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회 운영위원장)

[라포르시안] 본지는 급변하는 의료기기 제도와 정책 변화에 대응하고 산업 발전을 모색하고자 <헬스인·싸> 코너를 신설해 관련 업계 오피니언 리더 5명의 기고를 매주 순차적으로 게재합니다. 
<헬스인·싸>는 각종 행사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트렌드를 잘 쫓아가며 주목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인사이더(insider)'와 통찰력을 의미하는 '인사이트(Insight)'를 결합한 단어입니다. 
앞으로 <헬스인·싸>는 의료기기 인허가, 보험급여, 신의료기술평가, 유통구조, 공정경쟁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폭넓은 안목과 통찰력을 공유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료기기 제도·정책을 살펴보고, 나아가 의료기기업계 정부 의료계 간 소통과 상생을 위한 합리적 여론 형성의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의료기기는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따라서 규제의 복잡성과 특수성으로 인해 규제 업무와 인허가를 담당하는 의료기기 규제과학(Regulatory Affairs·RA) 전문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의료기기기업에 소속된 RA 인력들은 의료기기 전주기 동안 규제 변화에 대응하며 품목을 관리한다. 특히 안전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위해를 끼치는 의료기기는 시판 전 허가 단계와 사후관리를 통해 걸러져야한다. 세계 각국은 의료기기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기존 규제를 강화하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며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만들고 있다.

아시아권 국가에서도 새로운 의료기기 규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거대 시장 중 하나인 인도의 경우 Class A·B는 오는 2022년 8월까지, C·D는 이듬해 8월까지 유럽 MDR 2017을 준수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추세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국내 의료기기업계는 더 고도화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RA 인력은 의료기기를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인허가를 관리하고, 출시 이후에도 제품과 관련해 다양한 사후관리에 관여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규제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관리하다가는 잠재적 범죄자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의료기기업계 규제 담당부서 책임자들은 공통적으로 ‘사람 구하기 참 어렵다’는 말을 한다. 회사에서 어렵게 승인을 받아 RA 자원을 확충하려해도 정작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RA 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설상가상 그나마 잘 근무하던 직원들마저 퇴사하는 일이 적지 않다.  최근 미국규제전문가학회(Regulatory Affairs Professionals Society·RAPS)와 eleMed가 발표한 ‘2021 글로벌 규제업무 전문가 인력보고서’(2021 report: global regulatory affairs professionals workforce)에 따르면 규제업무 전문가 수는 유럽·미국시장에 가장 많이 분포해 66%를 차지했고, 아시아의 경우 25%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는 의료기기 지역별 시장규모와 유사한 분포율을 보이는 동시에 산업 성장과 규제 업무 증가가 비례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의료기기산업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도 의료기기산업은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탄력을 받아 글로벌 시장에서의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규제업무 전문가 확보가 필수적이다. 의료기기기업에서 채용을 원하는 RA 인력은 충분한 전문지식과 의료기기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으며 소통과 협업 또한 잘 되는 전문가다. 뿐만 아니라 외국어가 능통하고 입사 후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실무능력도 요구된다. 이러한 조건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희망사항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 의료기기 기업들이 RA 인력 채용 시 요구하는 직무 기술 내용이다. 

현실에서는 RA 전문가 수요가 증가하는데 숙련된 인력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 근무하던 RA 인력은 왜 자꾸 퇴사를 할까? RA팀은 인허가와 관련해 크고 작은 문제에 빈번히 부딪히고 사안에 따라서는 행정처분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RA 부서에서는 왜 ‘항상’ 심각한 문제가 터지고, 사람이 부족할까?”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여기서 ‘항상’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문제는 시스템이 없거나 빈번한 담당자 교체로 연속성 없이 닥치는 대로 대응하면서 일하거나, 또는 과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조치를 통해 개선하지 않아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즉,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인력난이 가중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다 잘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문제없이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부족한 부분은 시스템을 구축해 상호보완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야 채워질 수 있다.

