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지털융합팀 팀장, 미래의료원정대 생애맞춤 건강관리 분과 총괄위원)

[기획칼럼(1)] 서비스디자인은 보건의료산업의 미래다[기획칼럼(2)] 디자인만으로 병원내 감염·폭력사고 줄인다

최근 대안적 병원의 시도로 많이 알려져 있는 제너럴닥터의 김승범 대표가 서비스디자인 회사를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을 위해 의료서비스디자인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주요 병원들이 서비스디자인 팀을 신설하거나 학습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병원 혁신을 위해 새로운 방법이 시도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인다.

올해 5월, 직원이 22만명이 넘는 글로벌 경영컨설팅 기업인 엑센추어는 200여명 규모의 영국 서비스디자인기업인 피요르드를 인수했다. 규모 있는 경영컨설팅 회사가 디자인기업을 인수하여 새로운 사업을 대비하는 동향이 나타나고 있다. 

두 가지 사건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 전체 산업에서 서비스산업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제조사의 효율과 생산성, 최적화로 승부하던 제조산업의 혁신 논리 대신 소비자의 심리와 욕구에 중점을 두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경영컨설팅은 가고, 서비스디자인이 오고 있다.

병원은 혁신의 최선선이라고 할 만큼 많은 경영혁신의 시도가 있어왔지만, 고객 관점에서 보자면 고객 만족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라고 하기 어려운 면이 아직 많다. 아이를 키워 본 경험자라면 누구나 한밤의 응급실에서 고열의 아이를 안고 대기시간 동안 어떤 안내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봐야할지 알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병원이 더 고객을 이해하고 배려심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증거는 아직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의료서비스는 서비스의 고객인 환자, 환자 가족들은 감정적이나 신체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서비스 공급자인 병원과 의료진의 지위와 권위가 형성되게 된다. 반면, 특수한 공급자적인 지위로 인해 환자를 병원의 서비스를 이용해주는 고객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기회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본질적으로 수요자 중심의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병원은 의료서비스 공급자간의 치열한 경쟁, 각종 규제 등 의료산업이 처한 복합적 외부적 요인들과 고객의 감성과 심리적 요구, 서비스 품질에 대한 기대감 상승에 대한 대응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의 변화에 따라 이슈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의료서비스는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 고객의 심리와 감성에 대한 섬세한 터치가 중요한 서비스이다. 의료서비스는 고객을 섬세하게 배려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고객 중심으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공급자의 효율성과 생산성에 집중하는 기존의 경영 관리적 관점만으로는 혁신의 기회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서비스가 고객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히 들려서, 오히려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가 2005년 세계 362개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5%가 ‘우리 회사는 고객지향적인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80%의 기업들은 자기 회사가 경쟁사보다 차별화되고 우수한 상품,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업들의 믿음과는 달리, 고객들의 인식은 너무나 달랐다. ‘당신과 거래하는 기업이 경쟁사보다 차별화되고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느냐’는 똑같은 질문에 대해 고객들 중 불과 8%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던 것이다.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기업이 고객 중심의 마인드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조사되었던 기업의 95%는 경영의 최우선 초점을 고객만족에 두고 있다고 답했던 기업들이었다.

이 사례를 통해 서비스의 제공자인 기업은 고객의 속마음에 숨어 있는 욕구를 포착해내는 데 명백한 한계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공자는 제공자로서 자기 입장과 시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다른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업과 거래를 중단한 고객의 60~80%가 직전에 실시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만족한다'거나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로열티가 낮은 고객도 언제든 '만족한다'고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의 마음은 고객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마케팅 리서치의 기본적인 전제마저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객 중심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접근 방법과는 본원적으로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 대안적 접근법으로서 고객 관찰을 바탕으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잠재된 욕구를 발견하고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디자인 방법인 ‘서비스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서비스 디자인은 사용자의 행동 변화를 가져오는 심리적 스위치를 켜는 역할을 하는 고객 중심의 서비스 개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디자인 접근 방법으로 서비스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선진국은 공공서비스 영역인 의료, 복지 교육, 치안, 교통 등 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데에 서비스 디자인을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 사진출처 : 월간디자인, 2012년 9월호

사진 속의 할머니는 ‘페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라는 분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동이 불편해보이니 주변의 시민들이 대신 문을 열어 주거나 짐을 들어주는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그녀는 당시 실제로는 26세였다. 페트리샤 무어는 26세였던 1979년부터 자그마치 3년간이나 자발적으로 80세의 노파로 사는 경험을 했다.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노인의 삶을 체험해보고 그들에게 맞는 눈높이로 디자인을 하기 위해 그녀는 그 일을 해냈던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건축이나 디자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노인은 소비자가 아니라는 잘못된 시각이 있었죠. 근본적으로 노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관찰이나 설문조사 같은 방법도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충분히 소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3년간의 경험으로 나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노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현재 페트리샤 무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니버설디자인의 거장 중 한명이다.<월간디자인, 2012년 9월호 중에서 발췌>

디자이너들은 직업인으로서 훈련되고 성장하는 전 과정을 통해 디테일한 제품/서비스의 차이를 느끼고 감지하는 훈련을 거듭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감수성이 높으며 지각, 인지, 감성의 예민한 감지자로서 미묘한 위화감을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뛰어난 공감력으로 사용자 경험상의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 강화된 전문가로서 키워진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고객이 느끼는 서비스의 경험 가치를 잘 정렬함으로써 우리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설계자의 역할자로 적합한 것이다.

병원의 문제점과 고객의 잠재 욕구를 발견해내는 역할에 있어서, 높은 공감력을 가지며 인식의 가치가 잘 정렬되어 있는 디자이너야말로 최적의 문제 해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제에 대한 높은 차원의 인간 중심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병원의 문제를 진단해 치료한다고 하면, 평생을 의료서비스라는 고도화된 전문성의 성역에서 살아온 병원 관계자 관점에서는 주제넘은 주장이라 느껴질 수 있다. 컨설팅이라는 것은 본래 특정 도메인의 전문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서 갖춰진 전문성과 그 영역이 가진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는 능력과는 서로 관련성이 없다. 이빨을 잘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그가 고객 관점에서 편안한 경험을 제공하는 치과의 서비스를 잘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하는 독특한 방법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도구를 가지고서 병원이든, 은행이든, 사회 각처에서 생기고 있는 문제들을 푸는 것이 바로 컨설팅업이다.

2차 대전 때 잠수함에는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술이 없어서 산소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토끼를 함 내에 두었다가 토끼가 죽으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식으로 감지기 대신 토끼를 활용하였다고 한다. 소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는 사회의 문제를 예고하는 데에 작가의 존재가 바로 잠수함 속 토끼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병원의 문제를 발견하는 토끼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해결책을 제안하고 그것을 실제로 가시화 시켜낼 수 있다. 병원은 디자이너들의 민감성을 활용하여 예고되는 문제를 찾고 개선해야 한다.

의료서비스디자인은 의료산업을 수요자 중심으로 다시 설계 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혁신적 개념이다. 단지 인테리어와 기기, 가구의 형태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병원에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고객 중심의 혁신이 필요한 과제를 찾고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민감한 레이더로서 제품, 환경, 나아가 병원의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문제점을 창의적 해결책으로 개선해내고, 고객의 심리를 움직이는 스위치를 켜는 역할을 함으로써 고객 감동의 병원으로 혁신하도록 돕는 훌륭한 조력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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