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비·물류비 상승으로 경영 악화…생산·수입 차질 빚어져
급증한 제조·수입원가 반영한 ‘보험상한액 인상’ 정부에 요청

[라포르시안] “제조·수입원가가 급증해 더 이상 손해를 감수하면서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 생산·수입 차질로 치료재료 공급이 중단되면 의료기기업체·정부 모두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치료재료 공급대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원자재·물류 등 제반비용이 증가해 제조원가 또한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회사 영업이익이 최악이다. 의료기기제조를 해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마이크로 필터·부형재·시린지 등 원자재 가격이 급증한 것은 물론 물류망 붕괴로 수급 또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여기에 인건비 상승과 시설 투자비용 증가로 국내 치료재료업체들이 심각한 생존 위기에 처해있다.”

“해외 제조원은 원자재·물류비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을 수입가 인상 조치로 보전하려한다. 그렇다고 환자 수술·치료에 필수적인 치료재료를 수입가 인상 이유로 공급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는 없지 않나. 양질의 제품 공급을 위해 어쩔 수없이 제조원의 압박을 견디고 있다. 또 공급 차질을 피하기 위해 비용이 비싸더라도 항공운송으로 치료재료를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유효기간 때문에 무턱대고 비싼 비용을 들여 제품을 대량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유철욱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이 지난 5월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의료기기 공급위기 대응을 위한 긴급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당시 유 회장은 치료재료업계가 처해 있는 현실을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 비유하며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10% 이상 한시적 일괄 인상을 정부에 요청했다.
유철욱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이 지난 5월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의료기기 공급위기 대응을 위한 긴급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당시 유 회장은 치료재료업계가 처해 있는 현실을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 비유하며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10% 이상 한시적 일괄 인상을 정부에 요청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 회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도 치료재료업계 경영환경 설문조사’에서 의료기기업체들이 쏟아낸 절규이자 아우성이다. 2019년 미·중 무역 분쟁, 2020년 코로나19,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내외적 경제여건 악화와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중고’까지 겪고 있는 치료재료업계가 생사 갈림길에 내몰렸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용 등 치료재료 생산·공급에 필요한 제반비용 증가로 제조·수입원가가 급증하면서 영업이익 감소로 총체적 위기에 봉착해 더는 감내하기 힘든 임계점을 넘어선 상황이다.

국내 의료기기산업은 코로나19 진단키트의 지속적인 판매세에 힘입어 2020년 처음 흑자를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에도 전년대비 약 44% 상승한 3조7489억 원으로 2년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했다.

정부나 타 산업 종사자 입장에서 의료기기는 소위 ‘잘 나가는, 먹고 살만한’ 산업으로 비춰질 법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의료기기 생산·수출실적 통계에 감춰진 이면과 치료재료 특수성을 고려하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21년 의료기기 생산실적은 12조8831억 원으로 전년대비 27.1% 증가했다. 하지만 생산실적 상위 10위 가운데 1~5위 제품은 ▲고위험성감염체면역검사시약(생산금액 비중 15.62%) ▲치과용임플란트고정체(11.21%) ▲고위험성감염체유전자검사시약(8.95%) ▲범용초음파영상진단장치(4.42%) ▲치과용임플란트상부구조물(4.28%)로 전체 생산금액의 44.48%를 차지했다. 반면 유일한 치료재료 품목은 6위에 이름을 올린 ‘조직수복용생체재료’로 전체 생산금액 중 비중이 2.34%에 불과하다.

2021년도 생산 상위 10대 품목 중 수출 상위 10대 품목 현황 (9개 품목 동일)
2021년도 생산 상위 10대 품목 중 수출 상위 10대 품목 현황 (9개 품목 동일)

의료기기 수출실적도 마찬가지다. 수출실적 상위 10위 가운데 1~5위 제품은 ▲고위험성감염체면역검사시약(30.72%) ▲고위험성감염체유전자검사시약(10.61%) ▲범용초음파영상진단장치(5.70%) ▲감염체진단면역검사시약(4.89%) ▲치과용임플란트고정체(4.20%)로 전체 수출금액 가운데 50%가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수출실적 6위 조직수복용생체재료의 비중은 3.04%에 머물렀다.

이는 코로나19 진단검사시약·치과용임플란트·초음파진단기와 같은 일부 품목이 국내 의료기기 무역수지 흑자와 생산·수출실적 성장세를 견인했을 뿐 정작 제조원가 상승과 영업이익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치료재료업체들의 현실과는 크게 동떨어져있다.

치료재료업계가 원자재·물류비·인건비 상승에 따른 경영 악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치료재료가 갖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다. 일반 공산품은 제조·수입원가가 증가한 만큼 제품 가격에 그 증가분을 반영해 보전할 수 있지만 치료재료의 경우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보험상한액이 통제되는 일종의 공공재로서 제조·수입원가가 증가해도 가격 조정 자체가 쉽지 않다.

