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수(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코로나19가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면서 거의 모든 일상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간 제한됐던 많은 규제가 하나둘씩 해제되고 식당과 거리도 활기를 되찾았다. 국내 의료기기산업은 코로나로 인해 전례 없는 생산실적 향상과 함께 수출 또한 과거와 비교하면 몇 배가 넘는 호황을 누렸다. 물론 전염병과의 힘겨운 싸움이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큰 보탬이 됐지만 이로 인해 의료기기업계가 희생한 부분 역시 적지 않았다. 따라서 코로나 이후에 대한 대처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동안 특수한 상황으로 일체의 제도개선이나 민원에 대한 구조적 처리가 지연된 점을 고려하면 미래에 대처하기 위한 발 빠른 노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우선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했던 의료기기업계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한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민원 설명회가 정상화돼야한다. 코로나 유행 기간에 모든 제도 운용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다 보니 의료기기업체로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식약처는 전화 등이 폭주해 일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자 민원 집중 시간제를 시행해 정해진 시간만 전화를 받고 나머지는 업무에 집중하는 한시적 제도를 유지했다.

일정 정도의 성과는 있었지만 민원인으로서는 업무 진행이나 제품 설명에 대한 제한으로 생각해 불만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제도개선 의견 역시 전달 할 수 있는 자리가 제한돼 업계 입장에서 필요한 제도개선이 적체되는 현상까지 생겨나게 된다. 

두 번째는 그동안 평가를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진 허가제도의 개선이다. 과거의 예로 보면 허가를 위한 제도 일원화와 의료기기심사부·안전국의 이원화 두 가지로 나눠졌다. 두 제도 모두 일장일단이 있지만 이번에 시행된 첨단제품허가담당관 제도는 이전과는 성격이 다른 또 다른 제도로 시험적인 성격이 있었다. 기본 원칙은 늘어나는 첨단 제품에 대한 통섭적 판단을 하기 위한 제도지만 결국 현상적으로 보면 기존 인허가에 대한 이중심사 성격을 지울 수가 없다. 산업계 입장에서 보면 심사부 검토를 끝내고 또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제도 운영에 대한 실익이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더불어 최근의 인허가 심사 적체 대부분은 높아진 규제를 적용하면서 생기는 규제강도의 문제다. 점차 국제조화로 인해 규제가 과학화되고 국제화되는데 비해 인원에 대한 분배로 이중으로 심사를 하는 것에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첨단 제품에 관한 내부적인 노하우가 생긴 만큼 전체적인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규제 강도에 대한 조화다. 안전성과 산업 발전이 양립할 수는 없다. 다시 설명하자면 산업계가 국민 안전을 담보로 규제 개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만약 위험한 제도를 요구한다면 어차피 역풍을 맞게 되고 결국 산업계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강화된 규정에 의하면 징벌적 배상제도와 이식형 의료기기 책임보험 의무가입제도 등이 시행되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과거와 달리 국민의 위한 안전장치도 있지만 결국 문제가 생기면 기업의 존폐가 갈리는 문제다. 국제조화나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우리나라 규제 수준은 세계적이다. 달리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제조된 제품이 세계 어디를 가나 인정받을 수 있는 규격을 가졌다는 의미다.

문제는 강화된 규정에도 불구하고 심사 강도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보다 검토할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맞지만 표준화된 규격으로 인해 필요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 결국 허가심사에서 요구되는 보완의 양이나 인허가 관련 법이 정한 규정의 준수 여부가 관건이다. 인허가를 경험한 현장의 목소리 중 보완이 나와도 법적 처리시한이 다해서야 실제 제품 검토가 이뤄지는 악순환이 있다고 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보완을 위한 보완을 낸다는 의심조차 있다.

심사자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늘어나는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절차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더 완벽한 심사가 이뤄진다고 단언 할 수는 없다. 의료기기는 워낙 복잡한 다학제적 특성을 갖고 있다 보니 3단계 4단계 검토 절차를 거치더라고 최소한의 안전기준 이상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새 정부가 들어섰다. 필요한 규제는 더해야 하지만 운영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고 의료기기산업을 살리기 위한 먹거리 정책도 시급하다. 규제로 인한 인허가만 정상화된다고 해도 의료기기산업계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며 보다 안전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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