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헨리 포드는 미국 미시간 주 디어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를 세운다. 그 유명한 '포드 자동차 회사'다. 포드 자동차 회사의 가장 큰 업적은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걸 꼽을 수 있다. 포드 자동차는 1923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분업식 조립 라인을 통해 자동차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다. 이런 생산 방식은 이탈리아의 지식인이자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에 의해 '포디즘(Fordism)'으로 명명됐다. 오늘날 포디듬은 표준화된 제품 생산 방식을 통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축적체제'를 상징한다.

포디즘보다 앞서 '테일러리즘(Taylorism)'이 있었다. 미국의 경영학자 테일러에 의해 고안된 테일러리즘은 과학적 관리법에 따라 노동행위의 계량화를 추구한다. 현재 기업 경영에 있어서 일반화된 표준작업량과 성과급 같은 게 테일러리즘의 산물이다. 그 이전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노동자들의 작업 방식을 단위 노동시간당 표준적인 생산량으로 계량화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 테일러리즘의 핵심이다.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이야말로 테일러리즘이 추구하는 덕목이다. 포드 자동차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통해 테일러리즘을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이란 유령이 대한민국 의료시장을 떠돌고 있다. 노동의 표준화와 과학적 관리기법을 통해 자본주의체제를 공고히 하는 임무를 마친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을 국내 의료체계에 주입하려는 시도가 거칠다. 정부와 기업, 거대 병원자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를 돌릴 기세다. 의료공급자와 환자들은 지금 컨베이어벨트 바로 앞까지 떠밀려왔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창조경제'를 들고 나왔다. 정확한 의미나 추구하는 바를 설명할 수 없지만 정부는 '창조경제'를 마치 바이블처럼 신봉한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창조경제 활성화 정책에 서비스산업이, 그 중에서 의료서비스가 '대표 아이콘'으로 포함됐다는 소식을 전해듣자마자 불길한 조짐을 느꼈다. 앞선 정부에서 연기만 피우다 꺼진 '의료상업화'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것임을 직감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더 집요하고 거침없다. 경제정책의 기조가 '녹색'에서 '창조'로 바뀌없을 뿐인데 의료산업 육성을 향한 풀무질이 요란하다. '창조의료'란 해괴한 신조어까지 등장했고, 의료-ICT(정보통신기술) 융합이란 용어는 듣기만 해도 어지럽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의료기술 속에서 창조의료는 얼마나 더 대단하고, 가뜩이나 의료정보화가 빠른 나라에서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되면 이건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섣부른 지레짐작이었다. 의료-ICT 융합을 통한 창조의료란게 '원격의료 활성화' 정책의 재탕에 불과했다. 의사와 의사 간에만 허용된 원격의료를 의사와 환자 간 직접 원격의료가 가능하게끔 허용해서 관련 시장을 키우자는 게 속내였다. 그렇게 되면 대면진료 방식이 아닌 화상시스템을 이용한 텔레메디신(Telemedicine)이란 새로운 의료시장이 창조된다는 말이었다.

다 좋은데 이건 명심해야 된다. 정보통신기술이 의료서비스 공급 과정에 끼어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이가를. 이미 대형병원들은 수 년 전부터 전자의무기록(EMR)과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경영효율화에 목 매기 시작했다. 의사의 진료성과를 기술적으로 측정해 평가하고, 의료자원 소모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비용절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의료진에 대한 성과급제와 부서별 성과관리 체계가 확산된지 오래다. 일부 의료진은 "병원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때로는 마치 생산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진료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우려를 토해내고 있다. 테일러리즘이 어느새 의료공급체계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셈이다.  

여기에 원격의료가 도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는 의료취약지 주민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다른데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헬스케어 신시장 창출전략'에 그 속내가 잘 드러나 있다. 산자부의 전략에 따르면 원격의료 서비스 사업의 투입비용·상담시간 등을 분석한 결과, 스마트케어센터 당 월평균 4,620명(7인 근무 기준) 이상의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 손익분기가 발생한다. 이런 스마트케어센터가 전국에 700여개 이상 설치되면 8,0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즉, 원격의료 기반의 헬스케어 신시장을 창출해 선제적으로 의료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전략을 보면서 포드 자동차가 도입한 켄베이어벨트 기반의 대량 생산 시스템이 떠올랐다. 원격의료를 제공하는 전국 각지의 스마트케어센터를 통해 의료진이 환자들을 대량으로 진료(?)하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그런 구조다. 테일러리즘에 이어 포디즘의 접목이다. 원격의료에 접목된 정보통신기술은 포드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의료서비스 공급 과정을 더욱 표준화하고 규격화해 대량 진료가 가능한 구조를 지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100여년 전 포드 자동차 노동자들이 생산과정으로부터 소외됐듯이 의사들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환자의 몸은 기계의 부품과 달리 표준화되기 힘들고, 의료행위 또한 규격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 기반의 만성질환 관리를 통해 의료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포드 자동차 공장처럼 만들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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