요즘 핫한 ‘오징어게임’을 떠올려보자. 세 번째 게임이 줄다리기였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약한 팀이 승리를 이끌어 낸 것은 오일남 할아버지(1번 참가자)의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요령’을 사전에 숙지하고 실행하며 위기상황에서 띄웠던 승부수 때문일 것이다. 발의 방향부터 줄을 잡는 위치, 인원 배치, 전체 전략까지 잘 짜여 지고 구축된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다. 국내 의료기기산업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시스템 구축을 통한 규제전문가 육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의료기기법과 행정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해야한다. 이미 의료기기규제과학전문가 과정 등을 통해 인재육성사업은 시행되고 있지만 여기에 의료기기법 심화교육 과정을 추가하거나 새롭게 의료기기 규제과학 과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연세대학교 의공학부 교과과정을 토대로 살펴보면, 2021년 입학생 이전에는 의료기기법과 윤리가 전공 선택으로, 2021년 입학생부터는 국내 의료기기 인허가와 국외 의료기기 인허가 및 품질관리 교과목이 전공 선택으로 개설됐다. 이는 의공학부의 교육 목표가 규제전문가 집단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의료기기 규제전문가는 결국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의료기기 규제과학 전공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직업 훈련을 통해 육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훈련 과정이 심화돼야 할 것이다. 법을 공부할 때에는 그냥 읽는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내포된 뜻과 함께 하부 규정을 구조적인 사고로 이해하고 학습해야한다. 마찬가지로 의료기기산업을 성장시켜 수출을 많이 하고자 한다면 수출 대상국 규제 동향에 대해 잘 알아야하고, 제품 개발단계부터 각국 요구사항을 반영해 제품을 출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의료기기 기업에서는 규제업무 전반에 대한 시스템 구축과 관리가 필요하다. 규제 업무는 수많은 자료와 검증을 필요로 한다. IT 기기가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자료는 전자파일로 저장·관리된다. 이때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잘 구축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자료의 늪에 허덕이게 된다. 결국 좋은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최고의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규제전문가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며, 향후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말은 규제전문가의 필수 소양에 시스템 경험이나 원활한 사용이 추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이란 데이터 구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품 정보에 대한 적절한 관리, 규제 모니터링 및 영향분석, 전반적인 스케줄 관리, 상호보완적이면서 공평한 역할과 책임 분장, 개개인 역량 강화를 위한 개발 프로그램도 해당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희망사항을 모두 충족하는 이상적인 사람은 없다. 결국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가능성 있는 인재를 채용해 성장하도록 지원해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은 잘 구축된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 있다. 

셋째 탄탄한 지식과 체계적인 시스템 위에서 현장 경험과 적절한 코칭이 필요하다. 교육은 교실에서 듣는 강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을 활용할 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70-20-10 법칙’에 따르면, 결국 자기개발의 70%는 도전적인 경험과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면서 배우고 성장하게 된다. 수학공부를 생각해 보자. 예습 복습 외에 수업시간에 집중했다고 모두 이해하긴 어렵다. 다양한 연습문제를 스스로 풀고, 반복적으로 틀리는 문제에 대해 공부 잘하는 친구와 선생님의 도움과 가르침도 필요하다. 
시행착오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적절한 코칭이 이뤄진다면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코칭을 해 줄 수 있을까? 회사 내 시니어가 해주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외부에서 찾게 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래도 규제전문가들이 다루는 정보는 보안을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 타 회사의 경험이나 지식을 공유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래서 규제당국자와 의료기기업계 간 상호 교환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싶다. 규제당국자와 산업계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당국자는 현장을 알고 업계는 규제당국 행정을 이해해야 한다. 서로를 알아야 적절한 대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질문과 답변의 교환보다는 깊은 상호 이해와 협력관계 구축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동료 의료기기 규제전문가들에게 “자부심을 가지세요”라고 당부하고 싶다. 의료기기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질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는 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시장에 출시하도록 도운 의료기기 덕분에 수많은 인류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RA 전문가로서 그 이상 더 보람찬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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