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라포르시안] 지난 1992년 국내 최초의 바이오기업인 ‘바이오니아’가 창업한 지 30년 가까이 지나면서 국내 바이오산업은 기업 수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연구개발(R&D) 역량 강화를 통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통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중소·벤처기업은 2019년 기준 총 3,116개이다. 이중 휴업기업 포함한 생존기업은 2,496개, 폐업기업은 620개로 집계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수익, 규모 등에 한계가 있으며, 글로벌로 진출하기 위한 생태계도 미흡한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국바이오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산업에서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전체 바이오기업의 89%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기업들이 영업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바이오 산업계는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을 위한 메가펀드 조성과 정부 차원의 금융·세제 지원을 비롯해 바이오 관련 산업을 총괄하는 강력한 거버넌스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바이오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를 강화하고 창업부터 글로벌 진출까지 종합적인 로드맵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포르시안은 한국바이오협회 이승규 부회장으로부터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황 및 문제점을 비롯해 산업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 국내 바이오기업의 상당수가 영업흑자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바이오 산업의 근간은 한마디로 혁신기술이다. 신생 벤처 기업이 많은 바이오 산업계의 특성 상, 창업 초기에는 자본상 열위에 있을 수 있다. 특히, 투자를 통해서 R&D 비용 등을 충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미국의 경우는 기술만 있으면 빨리 상장하고 잘못되면 퇴출도 빠른 선순환적 구조를 가진 민간 드라이브 성격이 강한데,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창업하고 기술화해나가다 보면 수익적인 부분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제약사들이 혁신 기술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외국은 빅파마 중심으로 M&A 등을 통해 혁신적인 벤처 기술을 안고 가는데, 국내 제약업계는 그동안 이런 혁신기술이나 R&D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순환적인 에코시스템이 약하다. 자금력도 약하다보니 바이오벤처를 인수해서 글로벌화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물론, 자금력이 있는 제약사가 벤처에 투자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미국처럼 에코시스템에서의 전략적 투자라기보다는 공동 R&D를 추진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산업계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 국내 바이오기업의 수가 너무 많은 건 아닌가. 선택과 집중을 위한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옥석 가리기라는 것은 결국 시장의 선택을 받기 마련인데, 지금의 우리나라 시장 구조는 옥석 가리기가 좋은 구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투자자들에게 익숙한 구조는 IPO(기업공개)밖에 없다. IPO로 가냐 못가냐로 바이오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옛날 제조업 베이스의 접근 방법에 가깝다. IPO에 대한 진입과 퇴출이 잘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거래소에서 퇴출하기도 쉽지는 않다. 상장 후 실패하면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퇴출을 쉽게 함으로써 밖에서 또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해야 민간 주도에서 옥석이 가려지는데 우리나라는 거래서 퇴출이 쉽지 않다.  

오히려 수익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바이오기업에서 IPO 비율이 10~15% 밖에 안 된다. 나머지 M&A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M&A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바이오 산업계의 오랜 주장 중 하나가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조 단위의 메가펀드 조성이다. 실질적 성과 창출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펀드 운영 계획이 필요하지 않나.

= 메가펀드가 좋긴 하지만 깊은 고민으로 하고 전략적으로 철저하게 목적성을 가지고, 기업도 같이 책임을 지는 매칭펀드 형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있는 파이프라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메가펀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약 개발 중에서도 ‘글로벌 임상을 지원한다’ 등과 같은 목적성이 있어야 하고, 선정된 기업도 책임감을 갖기 위해 매칭을 해야 한다. 다만 민간 입장에서 큰 규모의 펀드에 매칭을 하기는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예전에는 매칭을 해서 수익이 나면 국가가 먼저 가져갔다. 메가펀드로 지원받아 개발된 신약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해당 기업이 먼저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선순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다. 

-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정책 공약에서 바이오강국 실현을 위한 컨트롤 타워로 국무총리 직속 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를 약속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바이오 산업 정책의 파이가 너무 작고 산자부, 과기부, 복지부 등 너무 여럿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각 부처들이 관련 법을 가지고 있고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많은 법들을 한 그림에 올려놔야 정확한 로드맵을 그리고 정확한 전략을 도출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번 정부에서 가장 올바르게 접근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민간이 주도하는 산업계의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이 주도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부분이다. 민간이 주도할 수 있는 인프라는 기술이 얼리스테이지(early stage)에서 레이트스테이지(late stage)로 가도록 돈이 흘러가게끔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실권도 없고 예산권도 없이 각 부처가 정리해 온 것들을 토의하고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는 지양해야 한다. 바이오산업 전체의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 통합적이고 강력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 제약·바이오를 비롯해 화이트바이오, 그린바이오, 레드바이오, 소재 등 분야가 상당하다. 전체를 조명하고 하나의 로드맵에 올리기가 가능할까.

= 그래서 민간이 주도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서 인프라를 깔아주면 전문가들이 드라이브하고 로드맵을 그린 후 각 부처는 이를 어시스트하는 형태의 구도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위원회를 만들더라도 부처가 관여를 해버리면 그 부처의 이야기가 되버리는 것이다. 전체 바이오 산업의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만든 후 레드·그린·화이트 바이오를 비롯해 융합 등 섹터를 구분해 로드맵으로 만들고 전략이 나오면 그 R&R(Role & Responsibility )을 부처에 내리면 된다. 

이처럼 전체를 그릴 수 있는 거버넌스가 나와야 하는데 예산권을 갖지 않는 위원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예산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몰 형태의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규제 역시 제약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련 분야까지 같이 풀어야 한다. 따라서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필요한 것이다.

- 민간 주도의 거버넌스 구성을 위해서는 한국바이오협회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 한국바이오협회의 회원사 수는 600곳이 넘는다. 한미, 종근당, 유한양행 등을 비롯해 새로 창업한 바이오벤처들도 회원사이고, 레드바이오부터 융합바이오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협회는 회원사들과 글로벌 기업 간의 라이센싱 아웃과 관련된 글로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관심이 상당히 높다. 우리가 가능성이 없다면 국내에서 R&D를 하고 투쟁해야 하는데, 글로벌 제약사들을 만나보면 기회가 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만큼 국내 바이오기업에서 혁신 기술이 나올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 같고 협회는 이를 지속적으로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또 하나는 협업 네트워크 구성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핵심 기술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협업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AI를 비롯해 새로운 기술들을 산업에 안착시키 위해 글로벌 시장과 콜라보레이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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