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야당, 민간 대형병원 두고 공공병원 향해서만 병상 확보 요구
"공공병원 입원해 있는 사회적 약자 내쫓으라는 것"
[라포르시안] 최근 한 일간지에서 코로나 전담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이 전체 병상 중 일부만 격리병상으로 사용하고 상당수 병상을 일반환자 진료에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행정명령을 통해 민간병원에 중환자 병상을 동원하는 데 나서면서 비코로나 중환자들이 병실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허가병상 603개 중 현재 비코로나 환자치료를 위한 일반병상은 233개이고, 나머지 병상은 모두 코로나19 환자치료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370개 일반병상 공간과 이를 위한 의료인력 전부를 코로나 환자를 볼 수 있도록 전환해 감염병전담병상 128병상을 운용하고 있다. 격리치료 병상은 1인실을 기본으로 병상 간 이격거리 규정을 따라야 하고, 의료인력도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정도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운영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의료취약계층 환자 등 필수의료 서비스를 위한 최소한의 일반병상만 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현재 민간병원에서 제공한 코로나 병상은 일부에 불과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코로나19 입원 환자 현황(2020년 1월~2021년 10월)'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입원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수는 민간의료기관이 285개소(75.4%)로 공공의료기관 93개소(24.6%)보다 3배 정도 많다.
하지만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수는 공공의료기관이 17만 6372명(66.5%)으로 민간의료기관 8만 8656명(33.5%)에 비해 2배 더 많았다.
코로나19 중환자 치료는 민간의료기관이 83개소(71.6%)로 공공의료기관 33개소(28.4%)에 비해 3배 가까이 더 많았다. 환자수는 민간의료기관 4,400명(59.4%)으로 공공의료기관 3,002명(40.6%)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전체 의료공급체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병상수 기준 9%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70% 가까운 코로나19 환자 입원치료를 맡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공공병원이 더 많은 격리치료 병상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가 지나치고, 이들 병원을 주로 이용하는 의료취약층을 진료공백 상태로 방치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민사회에서는 전체병상의 9%에 불과한 공공병원 병상에만 병상 확충을 요구하는 건 공공병원을 마지막 의료 버팀목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제기했다.
불평등끝장2022대선유권자네트워크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준),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병상 동원을 한다고 하면서도 병상과 인력이 가장 많은 대형병원 병상을 1.5~3% 밖에 동원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대형병원에서 꼭 진료해야 할 환자의 비중은 대형종합병원은 평균 32%, ‘빅5’ 병원이라 하더라도 45%에 그쳤다. 상급종합병원 45개에서 최소 10% 병상을 비우는 것은 비응급, 비중증 환자의 입원 우선순위를 조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보수 정치권에서는 연일 국립의료원 및 공공병원을 중증환자 전담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공공병원 대부분은 민간병원과 달리 코로나 치료 전담병원이거나 기존 환자진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마치 공공의료기관을 더 비울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다른 시립병원이나 지방의료원이 문을 닫아 달리 갈 데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숙인 등을 쫓아내라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공공의료기관이 제역할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원과 인력이 충분한 민간의료기관들이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국립중앙의료원 소속 내과전문의)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공공병원 상황은 전쟁터 그 자체이다. 환자를 입원시켜달라는 연락이 하루에도 수십통이 오지만 ‘현재 병실 없습니다’ 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며 "주3회 월수금 투석을 해야하는 만성신부전 환자가 5일째 투석을 하지 못해 얼굴이 붓고 숨이 찬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투석기가 없어 의사, 간호사가 퇴근도 못하고 야간투석을 돌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이 공동대표는 "서울에는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2,000병상, 3,000병상 규모 대형병원이 몰려 있고 CT, MRI, 로봇수술 등 의료장비도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많지만 공공병원은 5.4% 밖에 되지 않고 94.6%는 민간소유병원이다. 이들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병상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며 "바이러스와 싸울 의사, 간호사가 다 민간소속이고 병실, 인공호흡기도 민간병원에 집중돼 있는데 시설이 노후되고 인력도 부족한 공공병원에게 민간병원보다 더 앞에 서서 맨몸으로 막으라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의료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감염병전담병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공병원도 거의 소진됐다. 최근 서울시는 산하 시립병원을 모두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공공병원을 전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면서 이들 병원을 주로 이용하는 취약층 환자들의 의료이용 접근성이 크게 떨어져 진료공백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공동대표는 "서울에 살고 있는 수많은 노숙인, 쪽방주민, 외국인노동자, 새터민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다닐 수 있는 공공병원은 이제 국립중앙의료원 밖에 남지 않았다"며 "2,000병상짜리 한 대형병원이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마지못해 한달간 30병상 내주더니 지난 1년 내내 111개 코로나병상을 유지한 국립중앙의료원 보고 노숙인을 치료해야 하는 그 나머지 병상마저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신규 확진자 급증으로 병상 부족이 심화되자 재택치료 원칙으로 전환하면서 노숙인 등 취약층은 확진되더라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최규진 건강과대안 운영위원(인하대 의료인문학교실 교수)는 "서울역에는 코로나에 감염된 노숙인들이 방치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숙인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경찰과 방역요원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어느 공공병원에 자리가 날 때까지 지키고 서 있었다"며 "이젠 공공병원에 더 이상 자리가 나지 않는다는 걸 노숙인 당사자도 알고 방역요원도 알기에, 포기하고 그냥 길바닥에 방치한다"고 전했다.
최 운영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공공병원을 더 쥐어짜 코로나 대응을 하자고 하는 것은 공공병원에 입원해있는 사람들 대부분 응급이거나 중증인 사회적 약자들을 내쫓으라는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 대선후보들은 지금이라도 민간병원을 동원하고 공공병원 그리고 의료인력 확충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