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이 직면한 의료윤리 문제 다룬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발간

[라포르시안] 연명의료, 임신중절, 치매 돌봄, 유전자 조작, 건강세, 의료 개인정보...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의료윤리 문제를 안고 있는 주제다. 흔히 의료윤리 문제는 의료현장과 의료인이 당면한 문제일 뿐 일반인는 무관하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렇다면 안락사와 존엄사는 어떻게 다른지, 한국에서 임신중절은 어떤 맥락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의료 개인정보는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 생각한다면 의료윤리가 결코 의료현장에 있는 의료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휴머니스트)'는 제목 그대로 언젠가 아팠고, 지금 고통받거나 언젠가 아플 이들, 돌봄과 치료의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은 안락사, 임신중절, 치매 돌봄, 감염병, 유전자조작, 건강세, 의료 정보 공개 등 지금 한국의 현대 의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의료 이슈를 소개하며, 각각의 역사적 맥락을 안내한다. 

저자인 김준혁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에서 생명윤리 석사를,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료인문학 박사를 마친 의료윤리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국내에서 가장 논쟁적이며 각자의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료 이슈 8가지를 꼽았다.

연명의료, 임신중절, 치매 돌봄, 감염병처럼 우리의 건강과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부터 유전자 조작, 건강세, 의료 개인정보, 환자 및 보호자-의료인의 관계처럼 외국에서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는 주제까지 다양하다. <관련 기사: 진상 환자를 거부할 수 있을까? 살인자가 의사가 된다면?>

의료 이슈들의 역사적·과학적·철학적·경제적 배경과 그에 적용되는 이론 등을 살피고, 실제 사례와 영화, 소설 드라마 등에서 이야기를 빌려와 각 이슈를 둘러싼 환자, 보호자, 의료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입장을 살펴봄으로써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이론적 논의를 친숙하게 다뤘다. 

 『나는 독자가 책장을 덮고 난 후 스스로 의료윤리 및 관련 논쟁을 진단하고 각자 나름의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의료윤리’는 의료인만이 지켜야 할 규칙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연명의료 중단이나 안락사를 선택할 것인가? 임신중절은? 노인을 포함한 돌봄의 문제는? 당면하지 않았을 뿐, 그것은 환자와 가족, 돌봄 종사자, 사회와 국가의 문제, 즉 나의 문제다.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문제를 당면하게 됐을 때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아픈 당신은, 언젠가 아플 수 있는 당신은, 주변 사람의 아픔을 함께 겪고 그들을 돌보게 될 당신은 의료윤리의 문제를 직접 껴안을 수밖에 없다.』 <p.8, 서문 「지금 의료윤리를 말한다는 것」 중에서>

질병과 돌봄, 치료가 일상이 됐음에도 ▲‘의식도 병세의 호전도 없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과연 윤리적인가?’ ▲‘치매 환자는 무능력한가? 타인이 치매 환자와 관련한 결정을 다 내리는 것은 타당한가?’ ▲‘모두에게 공평한 코로나19 백신 분배 방식은 무엇인가?’ ▲‘유전자조작은 어디까지 허용되며 규제가 필요하지는 않은가?’ ▲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 세금은 정당한가?’ ▲ ‘의료 개인정보는 어디까지 알려도 되는가?’ ▲ ‘의사 파업에서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한 점은 무엇인가?’ ▲ ‘환자-보호자-의료인의 관계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질병을 둘러싼 환자, 보호자, 의료인 더 나아가 사회의 입장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뱅상 랑베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뱅상 랑베르는 교통사고를 당해 11년간 사지마비, 미약한 의식 상태로 지내고 있다. 보호자인 아내와 의료진은 환자의 생을 고통스럽게 잇는 의료적 개입은 무의미하므로 연명의료 중단을 주장한다. 환자의 가족과 사회(가톨릭교회)는 의료 행위 중단이 의도적 살해와 같다고 보고 연명의료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환자를 둘러싼 양쪽의 주장은 모두 타당한 원칙을 좇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도 ‘연명의료 중단이 맞다 혹은 틀리다’라고 쉽게 답할 수 없다. 연명의료 지속과 그것의 중단을 결정할 때 어떤 결과가 따라올 것인지, 이로 인해 주변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정말 환자와 보호자, 그 가족을 위한 선택이 맞는지, 관련 제도나 지원이 어떻게 되는지 등에 관해 따져봐야 한다. 

아픈 자와 돌보는 자, 그들과 관계를 맺고 치료를 행하는 자의 상황과 의료 이슈 맥락을 살핀 후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의료윤리다.

 『‘윤리’라는 것은 반드시 현실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지닌다. 의료윤리는 특히 그렇다.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논의는 의료윤리에서 무의미하다. 의료윤리는 이론적 논의를 현실에 적용해 현실 속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어야 한다.(그래서 응용윤리의 대표 분야로 꼽힌다.) 그런데 이때 현실의 문제를 푼다는 것은 그 시시비비를 가려 일도양단의 결정을 내리는 일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결정은 법의 영역에 맡겨두자. 의료윤리는 다만, 현실의 문제를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 그 ‘살아냄’에서 의료윤리적 통찰이 나온다.』 < p.30, 1장 「연명의료 중단과 안락사」 중에서>

저자는 각 이슈와 관련된 실제 사례,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양한 입장과 배경을 끌어들인다. 연명의료 중단의 법제화를 끌어낸 보라매병원 사건과 김 할머니 사건, 낙태죄 헌법 불일치 결정, 고 신해철 사망 사건, 귀순 병사 수술 집도의 이국종 교수와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피해자 담당의사의 환자 비밀 유지 의무 위반 논란, 2020년 의사 파업 사태, 코로나19 백신 분배 편향 문제까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례를 들며 의료윤리적 맹점을 파헤친다. 

저자는 책에서 "의료윤리가 해야 하는 역할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닌, 참여자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윤리적 방향으로 결론을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라며 "내 가족의 일을, 내 진료를, 우리 지역사회의 결정을 외부의 ‘초연한 관찰자’가 와서 툭 던지고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윤리적 판단은 과학이 아니며, 심지어 의료적 행위 또한 물리학과 동일한 의미의 과학이라곤 말할 수 없다. 의료윤리학자는 윤리적 갈등으로 깨진 이야기를 모아서 그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재구성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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