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석(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혁신산업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최근 자주 접하는 용어 중 하나가 ‘디지털 헬스케어’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사용해 개인 건강과 생활방식에 있어 질병을 예방·진단·치료·모니터링하고 관리를 개선하는 도구 및 서비스를 말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일례로 건강관리 모바일 앱은 5년 전과 비교해 그 수가 두 배 이상 증가해 현재 30억 개에 달한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시장은 암·당뇨·심장질환 등 만성질환분야에서 급격히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인구 고령화로 많은 국가에서 만성질환 환자가 늘어나고 있고, 이는 의료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디지털 헬스케어로의 전환은 이러한 비용을 크게 경감시키고 환자 중심 의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지털 헬스케어 활용에 따른 보상비용 지불에 대한 담론은 구체화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의 보험등재를 위해 제시되는 가이드라인은 매우 단순하고 결과론적이다. 가령 2020년에 나온 ‘혁신적 의료기술의 요양급여 여부평가 가이드라인’은 신의료기술 평가 대상 판단기준으로 해당 제품의 임상적 결과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거나 기존 고가 의료행위를 대체했을 경우에만 신의료기술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다시 말해 기존 비용을 줄이거나 지금까지 제공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경우 보험 등재를 통한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가이드라인 어디에도 근거 창출을 위한 방법이나 설명 그리고 어떠한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임상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제품을 예로 들어보자. 영국 K2 Medical System社는 진통 중인 산모의 자궁수축과 태아 심장박동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 문제가 의심될 경우 담당의사에게 실시간 경고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후 영국과 아일랜드 24개 병원에서 4만7000명을 대상으로 해당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그룹과 통상적인 진료를 시행한 그룹으로 나눠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AI의 높은 정확도에도 불구하고 두 그룹 간 아기와 산모의 진료결과 차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AI가 전달한 경고가 의학적 진료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둘째 진단에 따른 적절한 치료와 임상결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AI가 제공한 정보를 진료진이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는지 등 상호작용 및 판단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의 기술 정확도와 예측 가능성만으로는 오롯이 환자 치료결과를 담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보다 정교한 임상 설계와 임상적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절한 환자군 선택, 나아가 치료와 연계된 임상적 가치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지난해 1월 미국 공보험 메디케어·메디케이드를 담당하는 미국보험청(CMS)은 혁신기술에 대한 보험급여(MCIT) 방안을 발표했지만 그해 11월 철회했다. CMS는 FDA에서 혁신 기술(Breakthrough technology)로 허가 받은 직후 일시적 급여 등재를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동일한 보험 등재 여부 논의가 지난 2월 열린 TCET(Transition Coverage of Emerging Technology·새로운 기술에 대한 일시적 보험 등재)에 대한 공청회에서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오고 갔으며, 그중에서도 보험 등재 시 임상적 근거 창출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띄었다. 참석자들은 기술 발전으로 빠르게 변하는 제품 적응증에 유연한 임상 기준이 적용돼 보험 등재가 가능하도록 요구했다. 나아가 보험 등재를 위한 임상시험에 있어서도 CMS 승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임상적 유효성과 비용효과성의 증명 과정에서 CMS가 포함돼 보험 등재를 위해 유연하고 최적화된 임상 디지인을 적용해 달라는 요청으로도 해석된다.

CMS 역할이 단순히 제시된 기준에 맞춰 임상 결과만을 판단하는 승인권자가 아닌 함께 비용효과성과 임상적 유효성을 검토해 나가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이 논의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보험 등재를 위한 임상적 유효성 증명 책임이 업체에게 있고 이를 증명해 내는 것도 오롯이 회사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업계는 어떠한 임상 근거가 보험 등재에 가장 유용할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증명해 내야하는지에 대한 도움이 절실하다. 디지털 헬스케어나 새로운 기술의 보험 등재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기술과 제품의 상업적 예측성이 향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디지털 헬스케어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의 임상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의료기기 자체의 유효성을 넘어 의료진과의 충분한 협업이 필요하고 기존과 차별화된 임상 환경 또한 요구될 것이다. 하지만 보험 등재를 위한 임상 적용 기준은 예전과 크게 변하지 않았고 모두 동일하게만 적용된다. 이제부터라도 임상적 가치와 비용적 가치를 어떻게 입증할지 그리고 어떤 근거가 어떻게 보험 등재로 이어질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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