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휴(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감사)

[라포르시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2020년 생산 실적 통계에 따르면, 의료기기 제조 및 수입을 하는 사업자 중 품목 수 20개 미만 업체의 종사자가 전체의 79.46%를 차지하고, 생산액은 45.28%로 조사됐다. 반면 50개 이상 업체는 종사자가 1.16%에 불과했지만 생산액은 40.28%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에 근거하면 국내 의료기기산업은 양극화가 뚜렷한 중소기업업종이다. 의료기기는 불가역적인 생명을 다루는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만큼 규제 장벽이 높고 기술집약적이며 사용자의 보수성 또한 강해 시장에서의 선점효과가 뚜렷하며 후발주자의 반전도 쉽지 않은 특징이 있다. 특히 다양한 질병의 종류와 개인의 신체 구조만큼 다품종 소량생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원가절감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 어려운데다 신제품 투자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마진 구조 또한 박하다.

실례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수가 산정 방식을 보면 일반적으로 원가의 1.78~2배정도를 산정한다. 이는 유통 및 교육 훈련에 대한 신규 투자를 고려한다면 단계별 마진이 평균 30%를 넘기기 힘들뿐더러 병원마다 두고 있는 간납사 수수료율을 반영한다면 평균 마진은 더 낮아진다. 수가를 책정하는 심평원 입장에서의 원가는 면장의 수입가 혹은 제조원가를 의미한다. 수입사의 경우 수입 통관 및 창고비용 등을 추산하면 약 20~25%의 비용이 들고, 교육 훈련이나 창고 등 물류비용을 더하면 15~25% 그리고 판촉비용을 10~20%를 더하면 판매 원가는 45~70%를 차지하게 된다.

의료기기산업계는 이처럼 마진율이 낮은 상황에서 통행세 형태의 불공정 불합리한 수수료를 받고 있는 간납사 철폐를 10년 이상 주장해왔지만 병원, 정부, 산업계의 이해가 달라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우선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는 치료재료 수가에 대한 총액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총액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유통사별 배분에 대해  개입할 실익이 없다는 견해다. 병원과 간납사 그리고 산업계와의 갈등에서 병원이 가지는 영향력으로 인해 자칫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는 것보다는 묵인하는 방식의 쉬운 선택을 한 것이다. 전체 의료비 가운데 치료재료가 차지하는 비율 또한 높지 않아 절감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산업계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박한  마진에  상한가는 정해져 있고 통행세 형식의 수수료까지 부담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저가 위주의 제품을 강제하게 되면 환자와 진료의 선택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당성 없는 수수료 징수는 구매처가 갖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간납사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각에서는 제약사 제도를 모방한 유통전문도매상과 CSO(Contracts Sales Organization·판촉영업대행사)를 제도화해 의료기기 유통구조를 개선하자는 주장이 나와 큰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 이론 중에 ‘규모의 경제’가 있다. 같은 생산물을  취급 시 규모가 클수록 단위 생산원가는 줄어 들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는 의료기기분야에서 주로 다국적 유통회사나 대형 간납사가 주장해왔다. 하지만 의료기기산업은 낮은 마진과 제품의 다양한 유통 조건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제약산업은 판관비 비율이 높고 의료기기와 비교하면 시장 규모 또한 크다. 당연히 사업자로서는 직판이 갖는 이득이 높지만 과다한 경쟁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판촉이 사회적으로 문제화됐고 자칫 리베이트 적발 시 ‘수가 인하’라는 치명적인  처분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소위 CSO(판촉영업대행사)가 등장한 것이다. 사업자의 불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다. 제약 CSO들은 관련 협회까지 만들어 판촉영업대행을 제도화하고자 했지만 사회적 비난이 크다 보니 좌초되고 말았다. 결국 제도적 보장을 받고자 했던 제약 CSO들은 어려움을 겪게 됐고 의료기기로 눈을 돌렸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의료기기는 제조사, 대리점, 간납사, 병원을 잇는 단계가 대부분 단순화돼있고 공정경쟁규약상 사업자 이외에 판촉이 실질적으로 금지돼있다. 특히 유통과 판매로 구분한 만큼 마진 자체가 충분하지 않고, 공급내역보고를 통해 2022년 말이 되면 2등급까지 모든 비용이 투명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의료기기 CSO가 생존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CSO와 함께 거론되는 유통전문대리점 또한 사업자가 아닌 이상 할 수 있는 업무가 물류와 원내 재고관리 정도로 한정돼 적용자체가 어렵다. 유통전문대리점과 판촉영업대행사(CSO) 활성화 주장은 기존 판매상이나 중간대리점의 역할을 부정하고 제약형태의 유통을 도식적으로 도입해 일부 기득권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욱이 의료기기 유통전문대리점 자격 강화는 유통비용에 대한 증가를 가져와 원가비율만을 높일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적부조(Public Charge)의 한 형태다.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치료재료에 대한 전체비용은 낮추고 그 절감 비용을 급여보장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유통전문대리점과 CSO 논란은 의료기기판매업과 대리점에 대한 이해부족과 산업 특성을 무시한데에서 비롯됐다.

의료기기업계가 원하는 것은 공공재로서의 보건의료가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로 특정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 아닌 모든 국민을 위한 의료기기산업 측면에서의 원칙에 충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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