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연세광화문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라포르시안] 국내 우울증 환자 증가세가 가파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5년 간 우울증 진료 추이를 보면 지난해 우울증 환자 수는 약 93만명으로, 2017년 약 69만명 대비 약 35% 증가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자살시도자의 상당수가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초기의 적극적인 치료와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증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인 치료법은 없었으며, 일반적으로 자해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원 또는 우울 증상 경감을 위한 경구용 항우울제가 사용돼 왔다.

치료법이 잘 듣지 않을 경우 환자들은 증상 지속으로 인한 부담과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극단적 생각까지 하게 될 수 있으므로, 생명 구조 차원에서도 즉각적이면서 우수한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치료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져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스프라바토 나잘스프레이(성분명 에스케타민 염산염)'가 항우울제로는 최초로 치료 저항성 우울증으로 진단된 성인의 치료를 위해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내 사용 허가를 받았다. 이어 급성 자살 생각 또는 행동이 있는 성인의 중등도에서 중증의 주요 우울장애에서 우울 증상의 빠른 개선을 위해 경구용 항우울제와 병용해 사용토록 허가 받았다. 스프라바토는 3상 임상시험을 통해 극단적인 수준의 자살 가능성이 있는 중증 우울증에서의 임상적 이점을 입증했다. 라포르시안은 연세광화문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상현 원장을 만나 과거 중증 우울증 치료의 미충족 요구와 급성 자살 생각 또는 행동 등이 있는 중증 우울장애에서 스프라바토의 임상적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 우울증 환자 수가 지속적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에서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사회경제적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비해 젊은 층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한계에 부딪혀 좌절을 겪는 경우가 늘면서 우울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증가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과연 통계처럼 젊은 환자만 늘고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도 던질 수 있다. 임상 현장에서 느낀 바에 따르면 10~20대는 정신과 치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40대 이상의 상당수는 정신과는 정신병자가 가는 곳이라며 낙인을 찍는 등 세대별로 인식의 차이가 크다. 즉, 연령대가 높은 우울증 환자는 증상이 있어도 정신과에 대한 편견으로 의료기관을 찾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신과 상병코드인 F코드 역시 민간보험과 취업 등에서 사회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어 적극적 치료를 저해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데다 여러 이유로 적극적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우울증이 발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아픈 것과 몸이 아픈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몸이 아플 때는 병원에 쉽게 가지만, 정신과는 견디기 힘들 정도가 아니면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신과 치료는 정신력이나 의지가 약해서 받는 게 아니라, 여러 환경적인 요인으로 정신적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것이다. 환자로서도 약물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증상에 맞는 효과적인 약으로 치료받는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 늘어나는 환자만큼 다양한 증세의 우울장애가 있을 것 같다. 중증 우울증은 어떻게 파악하나.

= 우울장애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만든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5가 있고 여기에 전반적 기능 수준을 평가하는 GAF 척도가 있다. 환자가 증상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불면이나 공황장애로 나타나는지, 자살 생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시도를 했는지 등에 대해 중증도 분류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환자의 증상을 그 기준에만 맞추기에는 마치 법전처럼 딱딱한 느낌이 있다. 환자가 우울, 불안, 좌절 등으로 일상에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그로 인해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인지에 따라서 분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중증이나 경증 혹은 중등도의 우울증을 구별할 때 단순히 증상만으로는 구별하지 않는다. 치료를 통해서 좀 더 환자를 알아가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가 꾸준한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으면 어느 정도 호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나아진 게 없고, 특히 자살 시도 등 정신과적 응급상황이 있으면 중증 우울증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의사 입장에서 환자가 살아있어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중증 우울증 환자는 어떻게 치료했나. 중증 우울증에 대한 표준치료가 있나.

= 표준 치료가 있긴 하지만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 알고리즘을 제시했다는 정도일 뿐, 중증 우울증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했다는 측면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울증 치료에서 세로토닌(serotonin) 성분의 항울제를, 또 상황에 따라서는 기분 조절제 등의 약물을 사용했다.  

그런데 자살 계획이나 시도를 한 중증 우울증 환자 중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된 한도에서 약을 아무리 써도 반응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른 약으로 교체하기도 하고, 항우울제 외에 기분조절제나 신경안정제 등 여러 가지 약들을 써보지만 확실한 효과를 전혀 못 느끼는 환자들이 많아 안타깝다. 

