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새 법규위원장 이어 유통구조위원장도 사퇴
유철욱 회장 “위원회 문제 아닌 개인 사정 때문"
업계서는 "일방적인 유통구조 개선안 추진 때문"

[라포르시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이하 협회·회장 유철욱)의 파행적인 위원회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병원과의 불미스러운 특허 소송 논란으로 이달 초 협회 산하 법규위원회 위원장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난 데 이어 최근 유통구조위원장마저 전격 사퇴했기 때문이다. 

협회는 제9대 유철욱 집행부가 공식 출범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2명의 위원장이 연이어 중도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회무 공백과 차질을 빚게 됐다.

더욱이 법규위원회·유통구조위원회 위원장 모두 명목상 개인 사정을 이유로 사임했지만 그 배경에는 사실상 유철욱 회장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협회 내홍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협회 관계자 및 유통구조위원회에 따르면 곽우섭 유통구조위원장은 지난 24일 해당 위원회 회의 당일 유 회장에게 사임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 회의에서는 앞서 라포르시안이 보도한 ▲의료기기 도매업 허가제 신설 ▲치료재료 관리료 산정 ▲의료기기 유통관리 일원화를 골자로 협회가 보건복지부에 전달한 ‘의료기기(치료재료) 유통구조 개선’ 문건 내용이 다뤄졌다. <관련 기사: 병원·의사와 ‘특허소송’ 논란 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장 사임의료기기협회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안’ 논란..."부실한 내용"> 

이 자리에서 일부 위원들은 유통구조위원회와의 의견수렴 없이 정부에 의견을 전달한 절차상 문제와 ‘의료기기 도매업 허가제 신설’ 추진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3월 10일 임명된 곽우섭 위원장은 협회가 간납사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 의료기기유통구조TF를 위원회로 격상한 유통구조위원회를 이끈 지 약 8개월 만에 이날 회의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통구조위원회 한 위원은 “곽 위원장의 사임 이유가 유통구조위원회와 회원사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회장 주도로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안이 정부에 전달된 점에 대해 위원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부담과 위원장으로서의 한계를 느끼지 않았겠느냐”고 추정했다.

기자는 곽 위원장에게 중도 사퇴 이유를 듣고자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신 유철욱 회장을 통해 우회적으로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곽우섭 위원장으로부터 문자를 통해 위원장을 중도 사임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받은 게 맞다”며 “그 분과 충분히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사임 이유는 위원회 문제가 아닌 개인 사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유통구조위원장 사임 이유가 회장의 일방적인 위원회 회무 개입과 독단적인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안 추진 때문이라는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관련 기사: 내우외환 겪는 의료기기산업협회, 대체 무슨 일이?>

유철욱 회장은 “전임 회장 시절 의료기기유통구조TF를 내가 맡았고, 유통구조위원회로 승격시켜 의료기기 유통구조를 선진화·투명화하겠다는 목표를 협회장 공약사업으로 발표했다”며 “하지만 의료기기 유통구조를 잘 아는 전문가가 없다보니 유통구조위원장 적임자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렵게 맡아준 곽 위원장이 본인도 유통구조를 잘 모르고 어떻게 해야 될지 도움을 요청했기에 위원회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협회장이 서포트해주고 이후에는 위원장이 알아서 위원회를 이끌어가도록 이야기했다”고 해명했다.

의료기기산업협회는 다국적기업·국내사·수입사를 총망라한 의료기기 이익단체로서 전문성을 내세운 각 위원회 활동을 통해 의료기기 제도·정책 수립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사이 정부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법규위원회와 그간 간납사 문제 해결에 앞장서왔던 유통구조위원회마저 연이어 위원장이 중도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이자 위기를 겪고 있다.

법규위원장은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있으며, 유통구조위원장 역시 협회 수석부회장이 자리를 메꾸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히고설켜 비효율적이고 불투명한 의료기기 유통구조를 선진화·투명화 하자는데 의료기기업계와 정부 모두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협회가 주장하는 제도개선안이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조차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은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협회가 추진하는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이 명분과 실리·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협회장의 ‘일방통행’ 의사결정이 아닌 유통구조위원회의 자율성·대표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의견수렴부터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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