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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인·싸] EU 의료기기 규제 강화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다박선주(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회 운영위원장)

[라포르시안] 좋은 규제란 무엇일까. 정책과 규제는 ‘국민 안전’과 ‘산업 발전’이라는 두 가지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둘 가운데 무게를 더 둬야한다면 국민 안전이 우선이다.

의료기기에서 ‘안전하다’라는 의미는 품질·공급·사용 측면 모두를 충족해야한다. 안전하면서 목표로 한 성능을 내는 좋은 ‘품질’의 의료기기가 환자에게 적시에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사용자가 올바르게 ‘사용’했을 때 비로소 의료기기 안전성이 확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료기기 규제는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국가마다 서로 다른 프레임의 규제가 있을 수 있고 엄연한 차이도 존재하지만 '어차피 사람에게 사용하는 똑같은 의료기기인데 왜 차이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무역진입 장벽을 높이는 도구로 규제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국가별 문화 및 인종 간 차이가 있는 만큼 의료기기 규제가 완벽히 국제조화를 이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필요한 규제는 받아들이되 우리 상황에 맞게 수용함으로써 의료기기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가지 우려되는 건 최근 의료기기 수급 문제가 빈번하게 거론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의료기기 공급 문제는 전 세계가 복잡다단하게 엮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의 의료기기 규제 전반에 걸친 임상데이터 ‘최소 부담 원칙’(least burdensome principle) 기조를 토대로 자국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견인해왔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들이 혁신기술과 혁신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한 한국 또한 스타트업들이 디지털 헬스를 선도하며 실리콘밸리 기업처럼 성장을 꿈꾸고 있다. 유럽 역시 오랜 시간 의료기기업계의 자율적인 관리에 좀 더 무게를 뒀지만 일련의 의료기기 안전 문제가 부각되면서 규제 강화 논의가 이뤄져왔다. 특히 새로운 EU MDR(Medical Device Regulation·유럽 의료기기 규정)은 환자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 고삐를 단단히 조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코로나19로 인해 당초 시행을 1년 늦춰 올해 5월 26일부터 MDR를 본격 시행하고 있으며, 전환 기간은 4년이다. 다만 MDR 이전 제도에 적용되는 제품은 2025년 5월까지 공급이 가능하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MDR이 남의 나라 규제인데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있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필수의료기기 중 상당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문제는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럽의 MDR 도입은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MDR은 단순히 라벨이나 마크 변경이 아닌 프레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역내 대리인이라는 유명무실해 보였던 책임자 대신 실제 제조자 및 제조의뢰자에게 강력한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글로벌 의료기기회사들은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제품에 대해서는 제조의뢰자나 제조자가 아닌 판매자 지위로 변경하고 있다. 더불어 제조의뢰자를 통합해 가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는 관련 규정이 있어서 변경한 게 아니라 의료기기업체들이 규정에 대한 영향을 분석하고 리스크 평가를 통해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조자-제조의뢰자 조합의 품질시스템 적합인정을 받아야 하는 한국에서는 다수의 GMP 변경과 신규신청이 있었다. 신설된 라벨 요구사항에 따른 허가 변경 또한 많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라벨 변경은 제품 변경 없이 특정물질의 존재, 가령 발암성이 있는 물질이 있다면 표시해야 하거나 사용목적 등을 상세하게 표시하는 등 대부분 국내에서도 허가 변경을 거쳐야 하는 경우 등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건수가 발생했고, MDR 전환 기간 동안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많은 의료기기업체들이 절대적인 업무량 증가로 인력 증원을 고려하는 동시에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MDR 파도를 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규제 당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상황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과다·과중한 업무 증가로 규제업무 인력 이탈이 일어나고, ‘민원 적체’라는 늪에 빠져있는 게 현실이다. 공무원 증원은 상당히 어려운 산을 넘어야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한정된 인력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일에 자원을 집중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해야한다. 제품 변경은 없지만 MDR로 인한 변경을 포괄적으로 검토해 절대적인 업무 양을 조절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양한 규제 변화로 글로벌 공급망은 불안정해 보인다. 따라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리스크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안정적인 의료기기 공급으로 환자 치료에도 차질이 없을 것이다.

<헬스인·싸>는 각종 행사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트렌드를 잘 쫓아가며 주목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인사이더(insider)'와 통찰력을 의미하는 '인사이트(Insight)'를 결합한 단어입니다. 
앞으로 <헬스인·싸>는 의료기기 인허가, 보험급여, 신의료기술평가, 유통구조, 공정경쟁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폭넓은 안목과 통찰력을 공유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료기기 제도·정책을 살펴보고, 나아가 의료기기업계 정부 의료계 간 소통과 상생을 위한 합리적 여론 형성의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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