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성범죄도 포함돼…운영하던 의원 폐업조치

"아청법 악용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 부당한 과잉입법"

▲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지난 9월 26일 국회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8월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이 시행된 이후 실제로 성범죄를 저질러 취업제한을 받은 의료인이 생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취업제한 처벌을 받은 의료인 중에는 성인 대상 성범죄를 저질러 아청법의 적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보건복지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성범죄자 취업제한 위반 현황 적발 자료’에 따르면 아청법이 시행된 지난해 8월 2일부터 올해 8월 말까지 성범죄로 취업제한을 받은 의료인은 모두 2명이다.

이 중 한명은 A한의원 원장으로 지난 8월 성범죄 경력조회를 통해 아청법 위반으로 적발돼 취업제한이 적용됐다.

현재 해당 원장은 A한의원을 자진폐업한 상태이다.

또 다른 취업제한 대상자인 B여성의원 원장은 지난해 8월 2일 이후 저지른 성범죄로 올해 3월말 형을 확정받았다.

B의원도 현재 폐업조치가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B의원 원장은 아동․청소년이 아닌 성인 대상 성범죄로 적발돼 10년간 취업제한 대상에 적용됐다는 점이다.

사실 성인 대상 성범죄로 취업에 제한을 받은 경우는 B의원 원장 사례 외에도 두건 정도가 더 있었다.

다만 이 두건의 사례는 개정된 아청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성범죄 행위에 대해 법 시행 이후 형이 확정된 경우이다. 

그러나 B의원 원장은 개정된 아청법 시행 이후 저지른 성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최초의 취업제한 적용이라는 점에서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아청법 제56조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뿐 아니라 성인 대상 성범죄자까지 10년 동안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9월 16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리베이트 쌍벌제 소급적용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개선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의료계 "성인 대상 성범죄까지 10년 취업 제한은 부당"법 시행 이전부터 의료계는 아청법에서 성인 대상 성범죄자까지 10년간 취업제한을 적용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지키자는 법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강력 반발해왔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개선을 위한 탄원서 서명운동을 벌인바 있다. 

의협은 탄원서를 통해 “아동과 청소년을 성범죄자로 보호한다는 아청법의 입법취지를 제고하고 직업 수행의 자유를 합리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성인 대상 성범죄는 죄질의 경중을 감안, 금고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로 의료기관 개설 취업제한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협은 아청법이 개선되지 않으면 '진찰행위 중지권고'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의협 임병석 법제이사도 최근 열린 ‘아청법의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아청법의 목적은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지키는 것인데 성인대상 성범죄자까지 포함해 10년간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한 과잉입법“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의사총연합도 성명서를 통해 취업 및 개설제한을 성인 대상 성범죄로 확대하는 것은 법 취지에도 맞지 않고 억울한 피해자만 양산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 역시 10년간 취업제한 대상에 성인 대상 성범죄자를 포함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법무법인 청파 장성환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청법 취지는 성범죄 경력이 있는 이들의 접근을 막아 성범죄를 예방하자는 것인데 성인 대상 성범죄까지 10년간 취업 제한을 하는 것이 취지와 적절한 접근인지 의문”이라며 “과도한 제한을 할 때는 목적에 타당한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 대상 성범죄까지 취업제한을 적용한 이번 사례로 인해 의사에게 아청법을 악용하는 이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성인 대상 성범죄까지 취업제한을 적용한 이번 사례는 의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아청법을 악의적인 목적으로 역이용하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의사는 어디서도 자신이 의사라고 신분을 밝힐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성범죄자의 취업제한을 총괄하고 있는 여성가족부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와 성인 대상 성범죄를 따로 구분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여가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 관계자는 “아청법에서의 성범죄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와 성인 대상 성범죄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성범죄 대상을 따로 구분하고 있지 않다”며 “성범죄 대상을 구분하면 좋겠지만 경찰은 대상 구분없이 단지 성범죄로 자료를 여가부에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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