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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엘리시움과 진주의료원 중 무얼 택할 것인가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3.11.0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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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개봉한 영화 중에 '엘리시움'이란 게 있다. 서기 2154년의 미래를 다룬 SF영화다. 140여년 뒤 지구의 모습은 어떨까. SF 영화 속에서 흔히 그렇듯 암울하다. 이 영화가 묘사한 지구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 속에서 환경오염과 자원고갈로 황폐하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버림받은 집단이다. 무엇으로부터? ‘엘리시움’이라 불리는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거주하는 ‘우주정거장’으로부터. 엘리시움이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선량한 사람들, 혹은 영웅들이 죽은 후 사는 이상향의 공간(엘리시온, Elysion))에서 따왔다고 한다.

엘리시움에는 가난과 전쟁이 없다. 그리고 질병이 없다. 가난과 전쟁은 그렇다 치고 질병까지? 그 곳에는 어떤 질병이든 몇 초만에 완치할 수 있는 기적의 의료기기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는 선텐 기구처럼 생긴 의료기기가 나온다. 그 속에 사람이 들어가 누워만 있으면 된다. 수술을 하거나, 의약품을 복용할 필요도 없다. 잠깐 누워만 있으면 순식간에 완치가 된다. 치료에 따른 고통도 없다. 영화는 방사능에 노출돼 단 5일밖에 살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주인공이 기적의 의료기기를 찾아 엘리시움을 찾아가는 고군분투를 그렸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에는 양극화의 폐해가 있다고 한다. 기적의 의료기기 혜택을 맘껏 누리는 엘리시움 거주자들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 속에 방치된 지구 거주자들은 극단의 의료양극화를 상징한다. 나아가 엘리시움에만 존재하는 기적의 의료기기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암울한 경고인 셈이다. 지나치게 과장되긴 했지만 그럴듯한 해석이다.

의사-환자가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보고 있자면 엘리시움이란 영화의 메시지가 겹쳐진다. 정부는 원격의료 허용법안을 추진하면서 의료취약지 거주자들의 의료접근성 향상이 주요한 법개정 이유라고 내세운다. 거동이 힘든 노인이나 장애인,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첨단 IT기술이 접목된 의료기기와 통신망을 이용하면 누구나 의사로부터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단다. 맞는 말이다. 그런 장비와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문제는 '누구나'이다. 그런 장비와 시스템을 누구나 갖출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노인과 장애인, 혹은 도서벽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나라에서 경제력이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계층이다. 이들에게 첨단 IT기술이 접목된 의료기기와 통신망은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이다. 정부는 원격의료가 선택사항이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만 이용하면 된단는 듯한 말투다. 그래서인지 국가에서 별도로 비용을 지원한다는 발표는 아직 없다. 원격의료 허용이 마치 공익적 취지인 양 주장하면서 이용하고 싶으면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란다. 모순이고 사기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허용하면 의료접근성이 향상돼 의료양극화가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원격의료 이용은 선택이고, 비용부담이 따른다. 정부는 새로운 의료시장 창출이란 상업성을 전제로 하면서 동시에 원격의료가 공공의료와 같은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뭐 이런 모순되고 엉터리같은 주장이 있을까. 시골 장터에서 약장수가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는 원격의료 적용 대상자가 44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도서벽지 거주자, 군인 등이 포함된다. 전체 인구의 10%다. 이만큼 필요로 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에 시장성이 높다는 계산이다. 정부의 적용 대상자 셈법도 엉터리지만 그 중에는 실제로 원격의료 서비스 구매력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정부가 제시한 방식대로라면 시장성이 지극히 낮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 업체들은 원격의료 적용 대상자를 더욱 확대해 줄 것을 요구할게 뻔하다.   

관련 업계, 혹은 시장의 측면에서 봐도 정부가 제시한 원격의료 적용 대상자로는 경제성이 낮다. 원격의료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려면 다양한 원격진단기기와 정보통신망을 두루 갖출 만큼의 경제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이 수요자여야 한다. 원격의료 기술과 장비가 발달할수록 비용 부담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이용 대상자는 더 부유층이어야 한다. 그게 바로 ‘엘리시움’이다. 소수를 위한 이상향.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원격의료가 가능한 엘리시움이 아니다. 얼마 전 문을 닫은 진주의료원 같은 공공병원과 튼튼한 일차의료가 더 절실하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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