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간호사 단체, 간호법 '간호사 업무업무'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
적정 간호인력 확보·처우개선 본질은 외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입법이 더 시급

[라포르시안] 국회 앞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연일 의사단체와 간호사 단체 1인 시위와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간호법안' 입법 추진을 둘러싼 찬반 여론전이 한창이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안 제정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과 불법진료·불법의료기관 퇴출을 위한 수요 집회를 열고 “여야 3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간호법을 제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대한의사협회 등 간호단독법 저지 10개 단체 공동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간호단독법 제정 시도를 중단하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발의된 간호법안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대목은 간호사의 업무범위 규정과 이에 따른 간호사 단독개원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간호사의 업무범위 관련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했다. 

국회에 제출된 2건의 간호법안을 보면 간호사 업무범위 관련해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서정숙 의원 대표발의 법안)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 등으로 규정해 놓았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를 '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한 것이 간호법안 입법 추진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다. 

의사단체에서는 간호사 업무범위를 '진료 보조'로 규정하는 것과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하는 것은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의협 등은 간호사 업무범위를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한 간호법이 제정되면 "현행 의료인 면허체계가 왜곡되고, 간호사의 단독개원을 위한 단초를 제공해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법안을 '간호단독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호사 업무범위가 의사 등의 지도나 처방에 근거해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하는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 업무범위가 확대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관련법 개정 등으로 간호사 단독개원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게 의사단체의 주장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26일 성명을 내고 "간호단독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현행 간호법 제정안의 골자인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환자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단어로 애매모호하게 규정함으로써 간호사가 독자적 진료행위 혹은 의사의 처방 아래 있지 않은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간호협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는 의사단체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간호협회는 "간호법 제12조 2항 전문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며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라는 행위 제한을 두기 때문에 간호사만의 독자적인 진료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간호협회는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입법화돼 국민 건강에 기여하고 있는 간호법을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법이자 간호사만을 이익을 위한 악법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거짓 선전으로 일관하는 독선적이고 위압적인 행태야말로 타 보건의료인의 협력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에서 "제정안들은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 가능한 진료 관련 행위와 ‘진료 보조’의 문언 중복을 해소하는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또한 현행의 표현이 의사-간호사 간 업무관계에 있어 협력적 가치보다 종속·의존적 성격을 부각시킨다는 우려를 시정하는 조치로서 의의가 있다고 볼 것"이라며 "따라서 제정안이 실제적 업역 변경을 수반하는 법 개정조치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간호사 업무범위를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하는 것이 실제로 간호사 단독개원과 같은 업역 변경을 불러오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간호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센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의료현장에서 간호인력 관련 진짜 문제는 업무범위가 아니라 절대적인 인력부족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개정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회 복지위에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를 위한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 축소에 관한 청원‘이 안건으로 상정돼 있다.  <관련 기사: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국회 청원 성립...복지위로 공 넘어갔다>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인력 수급 종합계획과 임금 결정 등의 내용과 함께 환자 수에 따른 간호사 최저 인력 배치기준을 규정해 놓았다. 일반병동, 중환자실, 외상응급실, 수술실. 신생아 집중치료실 등 근무 장소별로 환자 수에 따른 간호사 인력 최저 배치기준을 명시했다. 

현행 의료법에도 간호사 1인당 환자 12명까지 담당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처벌조항이 없다보니 거의 사문화된 상태다. 간호인력인권법에서는 법적 기준을 위반한 의료기관에 대해 징역과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복지위는 오늘(27일)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간호법과 함께 간호인력인권법을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행동하는간호사회는 27일 성명을 내고 "간호인력인권법에 대한 보건복지위 검토보고서를 보면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며 "복지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간호인력의 권익 향상을 위한 입법을 요청하는 다수의 법률안이 이미 논의되고 있으며 현행 의료법과 시행규칙에 정해진 의료인력의 정원 기준 규정에 따라 시정명령, 업무정지, 개설허가 취소 등의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간호법, 의료법 개정안,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 중 어디에도 간호사 한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법으로 정해 미준수 시 처벌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간호인력기준 미준수 기관에 이미 조치를 하고 있다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행동하는간호사회는 "간호인력기준을 위반하는 의료기관에 시정명령, 업무정지, 개설허가 취소 등의 조치가 가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병원 이름만 바꾸어 다시 개원하거나 인력신고 기간에 맞추어 간호사를 임시로 고용하는 등의 꼼수를 쓰는 병원도 존재한다"며 "의료법상 간호인력기준을 지키지 않는 의료기관이 43%에 달한다는 통계결과도 있다. 기준이 있다 한들 제대로 관리, 감독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간호협회가 간호법안 입법 추진의 주요한 이유로 적정 간호사 확보와 처우개선을 꼽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에 관한 규정은 없다. 

행동하는간호사회는 "적정한 간호인력은 간호사뿐만 아니라 환자의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많아질수록 환자 사망률, 투약오류 등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며 "간호사 그리고 국민을 위해서라도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정하고 처벌할 수 있는 ‘간호인력인권법’을 제정해 간호인력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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