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식약처 의료기기위원회 공동위원장·고대의대 명예교수)

[라포르시안] 의료계가 당면한 최대 현안은 코로나19 극복과 4차 산업혁명 대응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개인 건강 문제를 넘어 국가의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안보는 물론 국제질서에 이르는 광범위한 파괴력을 가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코로나 같은 국가 재난형 감염병이 앞으로도 자주 반복되고 그 발생 주기 또한 짧아질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반면 생명과학 물리학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4차 산업혁명은 질병의 진단·치료를 넘어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의료시스템 전반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소득·교육·지역·인종 차이로 발생하는 ‘양극화’로 건강과 삶의 불평등 문제가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의료계가 직면하게 될 엄연한 현실이다.

세계적인 감염병 문제와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변화는 ‘혁신’(Innovation)을 통한 미래 의료를 선제적으로 준비할 때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OECD는 혁신을 ▲제품 ▲프로세스 ▲마케팅 방법 ▲조직 관리 등을 새롭게 구현하거나 현저하게 개선해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또 미국 미네소타대학은 혁신을 사회에 가치를 더해주는 아이디어로 정의하면서 ‘그 가치는 개발자가 아닌 고객이 판단하고 혁신의 결과물은 새롭고 유용하고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기술했다.

혁신의 라틴어 어원 ‘innovationem’은 이미 있는 것을 새롭게 바꾼다는 의미다. 즉, 혁신은 기존 요소들을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인 만큼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창조와는 다른 개념이다. 마치 산소와 수소가 결합해 물이 되는 것과 같은데, 이때 산소와 수소가 물리적으로만 섞이지 않고 화학적으로 융·복합하게 만드는 ‘촉매’를 찾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다. 혁신의 전제조건은 ‘융·복합’이다. 특히 의료기기는 다양한 학제와 기술 및 요소의 융·복합이 필요한 대표적인 산업으로 산·학·연·병·관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해당사자 관점에서 보면 의료기기산업계에는 기업가·투자자, 학계는 대학교수, 연구소에는 연구원, 병원에는 의사·간호사, 관에는 공무원이 있다. 의료기기 상용화·사업화를 위해서는 이들의 힘을 합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해 실패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해당사자 간 ‘성공’을 바라보는 정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연구개발 과정에서도 그러한 차이는 뚜렷하게 발견된다. 투자자에게는 성공적인 투자 회수가 목표라면 기업가는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성공의 정의가 될 것이다. 또 대학교수의 관심사는 SCI 논문과 연구업적이라면 국책연구소 박사는 연구과제중심제도(Project Base System·PBS)를 위한 연구비 확보와 기술이전이 중요하다. 특히 의사는 자기 환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싶어 하고, 공무원은 정책의 시행 성과와 자신의 경력관리에 최우선 가치를 둘 것이다. 성공의 정의가 다른 각각의 이해당사자가 모여 협력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성공적인 의료산업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통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 혁신의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흔히 오해하는 것이 첨단 의료기기 개발이 혁신의 추동력이라면 혁신은 그 기술을 가진 개발자(inventor)가 리더십을 발휘해 주도해야한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하지만 혁신은 리더십을 갖춘 혁신가(innovator)에 의해 실현된다.

무엇보다 미래 의료의 중요한 한 축인 혁신의료기기 등 융·복합 의료기기의 사업화는 의사의 역할 수행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의사는 의료기기 실용화 아이디어의 공급자이자 연구개발 과정에서 기업이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넘게 해주는 동시에 제품의 최종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의료산업의 가치사슬이 완성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미래 의료를 선도하는 진정한 의사 ‘혁신가’를 적극 육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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