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 "현대화 과정 통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 마련"
의료계 "비방(祕方) 난무하는데 표준화 가능할지 의문"

보건복지부가 한의약선도기술개발(R&D) 사업의 일환으로 ‘화병 임상진료지침’ 및 ‘근골격계질환 침구임상진료지침’을 개발했다. 이를 두고 한의계에서는 임상진료지침 개발을 환영하며 한의학의 표준화 및 현대화에 발판이 될 것이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반면 의료계는 한의학 자체가 표준화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복지부는 한의약선도기술개발(R&D)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8년부터  한방의료기관에서 한의사가 ‘화병’과 ‘근골격계질환’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 임상치료지침 개발을 추진해 왔다.

이번에 개발된 화병 임상진료지침은 화병의심환자 150여명을 대상으로 4년간의 역학조사와 기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화병진단과 감별진단 ▲의뢰 ▲치료선택 및 평가 ▲관리 및 예방 등을 포함한 표준진료절차가 담겼다.

근골격계 질환 침구임상진료지침은 760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토대로 경항통(목 통증), 요통(허리 통증), 슬통(무릎 통증)의 ▲진단 및 치료경과 ▲운동방법 등의 표준 침구치료 방법을 제시했다복지부는 그동안 한의학의 특성상 표준화가 어려워 체계적인 지침이 없었던 점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를 뒀다.

복지부 한의약산업과 김미선 주무관은 “화병과 근골격계 질환은 한방의료기관을 찾는 환자의 주된 질병이었지만 그동안 표준화된 진료지침이 없어 중구난방이었던게 사실”이라며 “이번에 개발된 표준진료지침이 한의학의 표준화를 위해 최초로 발간됐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의계도 임상 현장에서 진단 및 예후판정, 치료에 객관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반기는 분위기다. 

대한한의사협회 김태호 홍보이사는 “그동안 한의계 내부에서 임상 현장의 진료방법을 객관화하고 이를 위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며 “임상진료지침이 개발됨에 따라 환자는 근거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고 한의계에서도 데이터 축적을 통한 2차적인 생산이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향후 임상진료지침을 토대로 한의학의 현대화 과정을 통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라며 “십수년 전부터 이 같은 현대화 과정을 해온 중의학처럼 한의학 역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료계 "한방 표준화 근거로 보기 어렵다”하지만 의료계는 이번에 개발된 임상진료지침으로 인해 한의학이 표준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조정훈 위원은 “화병은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명백한 진단기준에 따라 약물치료를 하고 있는 질환”이라며 “한의계가 정신건강의학 분야의 비전문가인데 화병을 진단할 때 현대의학의 진단기준에 따르고 치료나 약물처방 시 한의학에 맞춰 처방한다는 게 얼만큼 정확할지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침에서도 기존 화병 치료 증례연구에서 의약품과 한약을 병행 투여해 부작용 없이 호전된 임상증례가 다수 보고됐지만 더 정확한 근거기반을 위해 한방제제와 정신과 약물의 병행 투여에 대한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화병 임상진료지침의 역학조사 인원이 여성으로 편중돼 있고 그 수가 적어 근거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화병의심환자들의 4년간 변화를 역학조사했지만 남성이 13명인 반면 여성이 138명으로 편중돼 있을뿐더러 역학조사의 대상 수도 151명으로 적다는 것이다.

조 위원은 “한의계 내에서 같은 질환에 대해 여러 가지 진단법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에 임상진료지침을 마련했다고 해서 표준화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며 “표준화라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것인데 이 정도의 연구 결과는 표준화의 근거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의계와 연구를 담당한 기관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료계의 지적을 일축했다.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 화병연구센터 김종우 센터장은  “화병이라는 질병군 자체가 여성의 빈도수가 남성에 비해 8대 2의 비율로 높다”며 “질병 자체가 여성이 많은 편이고 몇 명이 한의학적 치료에 유의성을 보였냐는 것 보다는 4년 동안 한의학적 치료에 따라 앓고 있는 화병에 어떤 식의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였기 때문에 의료계의 지적처럼 근거가 부족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의협 김태호 홍보이사도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며 “화병의 경우 오랜 기간 동안 역학조사가 필요한 질병군이기 때문에 150여명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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