- 지난 2020년 급성 자살 생각 또는 행동이 있는 성인 중증 우울장애에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치료제인 '스프라바토'가 출시됐다. 3상 임상시험에서 입증한 효과가 실제 환자 치료에서도 확인이 되는가.

= 환자를 치료하면서 스프라바토의 효과를 확실하게 확인했다. 한두번 투약 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해서 치료를 그만 두는 환자와 지속적으로 투약하는 환자 사이에 분명하게 경과 차이가 난다. 스프라바토로 치료가 잘 된 환자들을 보면 충분히 오래 치료를 받았고, 환자와 보호자가 정신과 치료에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최소한 1년 정도 데이터를 두고 봤을 때도 확실히 효과가 유지되는 환자들이 많다.  

- 스프라바토가 자살 위험이 있는 중증 우울증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혜택은 무엇인가. 

= 스프라바토가 중증 우울증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살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스프라바토를 몰라서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 자살을 하는 중증 우울증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스프라바토로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스프라바토는 본인이 가치없다는 생각을 하고 힘든 세상을 열심히 버티느니 차라리 죽음이 편하겠다라는 절망과 우울의 늪에 빠진 환자에게 구명튜브를 던져주는 것 같은 역할을 한다. 

중증 우울증으로 우리 의원을 찾아온 대학생 환자가 있었다. 다른 의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다가 나아지지 않고 자살위험성이 높아 입원 권유를 받은 환자였다. 부모에 따르면 이 환자는 자신에게 들어간 매몰비용에 비해 살 가치가 없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부모가 입원을 꺼려하다가 스프라바토라는 약이 있는 것을 알고 우리 의원을 방문했다.

이 환자에게 스프라바토를 처방했는데 드라마틱하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환자의 어머니로부터 감사 메일을 받았다. 환자가 스프라바토로 치료 후 중증 우울증을 잘 이겨내 취직해서 회사도 잘 다니고, 표정도 밝아져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어두운 절망의 시기에 나와 스프라바토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 스프라바토 처방 후 이상반응은 없었나. 또 스프라바토의 주성분인 에스케타민은 마취제인 케타민의 광학이성질체이다. 오남용 우려는 없나.

= 지금까지 약 40여 케이스의 스프라바토 처방 경험이 있는데 대부분 부작용은 없었으며, 해리 증상을 보인 환자는 두명 정도였다. 경구약에 비해 부작용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많은 이들이 스프라바토의 주성분인 에스케타민이 케타민에서 추출했다는 점에서 의존성 오남용의 우려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경험에 비쳐볼 때 스프라바토는 황홀감이나 행복감을 주는 약이 아니다. 약간 어지러워하거나 졸려하는 정도다. 투약 후 기분이 좋다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의존성 오남용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 의원 내에 스프라바토 전용 클리닉을 별도로 둔 이유가 있나.

=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케타민은 상당히 오래 연구된 성분이다. 전공의 당시 관련 논문들을 접하면서 국내에도 중증 우울증 환자를 위한 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원 후에도 환자들에게 정신치료와 함께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한계를 많이 느꼈다. 환자가 위험하다 싶으면 대학병원으로 입원을 권유하는 것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던 중 에스케타민 성분의 스프라바토가 출시되는 것을 보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스프라바토를 처방한 이후 입원 권유를 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스프라바토 클리닉에서는 환자가 의사의 지도 감독 하에 투약 후 2시간 동안 편안한 상태에서 쉴 수 있도록 했다.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CCTV가 설치돼 있으며, 환자가 부작용을 호소할 경우 의사가 바로 올 수 있도록 비상벨도 달았다. 의원급에서는 공간적·인적 제약이 많아 별도 클리닉 운영을 시도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프라바토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살을 생각·시도하는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별도 클리닉을 두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 현재 스프라바토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나.

= 스프라바토에 접근조차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 그런 환자들에게는 아예 스프라바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말해봤자 희망 고문이기 때문이다. 빚을 내면서 약을 쓰라고 권할 수가 없다. 스프라바토가 필요한 환자가 자신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더욱 큰 절망감을 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는 아예 스프라바토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는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시급하다. 환자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다가 근로 능력을 상실하거나 자살을 하게 되는 측면과 스프라바토로 도움을 받는 것을 장기적으로 비교한다면 건보 적용을 하는 것이 국가적 이익이 클 것이다. 다만, 관련 연구가 뒷받침되고 어느 정도 사회적 동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울증에 비싼 약을 써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를 함으로써, 그 사람이 사회에 국가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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