치료재료업계가 의사 행위료는 매년 조금이나마 오르는 반면 왜 치료재료만 환율연동제에 의존해 수가 인상이 이뤄지지 않는지 불만을 터트리는 이유다. 의사들 역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낮은 보험가 탓에 업체들이 기능이 개선된 치료재료 신제품 출시를 꺼려 환자 생존율과 삶의 질 향상을 저해한다는 우려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원자재비·물류비 증가로 제품 생산·공급 차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 회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도 치료재료업계 경영환경 설문조사’ 결과는 대내외적 경영 환경 악화로 생존 위기에 내몰린 업계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라포르시안은 양 단체 설문조사 세부자료를 입수해 면밀히 분석했다.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17일까지 진행된 협회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원부자재 가격 또는 수입가격 상승이 경영환경에 미치는 정도’를 묻는 질문에 회원사 100개사 중 81%는 “미치는 영향이 크거나 매우 크다”고 답변했다.

국내 제조사를 대상으로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생산·공급 차질이 발생한 제품 여부’를 조사한 결과 69.2%는 “생산 및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수입사는 67.1%가 “제품 가격 상승으로 수입에 차질이 있다”고 답했다.

물류비용 상승 또한 치료재료 제조사·수입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요인이다. ‘물류 어려움 또는 물류비 상승이 경영 환경에 미치는 정도’를 조사한 결과 총 100개사 중 82%는 “물류에 어려움을 겪거나 비용 상승에 따른 영향이 크거나 매우 크다”고 응답했다.

제조사의 경우 ‘원부자재 수급에 있어 물류 어려움으로 제품 생산 차질 발생 여부’를 묻는 질문에 70%가 “제품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입사 역시 79%가 물류 어려움으로 제품 수입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류 어려움으로 생산 및 수입에 차질이 발생한 경우 회사 차원의 대안’으로는 ▲비용이 비싸더라도 항공 등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58개사) ▲별다른 방법이 없어 기다린다(36개사)는 답변이 나왔다.

더불어 ‘제조 및 수입 차질이 발생한 제품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안’을 묻는 질문에는 중복답변으로 ▲납품가격 인상 또는 대리점 공급가격 인상(53개사·58.9%) ▲보험가격 인상(40개사·44.4%) ▲원부자재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비용 상승 위기를 인내하며 기다린다(33개사·36.7%) ▲생산 또는 수입을 축소하거나 중단(28개사·31.1%)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안정적인 원부자재 수급과 기업운영 정상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부 정책’ 설문에는 중복답변으로 ▲제조 및 수입원가 대비 낮은 보험가격으로 설정된 제품의 가격 조정·인상(62개사·62%) ▲원가연동제 도입(58개사·58%) ▲원자재 및 수입 관련 제반비용 인하(54개사·54%) ▲보험가격 인하가 예정돼있는 제품의 가격인하 시점 유예(34개사·34%)를 제시했다.

“인건비 급증에 경영 악화…보험상한액 인상 절실”

한편, 의료기기조합이 회원사 40개사 응답을 분석한 결과 국내 치료재료업체는 최저임금·평균연봉 상승, 주 52시간제도·규제 강화에 따른 인원 충원으로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원가 중 인건비 상승이 경영에 영향을 줬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회원사 40개사 중 85%(34개사)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40개사 중 55%(21개사)는 제조원가 내 인건비 비중이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2021년 3년 동안 임직원 수 대비 평균 인건비 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제조업체 40개사 중 62%(25개사)가 “최소 5% 이상 인건비가 상승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인건비 상승을 해결하기 위해 고려하고 있는 방안’(중복답변)으로 ▲치료재료 상한금액 인상 요청(22개사·56.4%) ▲수익성이 낮은 품목의 제조 중단(19개사·48.7%) ▲생산 자동화를 통한 인원 감축(19개사·48.7%) ▲외주가공 또는 위탁가공을 통한 제조원가 인하(17개사·43.6%) ▲국내시장 런칭 대신 수익성이 좋은 해외시장 진출 고려(16개사·41%) ▲공산품 또는 미용용품 등 건강보험 적용 제외 품목 개발(6개사·15.4%) 등이 제시됐다.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의료기기조합 회원사 관계자는 “치료재료 제조사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은 물론 UDI 제도·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 시행 등 규제 강화에 따른 인력 충원으로 인건비 상승이 가파르게 이뤄져 경영상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원자재 가격·물류비용 증가와 함께 고물가·고환율·고금리·고임금으로 전체 제조원가가 급증하면서 수익성이 낮은 품목의 경우 생산·공급 중단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치료재료업체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인상과 같은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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