 토론회 발제를 맡았다.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9.2 노정합의는 코로나 위기가 곧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위기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2대 핵심과제(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처우개선)를 중심으로 20여개 세부 과제를 국가 정책대안으로 확정하고, 보건의료제도 발전의 기회로 전환시킨 역사적 합의"라며 "따라서 이행 또한 '역사적 이행'이 되도록 합의 주체인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는 다시 한번 첫 마음으로 합의이행을 위한 각오와 결의를 다져야 한다"고 9.2 노정합의 이행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9.2 노정합의 이후 1년간 이행 상황을 보면 26개 합의 사항 중 이행 완료는 소수이고, 진행형인 사업이 대다수이다. 이행 완료된 합의사항은 생명안전수당 법개정 및 예산 확보, 야간간호료 확대, 교대근무제 시범사업 시행 등이다. 반면 의대정원 증원과 국립대병원 복지부 이관 등은 노정합의 이후에도 진전이 없는 상태다. <관련 기사: 간호사 교대제 개선 시범사업 실시...야간·교육전담 간호인력 지원>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앞으로 ‘공공의료, 보건의료인력 3+3 핵심과제’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노정합의 내용 중 보건의료인력 확충 3대 핵심과제로 의사 인력 증원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 기준 제도 ▲의료기사 등 직종별 인력 기준 마련을 꼽았다. 공공의료 확충 3대 과제로 ▲70개 중진료권 중 미지정 28개 지역 공공의료 확충 계획 ▲공공병원 공익적 적자(필수 경비 지원) ▲공공병원 설립 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및 운영비 중 지방비 부담 완화 방안 마련을 제시했다.

이러한 핵심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관련법 개정과 예산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호 원장은 “노정합의안에 대부분 주요 과제 추진 기한이 올해 말까지로 명시된 만큼 남은 하반기 이행점검에 더욱 집중하되 구체적 진전이 없으면 2023년 또 한번의 큰 투쟁이 불가피하다”며 “노정합의안에 국무총리실이 노정합의 이행점검과 부처간 역할 조정을 맡기로 규정한 만큼 의사 인력 확충, 70개 중진료권 중 28개 미지정 지역 공공의료확충 등 어려운 과제와 관련해서는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노정합의 이행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조정과 조율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메르스 때처럼 공공병원에 대한 지지 잊혀질까 걱정"

발제에 이어 진행한 토론에서 9.2 노정합의가 구체적인 이행로드맵을 바탕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조승연 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코로나19 사태를 3년째 맞으며 긴장감이 떨어져 메르스 사태 이후와 같이 공공병원에 대한 지지가 잊혀질까 우려스럽다”면서 “노정합의는 산업별 노동조합과 정부의 합의이자 전국민이 함께한 합의이며, 특정 보건의료노동자나 사용자, 정치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라며 이행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미영 대한간호협회 이사는 “노정합의로부터 1년이 흐른 만큼 현장 목소리를 수렴해 수정·보완하며 이행돼야 한다”며 노정합의에 따라 진행 중인 교대근무제 개선 시범사업과 교육전담간호사제도 관련 지원 전폭 확대, 의료법 개정을 통한 간호사 필수 배치기준 상향 등을 제안했다.

박 이사는 "9.2 노정합의로 진행하고 있는 보건의료인력 확충방안은 간호사들의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을 통해 사직.이직율을 줄이고 숙련된 경력간호사를 보유함으로써 간호서비스 질향상과 환자안전 및 의료비절감을 보장한다"며 "그러나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한 정책을 뒷받침하는 법이 없어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에 종합적·체계적으로 간호인력을 관리할 수 있는 간호법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관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연구실장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실린 필수·공공의료 인력·인프라 강화를 통한 지역완결적 의료체계 구축은 9.2 노정합의 내용과 매우 밀접하기에 정부가 구체적인 이행계획 로드맵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며 “특히 의료기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인력 양성·확충에 가장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정원 확대를 통한 의사인력 증원에 대해서는 단순히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무엇을 위한 의사 인력 증원인지, 어떤 전문가로 양성할 것인지 목적을 명확히 해서 인력 증원 문제를 봐야 한다”면서 “검증된 의료행위 중 의사가 다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간호사를 포함한 다른 의료인력이 일부 지원하는 것까지 열어두고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의사인력 증원 관련해 “풀 수 있는 문제는 먼저 풀어야 한다”며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으로 우선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양정석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가 십수 차례 협의를 거치며 상호 이해를 구축했기에 이를 기반으로 노정합의 결과를 만들고 지금까지 이행협의체 등을 통해 계속해서 이행·점검해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노정협의체와 각 분야(공공의료·보건의료인력) 실무 협의체를 통해 소통하고 합의문 내용 사항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이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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