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재(벤처기업협회 부회장 겸 디지털헬스케어정책위원장)

[라포르시안] 20세기 가장 큰 감염병으로 기록된 스페인 독감은 1918년 가을과 이듬해 봄까지 불과 반 년 동안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2009년 5월 초 시작돼 7월 중순부터 본격 발병한 신종플루는 연말인 12월까지 유행하며 약 76만 명이 감염되고 270명이 사망했다. 2015년 발병한 메르스의 경우 186명 감염·38명 사망으로 치사율은 매우 높았지만 유행 기간은 두 달 정도로 비교적 짧았다.

감염병 유행 후 보건의료분야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은 신종플루 발생 이후 일반화됐다. 백신 접종률은 유행 전까지만 해도 세 명 중 한 명이 채 되지 않았으나 현재는 두 명 중 한 명 수준이 됐다. 때마침 2009년 국내 최초의 인플루엔자 백신이 생산되기도 했다. 2015년 메르스 유행 이후에는 감염병예방법 개정 등 전향적인 후속조치가 이뤄졌다. 이는 우리나라가 코로나 유행 초기 음압병상 확충과 검체검사 위·수탁을 통해 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토대가 됐다. 

2020년 1월 우리나라에도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 환자가 생겼고, 유행 3년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1,500만 명 이상 감염돼 2만 명 가까이 사망했다. 한국은 지난 2년 동안 감염을 잘 통제해왔지만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으로 올해 2월부터 급격히 국내 환자가 증가하기 시작해 3월 중순 하루 최대 확진자 4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10만 명 이하로 감소해 안정화되고 있는 추세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2009년 신종플루와 같이 계절 독감 수준의 풍토병으로 정착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조심스럽게 코로나 종식을 전망하고 있는 만큼 우리가 맞이할 코로나 이후의 삶, 즉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대비해야 할 때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의 일상과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그 중에서도 의료는 큰 변화를 겪었다. 그간 우리나라 의료를 특징짓는 것 중 하나는 짧은 진료시간과 많은 진료 횟수였다. 2019년 기준 OECD 국가들의 연평균 외래 진료는 6.8회인 반면 우리나라는 17.2회로 가장 많았다. 두 번째로 외래 진료 횟수가 많은 일본 12.5회와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다.

매년 증가하기만 하던 우리나라 외래 진료 횟수는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 약 10% 이상 감소했다. 또 외래 진료 중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사람이 31.2%로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대면 진료에 대한 불안감은 ‘비대면 진료’와 ‘원격 모니터링’이 제도화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특정 의료기관의 환자 쏠림과 의료사고 위험성 등을 지적하며 반대해왔던 비대면 진료는 2020년 2월 한시적으로 허용된 이후 올해 1월까지 진료건수가 350만 건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그간의 우려는 순차적으로 해소됐을 뿐 아니라 오미크론 유행 이후 재택치료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한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 환자 치료·관리를 위한 기본적인 방법이 됐다.

오랜 시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비대면 진료를 실제로 경험하며 가까이에 병원이 없는 환자, 감염에 취약한 환자, 거동이 불편한 환자, 직장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병원을 다니기 힘든 환자들이 비대면 진료를 통해 치료와 관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업과 업무상 미팅이 비대면 온라인 속 가상공간에서 이뤄지고,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도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진료와 건강관리 역시 가상공간에서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 

코로나 상황에서 확증임상이 시작된 디지털 치료기기 역시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는 상황이 된다면 병원에서 이뤄지는 치료와 재활 일부가 가정에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내 의료계는 코로나 특수 상황 속에서 짧은 시간동안 급격히 증가한 의료 수요를 소화하며 방역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한정적인 의료 자원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료의 ‘디지털 전환’은 이미 시작됐고,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맞이할 준비도 충분히 됐다.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국정 운영 전략으로 내세웠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의료의 디지털 전환은 매우 필수적이다. 의료계는 의료의 본질을 유지하고 그 역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료의 디지털 전환을 이루는 과정에서 진료 효율성·환자 편의성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업계 또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디지털 전환의 핵심 축으로써 의료계·정부와 소통해 나가는 것은 물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임상적 가치를 알리는 노력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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