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재(벤처기업협회 부회장 겸 디지털헬스케어정책위원장)

[라포르시안]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을 도입한 이후 공무원·교직원 및 사업장 규모별 적용 대상을 점차 확대해왔다. 이어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고 1998년 국민의료보험법을 제정해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했다. 그다음 해에는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했고, 지역별 흩어져 있던 보험자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단일화했다. 1999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건강보험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다른 나라 의료보험과 비교해 장점이 뚜렷하다. 상대적으로 보험료 부담이 적고 의사를 만나기도 쉽다. 물론 건강보험 보장률(2020년)은 65.3%로 OECD 평균 공공부문 부담률(2017년) 73.6%에 비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흔히 겪는 질환 대부분은 보험 처리가 되기 때문에 국민이 체험하는 의료 편의성과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문제는 급속한 인구고령화로 건보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현황을 살펴보면 2018년 이전까지는 수입과 지출이 엇비슷하게 상승하다가 2018년을 기준으로 지출이 수입을 앞서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지출이 수입보다 약 3조 원이 더 많아졌다. 결국 이대로 가면 건보재정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건보재정이 고갈되면 의료서비스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등 사회적 혼란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사실 고령화로 인한 건보재정 악화는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정부는 1999년 국민건강보험법이 만들어지기 3년 전인 1996년부터 인구정책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출산을 독려해 적정 인구 유지에 정책 초점을 맞췄고, 2005년 5월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법’을 제정해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40년이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34.4%에 달한다. 또 2070년에는 인구의 46.4%가 65세 이상 노인이 될 것이고, 이는 15~64세 인구를 합한 것보다 많다. 더욱이 2020년 건강보험에서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3%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 2040년에는 68.4%, 2070년에는 전체 건보재정의 약 80%를 노인 의료비로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건보재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건보재정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거나 건보공단이 병원과 의사에게 지급하는 비용인 진료비 지불체계를 개선해야한다. 아니면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가 현재 평균 6.99%에서 적어도 독일(14.6%)이나 프랑스(13%)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저렴한 건강보험료로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체험한 국민이 낮은 수준의 의료서비스에 만족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이 방법들은 우선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돼야하며 사회적 합의와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해 당장 활용하기도 어렵다.

그러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없을까?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에서 해결방안을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FDA 승인을 받은 다수의 디지털 치료기기가 사용되고 있다. 그 종류도 다양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공항장애부터 약물중독·불면증·당뇨까지 다양한 질환 치료에 사용 중이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환자 스스로 질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불필요한 진료비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곧 1호 디지털 치료기기가 출시를 앞두고 임상시험 중에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가 출시되기 시작하면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이나 병원에 자주 방문하기 힘든 환자들, 1인 가구 등의 진료비와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만성질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대형병원에 쏠려 있는 의료 수요도 분산시키고 더 나아가 국민이 사용하는 진료비 총액 자체를 줄여 건보재정 악화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국민이 편익을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당연히 자원을 투입해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산업화를 통해 전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이 국민 건강과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자 다양한 정책을 만들고 있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고령화에 대비하고 건보재정 악화를 막으며 국민 건강을 효율적으로 지키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업계는 산업 특성상 중요한 책무가 주어진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한다. 국민 건강과 관련된 산업인 만큼 정부가 정한 규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규제 속에서 발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국민에게 보탬이 되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빠르게 개발해 적정 가격에 공급해야한다. 무엇보다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책무의 중요성을 견지해야만 정부와 국민이 신뢰하는 가운데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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