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대유행 당시 진단·타미플루 투약 늦어져 환자 숨지기도
'팍스로비드' 증상발현 후 5일 이내 투여해야 효과
"외래진료 등 의료체계 정비해야 경구약제 효과적으로 투여"

미국 화이자(Pfizer)사가 개발한 경구용(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
미국 화이자(Pfizer)사가 개발한 경구용(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

[라포르시안]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미국 화이자(Pfizer)사가 개발한 경구용(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 긴급사용승인을 결정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간편하게 복용하는 먹는 치료제가 공급되면 코로나19 확진자 치료와 방역대응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가 긴급사용승인을 결정한 팍스로비드는 단백질 분해효소(3CL 프로테아제)를 차단해 바이러스 복제에 필요한 단백질이 생성되는 것을 막는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이후 체내에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팍스로비드는 경증에서 중등증 고위험 비입원환자 2,246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증상발현 5일 이내 투여했을 때 입원 및 사망환자 비율이 88% 감소했다. 

임상시험에 한국인 19명을 포함한 아시아인이 약 300명 참여했다. 아시아인을 포함한 전체 대상자에서 위약군 대비 시험군에서의 입원·사망 환자 비율이 유의하게 감소해 한국인에서도 동일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은 판단했다.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를 보였다. 임상시험 결과 전체 대상 환자의 98%가 델타 변이에 감염됐고, 팍스로비드 투여군이 시험군 대비 입원 또는 사망환자 비율을 88% 감소해 델타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이자는 "팍스로비드 작용기전 등을 고려할 때 오미크론 변이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화이자는 긴급사용승인 이후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시험결과를 제출할 예정이다. 

팍스로비드는 연령, 기저질환 등으로 중증 코로나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경증 및 중등증의 성인 및 소아(12세 이상, 체중 40Kg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투여한다. 1회 복용치에는 단백질 분해효소를 억제하는 '니르마트렐비르' 2정과 니르마트렐비르의 분해를 억제하는 '리토나비르'로 구성돼 있다. 

이 약의 용법·용량은 니르마트렐비르 2정과 리토나비르 1정씩을 1일 2회(12시간마다) 5일간 복용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 양성 진단을 받고 증상이 발현된 후 5일 이내에 가능한 한 빨리 투여해야 한다. 

방역당국은 이르면 내달 중순경 팍스로비드를 국내 도입해 공급할 계획이다. 

기존 국산 항체치료제로 '렉키로나주'가 처방되고 있지만 팍스로비드와 달리 병원에 가서 60분간 정맥주사로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재택치료에는 활용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또한 렉키로나주는 차광한 상태에서 냉장(2~8℃) 보관을 해야 하지만 팍스로비드는 실온(15~30℃)에서 보관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상황에서 치료 선택권이 넓어지는 셈이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경구용 치료제가 공급된다면 무증상이나 경증 환자 재택치료가 더 실효성을 갖게 되고, 의료기관 격리치료 대상이 크게 줄어 고위험군과 중증 확진자에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도입에 따라 준비해야 할 일도 있다. 어떻게 처방하고, 환자가 약을 어떻게 전달받을지 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재택치료 대상자에게 의사 처방전을 기반으로 약국에서 약을 배송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김옥수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자원지원팀장은 지난 27일 정례브리핑에서 "경구용 치료제는 정부가 구입해서 병원, 약국 등에 공급하고, 재택환자를 필요해 생활치료센터, 필요 시 치료병원에서 공급받아 사용할 예정"이라며 "초도 물량은 빠르면 1월 중순에 국내에 도입된다"고 밝혔다. 

김 자원지원팀장은 "경구용 치료제의 재택환자 활용은 의사 처방에 따라 처방전이 약국에 공급되고, (처방전이) 공급된 약국에서는 보건소, 지자체와 협의된 방식으로 재택환자에게 약이 배송되는 절차가 진행된다"며 "재택환자들이 불편함 없도록 치료제 공급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

의료전문가들은 코로나19 진단 이후 5일 이내에 경구용 치료제를 복용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은 대응 시스템으로는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A(H1N1) 유행했을 때를 되짚어보면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 공급 이후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타미플루는 증상 발현 뒤 48시간 이내 투약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2009년 하반기부터 신종플루 감염 환자가 증가할 당시 초기 진단과 처방이 늦어져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자 정부는 1차 의료기관인 동네의원에서도 신종플루를 진료해 확진 검사 없이도 의사 판단에 따라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를 처방하고, 이 처방전으로 동네 약국에서 약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7천명 이상 확진자가 나와도 역학조사 인력부족으로 확진 후 재택배정이나 병상배정이 며칠씩 걸리는데 만명 이상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우리가 고위험군을 선별해서 진단과 투약까지 증상 5일 이내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외래 진료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독감 유행이 심해 3개월간 300만명 정도의 타미플루가 처방됐을 때 전국 모든 소아청소년과과 내과, 이비인후과의원 등에서 외래진료가 1~2시간 넘게 대기할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처럼 선별진료소나 일부 호흡기클리닉을 운영하는 상황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대개의 외래에서 환자를 진료할 수 있어야 하고 재택치료가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하다. 의료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경구약제가 효과적으로 투여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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