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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재료 생산·수입 중단 고려하는 업체들...공급대란 오나원자재 값·물류비·인건비 상승에 제조·수입원가 급증
업계 “수익성 악화로 공급 중단 고려…환자 피해 우려”
이상수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의료기기 공급위기 TF위원장은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건강보험 운영의 기본원칙은 환자 생명을 구하고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필요한 의료기기를 적시에 공급해 의료공백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인상을 통한 선제적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라포르시안] 2019년 3월 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한 엄마의 다급한 글이 올라왔다. 폰탄 수술, 즉 심장 우심방과 폐동맥 우회술에 필요한 도관(소아용 인공혈관)이 없어 3살 아이가 수술을 받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해당 소아용 인공혈관은 고어(GORE)사가 국내 독점 공급하다 2017년 10월 한국시장에서 철수한 후 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 확보한 재고가 소진되자 수급 차질이 생겼다. 고어사가 한국에서 철수한 이유는 소아용 인공혈관에 책정된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앞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5년 치료재료전문평가위원회를 열고 2016년도 인공혈관 치료재료 가격을 일괄 인하한 바 있다.

당시 사태를 두고 환자단체는 “의료기기기업체가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재료 공급을 중단한 것은 무책임한 반인권적 횡포”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 턱없이 낮은 치료재료 보험수가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공급사에 모든 잘못을 전가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인공혈관 대란’은 환자 수술·치료에 필수적인 치료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이 왜 중요한지를 정부와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치료재료업체들이 원자재 값·물류비·인건비 상승으로 생산·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오랜 시간 저수가 기조 아래  미·중 무역 분쟁,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연이은 경제 악재와 고금리·고환율·고물가·고임금 ‘4중고’까지 겹치면서 제조·수입원가 급증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제조 또는 수입을 축소하거나 공급 중단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실시한 ‘2022년도 치료재료업계 경영환경 설문조사’에서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생산·공급 차질이 발생한 제품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에 나선 회원사 100개사 중 국내사 69.2%는 “생산 및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수입사 또한 67.1%가 “제품 가격 상승으로 수입에 차질이 있다”고 답했다.

물류비 또한 치료재료 제조·수입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국내사를 대상으로 ‘원부자재 수급에 있어 물류 어려움으로 제품 생산 차질 발생 여부’를 묻는 질문에 70%가 “제품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입사 역시 79%는 물류 어려움으로 제품 수입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제조 및 수입 차질이 발생한 제품에 대한 대안’을 묻는 질문에 28개사(31.1%)는 ‘생산 또는 수입을 축소하거나 중단’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경향은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 회원사 4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인건비 상승을 해결하기 위해 고려하고 있는 방안’(중복답변)을 묻는 질문에 19개사(48.7%)는 ‘수익성이 낮은 품목의 제조 중단’이라고 응답해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인상 요청’(22개사·56.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수익성 낮은 치료재료 생산·수입 중단 고려”

의료기기산업협회와 의료기기조합은 "치료재료업체가 제조·수입원가가 급증해 영업이익 감소 등 수익성 악화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10% 이상 한시적 일괄 인상’을 정부에 요청했다.

양 단체가 한 목소리로 정부 긴급지원을 요청한 것은 그만큼 치료재료업계가 겪고 있는 현 위기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국내 치료재료 관련 업체의 A상무는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내외적 경제 여건 악화로 원자재 값과 물류비용이 증가해 제조원가가 급증했다”며 “주로 중국에서 들여오는 플라스틱·PVC(폴리염화 비닐) 등 원자재는 제품별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20% 가격이 올랐다”고 밝혔다.

그는 “원자재는 공급사 수급이나 사용량 등 변동성을 예측해 사전 단가계약을 통한 충분한 양을 비축해놨기 때문에 아직은 큰 어려움이 없다”며 “하지만 원자재·부속품 가격이 계속 오르고 물량 확보 또한 어려워지고 있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실시한 2022년도 치료재료업계 경영환경 설문조사에서 ‘제조 및 수입 차질이 발생한 제품에 대한 대안’을 묻는 질문에 28개사(31.1%)는 ‘생산 또는 수입을 축소하거나 중단’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재와 함께 운송·물류비 증가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으로 중국 상해 봉쇄 당시 해상운송이 막히면서 원자재·부속품 수입을 위한 항공 물류비용만 20~30% 증가했다.

