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잠을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게 자면 부지런하고 생산적이고, 많이 자면 게으른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은 기면증 환우들이 사회생활에서 오해를 받게 하고, 병을 이해하지 못해 가족들과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 

기면증은 잠을 조절하기 어려운 병에 걸려 많이 자게 되는 것으로 가까이에서 이 상황을 이해해 주어야 할 가족들이 의지 부족으로 환우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환우 스스로도 혹시 내가 잠을 조절 못하는 것을 의지 부족으로 여겨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 

기면증은 심리학적인 질환이 아니다. 다른 여타 내과적인 질환처럼 기면증이 발병에는 생물학적인 원인이 작용하며, 뇌 안에 하이포크레틴이라는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게 된다. 하이포크레틴은 뇌 안에서 먹고, 자고, 깨고 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조절하는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한다. 하이포크레틴은 우리가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세로토닌을 조절하고, 의욕이나 욕구를 조절하는 도파민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근본적으로는 하이포크레틴이 부족하거나 없어지면 식욕이나 수면 욕구를 조절이 어려워진다. 기면증을 앓으면서 우울증이나 비만이 생기기 쉬운 원인도 여기에 있다.
 
심리학적으로 기면증을 앓는 경우 우울증이 쉽게 동반되는 원인이 비만인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원인과 유사하다. 대표적인 상황을 예를 들면, 스스로 잠을 조절하지 못하고, 의도와는 상관없이 잠에 들어 지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중요한 시험이나 미팅에 늦거나 참석하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스스로 자책하고 자신감을 잃게 되고, 심할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기면증 가족들과 상담하다 보면, 환우를 대하거나 돕는데 있어 스스로 무기력하게 느끼거나 방치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구체적이고 지시적으로 개입하여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상담에 있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기면증은 병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아 환우를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상황이 되기 쉬운 질환이다.

이와 관련되어 기면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사회적인 인식 부족으로 인해 기면 증상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진단받는 것을 꺼리거나 검사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진단이 늦어지면, 치료도 늦어지게 되므로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잠과의 싸움을 하느라 기회를 놓치거나 힘든 상황에 처해지기도 한다.

물론 기면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진료실에서 종종 마주하게 된다. 이런 분들이 점점 많아져 기면증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달라지길 바라며, 기면증을 앓고 있는 환우들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보낸다.

[글: 서울 드림수면의원 이지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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