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수(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요즘 의료기기업계는 GMP 인증 지연 때문에 요건이 정한 90일 전 신청을 하고 정해진 날짜에 결과 통보를 받지 못해 대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의료기기 GMP 인증의 만성적인 적체 요인은 심사인력 부족 등 구족적인 문제와 코로나19로 인한 시기적인 원인 두가지다.

근본적인 문제는 3,000개가 넘는 GMP 심사 건수를 담당하는 심사원 수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기존 4개에서 2개를 추가해 전부 6개 기관이 심사를 하고 있고 일부 인원도 충원했지만 심사가 집중된 서울이나 경기지역 지방청의 인력 부족으로 일종의 지역별 행정 병목 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병목 현상과 더불어 GMP 심사가 돌아오는 3년 주기마다 신청 건수 증가로 심사기관과 정부 그리고 의료기기업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의료기기업체는 이 주기를 피하고자 제조소별 심사를 나누거나 미리 신청해 서류를 받아 분산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주기적인 적체 현상을 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GMP 심사라는 수요와 행정적 절차를 위한 공급이 맞아야 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신청 건수를 감당하지 못해 3년 주기마다 만성적인 심사 적체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한 심사 기준 강화로 검토 요건이 강화되고 인증심사에 소요되는 기간 또한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현지 실사를 서류로 대체해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최근 몇몇 의료기기업체의 서류에 대한 신뢰성 문제로 과거보다 심사원의 서류 요건 확인이 강화돼 생기는 원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의료기기업계가 일종의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원인과 현상이다.

하지만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부가적인 적체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4등급 체외진단 제품에 대한 인증 시한을 내년 4월 말까지 정해 대부분 회사가 법정 기한인 90일 이전인 12월이나 내년 1월에 신청할 것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신청 건수 증가가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체외진단제품이 의료기기로 전환된 이후 일정 기간 기존 요건을 인정하던 것에서 국제조화에 따라 4등급부터 점진적으로 체외진단법이 정한 의료기기로의 전환을 계획했고 이 과정에서 체외진단의료기기 시한이 정해졌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3년 주기의 인증 심사 만성 적체 시점과 코로나로 인한 서류심사 전환이 엉켜버린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이 겹친 데는 안전에 대한 국민 눈높이가 올라가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인해 정부 규제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 분명한 점은 언젠가는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지금 닥쳐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의료기기업계는 이 모든 문제가 사람의 문제이니 당장 심사자를 늘리고 기한을 단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장기적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받아들여지기도 쉽지 않다.

지금의 문제는 인증기관 심사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일부 지방청에서 발생하는 병목현상 때문이다. 결국 담당 공무원이 늘어야 하는데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인력 충원을 추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거쳐야 하는 과정이나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그렇다면 제도를 변경 혹은 개선하는 건 어떨까. 현재 구상 중인 의료기기 GMP 개선 방향으로 안전 강화를 위해 품목군별 인증방법을 도입한다거나 혹은 제조소별 GMP 인증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두 가지 방법 모두 지금보다 많은 인력과 노력이 든다는 점이다. 물론 보다 높은 수준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치러야할 대가라고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심사 적체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단은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최근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이 추진하고 있는 MDSAP(Medical device single audit program·의료기기 단일심사프로그램)은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중 하나로 각국 정부가 회원국 기준을 적용해 한 번의 인증으로 여러 나라가 혜택을 보는 방법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회원국에서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몇 개 회사가 참여해 실질적인 경험을 했다. 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향후 국제조화의 방향으로 볼 때 효과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전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이 나라별 호응도에 따라 다양해 언제 적용될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증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해당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몇 해를 기다려야 되는지 알 수 없다. 정책입안자는 현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분석을 한 뒤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민원인의 불편이 지속하거나 과다하게 영향을 미처 의료기기 수급 등 문제로 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한 인원 하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가장 효과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는 정부와 의료기기업계 그리고 인증기관이 모두 협력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업계는 현재와 같은 인증심사 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OECD 국가에 대한 요건 조정과 장기적으로 최초 인증과 위해제조사 중심의 직접 심사를 통해 관리 영역과 수요 조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선택하려면 사실 업계와 정부의 신뢰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요건 조정이 국민 안전에 영향을 미친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어난 몇몇 사건은 이러한 제안에 대한 설득력을 잃게 만들어 의료기기업계가 일부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원인 제공자로서 책임이 있다.

장기적인 방법으로 제안한 최초심사와 위해제조자 중심의 실사는 현 제도처럼 현지실사에 대한 모든 업체에 의무를 부과함에 따라 감당해야 할 압도적인 숫자를 조절할 수 있게 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선택과 집중을 통한 관리가 가능해 투입대비 결과에 대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앞으로는 허가보다는 사후관리 영역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기술 발달로 안전성에 대한 모든 요인을 검증하기에는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이 사후관리체계 강화다.

정부가 의료기기 고유식별코드(UDI) 제도를 전면 도입해 제품 추적을 강화하는 것 또한 이러한 체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한번 인증 받고 사용된 의료기기가 몇 십 년 동안 같은 성능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허가 당시 의료기기 안전성·유효성이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갖는지에 대한 사용 중 관리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영상진단장비의 품질관리인증제도가 아직 제한적으로만 적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업계가 고통 받고 있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과 같은 다중의 요인으로 인한 인증심사 적체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가 나서 중장기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의료기기업체가 겪고 있는 당장의 의료기기 GMP 인증 어려움을 먼저 해결해주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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