A상무는 “현재는 해상운송이 다소 원활해졌지만 지금도 미국 수출 제품은 납품 일을 맞추기 위해 항공을 이용하고 있다”며 “항공운송과 함께 국내 물류비 또한 약 10% 증가해 비용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저임금·평균연봉 인상 등 인건비 상승은 제조원가 급증의 주된 요인이다. A상무는 “국내사는 수작업으로 치료재료를 생산하다보니 인건비 비중이 높다”며 “2019년 대비 2021년 인건비가 24.23% 증가했다”며 “코로나로 외국인 노동자가 떠나면서 생산에 큰 공백이 생겼다. 현재는 인력 수급 자체가 어려워 생산직 유지를 위해서라도 추가 임금인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의료기기업체 B 사장은 원자재비·물류비·인건비 증가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국내사 대부분은 원부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새롭게 단가계약을 체결한 실리콘·하이드로콜로이드 원단 등은 기존보다 3배 오른 가격으로 납품받고 있다”며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심화돼 원자재 값이 더 오르고 물량 받기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환기했다.

B 사장은 “코로나 이후 물류비용은 10% 정도 증가했다. 현재는 기존 계약에 따라 운송·물류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미 물류회사로부터 재계약 시점에서의 비용 인상 통보를 받은 상태”라며 "또한 주52시간제 이후 생산성 하락에 따른 지속적인 인력 충원으로 제조원가 내 인건비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다품종·소량생산이 주를 이루는 치료재료업체는 인건비 비중이 제조원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며 “주52시간제 시행에 따라 생산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었고 규제 또한 강화되면서 임상시험과 RA(인허가) 등 전문 인력을 유지·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임금인상을 하고 있지만 정작 치료재료 보험수가는 몇 년 간 동일하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영업이익과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수익성 낮은 제품의 생산 중단을 고려하는 제조사도 적지 않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공급난 불가피…과거 인공혈관 사태 재현 우려”

치료재료업계는 국내사·수입사를 불문하고 현 위기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2의 ‘인공혈관 대란’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설문조사 결과 상당수 업체들이 치료재료 ‘생산 또는 수입을 축소하거나 중단’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C 사장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몇 개 제품은 이미 공급을 중단했다. 그간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다른 제품에서의 이익으로 벌충해 버텼지만 지금은 수입가 자체가 많이 인상돼 공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C 사장은 “또 다른 치료재료도 공급 중단을 고려하고 있지만 국내 대체품이 없어 고민”이라며 “제조·수입원가 급증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생산·수입 중단을 고려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2021년 전체 요양급여액 중 4대 진료비(기본진료료·진료행위료·약품비·재료대) 구성비 현황

그는 “과거 소아용 인공혈관 공급대란 당시 고어사가 한국에서 철수한 것은 식약처가 GMP 갱신을 추진하면서 규제비용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그때보다 인허가 등 규제비용 부담이 더 커졌다”며 “정부가 급증하고 있는 수입원가와 규제비용을 고려해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인상과 같은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주문했다.

국내사 B 사장은 “모 병원에서는 수입사가 공급하는 치료재료 수급에 차질이 생겨 국내 제품으로 대체하는 일이 있었다"며 "만에 하나 대체품이 없었다면 과거 소아 인공혈관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치료재료업체는 제조·수입원가 급증으로 수익성이 낮은 치료재료의 경우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수입을 축소하거나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1년 기준 전체 요양급여액 중 치료재료(재료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4.8%로 기본진료료·진료행위료·약품비와 비교해 매우 작다. 하지만 환자 수술·치료에 필수적이며 생명과도 직결되는 치료재료 공급 공백은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앞서 인공혈관 공급 중단과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치솟는 원자재 값·물류비·인건비로 제조·수입원가가 급증해 더는 수익성 악화를 감내할 수 없다며 벼랑 끝 절박한 심정으로 보험상한액 인상을 부르짖고 있는 치료재료업계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하는 이유다.

정희석 기자  leehan28@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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