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휴(의료기기규제연구회 이사)

[라포르시안] 의료기기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소득 증가에 따른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화 관련 질병이 증가하면서 그만큼 의료기기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보험체계를 갖고 있는 한국은 인구분포 변화에서 향후 보건의료산업 발전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통계청 인구 추계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0년 807만 명에서 2025년 1000만 명에 이어 2035년 약 15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65세 이상 인구는 생산 활동이 현저히 저하되기 때문에 국가 재정 측면에서 볼 때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은 계층이 늘어나는 셈이다.

낮은 출산율과 기대수명 증가는 세계적인 추세로 인류가 어떠한 노력을 통해서도 쉽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자 불가항력적 미래이기도 하다. 의료기기산업 측면에서는 의료적 처치를 받아야 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를 보조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시술·기구 등 의료기기 역시 사용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노화를 지연시키는 미용 관련 비급여시장이 커지는 동시에 만성질환 비율이 높아져 지속적인 치료와 돌봄 수요 또한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 확보가 중요하고, 이는 결국 생산가능인구의 부담으로 전가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통계청 노년부양비 추계를 보면 고령인구 증가로 인한 부양은 2020년 22.5명에서 2040년 63.4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노령화로 인한 특정 시장에서의 수요 증가 가운데 비급여의 경우 환자 본인부담인 만큼 논외로 하더라고 만성질환 관리와 치료에 드는 비용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속가능한 복지시스템 운영과 건강보험 재정을 위해 수입·지출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기술 혁신을 통한 예방과 돌봄 대안을 마련하고, 나아가 제도와 규제 전략을 구상해 적절한 비용을 통한 안전성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기술 혁신에 대한 방향 설정이 요구된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의료기기가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위한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예방과 돌봄을 위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진흥시켜야 한다. 또한 바이오센서나 재택 진단기기 그리고 이를 적용해 주치의와 연결할 수 있는 정보이동 통로를 구축하고, 급여 측면에서는 만성질환 관리에 대한 진단·정보관리 기술을 우선 검토하고 비대면 진료의 물꼬를 터야 할 때가 됐다.

둘째는 의료기기 인허가와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해야한다. 규제 수준이 높아질수록 이에 따르는 관리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높아지는 규제비용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도 정부와 의료기기산업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은 의료기기 생산실적 10조 원을 넘어 세계 7위권 의료기기시장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감당할 수 있는 규제비용과 적극적인 인허가 절차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그간 대부분의 의료기기 인허가는 정해진 법정 시한이 지켜줬고, 규제 총량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효율적으로 관리돼왔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급격히 늘어난 인허가 수요가 전체적인 규제 적체 원인이 되고 강화된 규제로 인해 민원 만족도 또한 낮아지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산업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좀처럼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거시적 관점에서 의료기기 심사부와 허가총괄의 이중심사 문제, GMP 적체 해결을 위한 행정 수요에 맞는 선별 실사 및 합동 심사 대상 조정, 갱신제 시행으로 인한 재평가와 사후관리 요건에 대한 균형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그동안 중단됐던 소통 재개다. 식약처 의료기기안전국과 심사부는 그간 포럼이나 워크숍을 통해 의료기기산업계 목소리를 들어왔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소통이 단절됐고 심지어 상담조차 제한되다보니 심사자와 민원인 사이의 틈새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식약처와 의료기기산업계는 지난 3년간 단절됐던 소통을 재개해 허가심사 적체 등 현안 해결을 모색해야한다.

넷째는 국제조화 확대는 필요하지만 국내 의료기기제조업 육성을 위한 각종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한다. 예를 들어 현재 운영 중인 의료기기 인허가 도우미제도와 함께 혁신의료기기를 대상으로 우선 심사를 적용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더불어 혁신의료기기·체외진단의료기기를 담당하는 식약처 전담부서가 있는 만큼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이들 제품을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제 문턱을 낮추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디지털 의료기기 투자가 집중돼 제품 개발이 늘어나면서 인허가 및 임상시험을 컨설팅 업체에 맡기며 고가의 수수료를 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인허가 기관의 문턱이 높고 정보 공개 또한 제한적이어서 업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 생기는 일로 각종 교육과 설명회를 통해 허가심사 기준 및 정보 공개를 더욱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의료기기 생산실적 10조 원 돌파와 세계 10대 의료기기 강국 진입이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성과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오랜 시간 의료기기산업 발전 토대가 없었다면 이러한 단발적인 성과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성과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도록 정부와 의료기기산업계가 소통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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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헬스인·싸>는 의료기기 인허가, 보험급여, 신의료기술평가, 유통구조, 공정경쟁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폭넓은 안목과 통찰력을 공유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료기기 제도·정책을 살펴보고, 나아가 의료기기업계 정부 의료계 간 소통과 상생을 위한 합리적 여론 형성의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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