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약관 근거로 본인부담상한액 초과금만큼 보험금 미지급·환수
이정문 의원 "상한액 환급금 10조4407억 중 10% 보험사 부당이득으로"
보험업계 "상한액 초과금 중복 보상시 과잉진료·보험사기 유발 우려"

[라포르시안] '본인부담상한제'는 비급여 등을 제외하고 연간 본인일부부담금 총액이 건강보험료 정산에 따라 정해진 개인별 상한금액(2020년 기준 81~582만원)을 초과한 금액만큼 건강보험공단이 가입자·피부양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과도한 의료비로 건강보험 가입자가 입게 되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도입했다.  

그런데 이 제도를 역이용해 환자가 아닌 실손보험사들이 반사이익을 누린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본인부담상한제로 2020년도에 본인부담금 개인별 상한액이 초과한 총 166만 643명에게 2조 2,471억원을 환급한다. 1인당 환급받는 금액은 평균 135만원이다. 

문제는 본인부담상한제로 이득을 챙기는 곳이 엉뚱하게도 실손보험사라는 점이다. 실손보험사들이 본인부담상한제 적용을 받은 가입자에 대해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한 보험금을 환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불거진 단초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0월 제정된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이 제공했다.  이 표준약관에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사전 또는 사후 환급이 가능한 금액(본인부담상한제)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보험사들은 이를 근거로 본인부담금 환급금액만큼 보험료 지급을 거부하거나 지급한 보험금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이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금융감독원을 통해 각 보험사로부터 제출받은 본인부담상한액 초과금 미지급 및 환수 현황 자료로 확인된 부당이득 규모는 7년간 227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정문 의원은 "건강보험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의료패널 자료를 기반으로 보험사 실손 미지급 규모를 추산한 결과는 본인부담금 환급금의 10% 정도"라며 "이를 근거로 최근 7년간 건보공단이 가입자에게 돌려준 본인부담상한액 초과 환급금 총 10조4407억원 중 약 10%인 1조440억원이 국내 보험사의 부당이득으로 돌아갔다"고 추정했다. 

특히 건보공단이 2014년부터 개인별 연간 최대 본인부담금을 1분위(81만원)부터 10분위(582만원)까지 정했음에도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계약자 소득분위를 구분하지 않고 연간 보장한도를 일괄 5000만원으로 산정해 보장범위에 대한 보험료를 가입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의원은 "실손보험에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2014년 이후 개인소득별 본인부담상한액이 정해져 있는데도 실손보험 가입할 땐 소득을 구분하지 않아 보험료를 초과로 받은 것은 더욱 문제”라며 "보험사에서 가져간 실손보험 부당이득은 건강보험 재정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본인부담상한제 관련 전수조사로 그동안 보험사가 가져간 부당이득을 가입자에 돌려주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도 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건강보험노조는 지난 6일 성명을 내고 "본인부담상한제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04년부터 시행한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이지만 2009년 금융위원회가 표준약관에 본인부담상한액 환급금을 실손보험이 보상하지 않도록 명시함으로써 너무나도 모순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노조는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상품이 처음 나올 때도 공보험 위축과 모럴해저드를 우려해 비급여만 보장하고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보장해 주진 말아야 한다는 비등한 여론을 무시했었다"며 "마침내는 보험사 이익을 지켜주려 본인부담상한제 취지를 무력화시키며 그 재정 부담을 모두 건강보험에 떠넘겼다"고 비난했다. 

상품을 설계할 때 산정했던 보험료 이익은 실손보험사가 가져가고, 보험금으로 지급했어야 할 부담은 건강보험이 지는 기막힌 상황이 10년 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건강보험노조의 주장이다. 

"건강보험이 실손보험사들의 손실을 보존해 주고 이익을 보장해주는 창구와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고 건강보험노조는 탄식했다. 본인부담금 환급금 관련 실손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건강보험노조는 "단추를 잘 못 낀 표준약관은 건강보험을 철저히 우롱하며 훼손하고 있다. 실손보험사가 본인부담상한액 환급금을 부담하는 2009년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져야 한다"며 "민간보험사의 상품설계 실패 책임까지 건강보험이 떠안아야 한다는 국민은 없을 것이며, 그러한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한편 보험업계는 실손의료보험 특성상 건강보험에서 보상하는 본인부담 상한액 초과금은 실손의료보험 보상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5월 발간한 CEO Brief에서 "2009년 도입된 표준약관은 상한액 초과금이 실손의료보험 보상대상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며 "실손의료보험은 건강보험 보완형 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는바, 건강보험 보장대상인 상한액 초과금을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것은 상품의 특성상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과 실손의료보험에서 상한액 초과금을 중복 보상할 경우 이중이득을 얻기 위한 과잉진료 및 보험사기를 유발할 우려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연구원은 "실손보험금에서 상한액 초과금을 공제하지 않을 경우 초과금 상당의 이중이득을 허용하게 될 뿐 아니라 진료비가 증가할수록 이중이득 규모도 커져 과잉진료 및 보험사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이는 보험회사 건전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야기해 사회보장정책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본인부담상한제 지속가능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오히려 환자가 진료비를 납부하는 시점과 건보공단이 상한액 초과금을 지급하는 시기가 많이 벌어짐으로써 의료비 보장공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 신속지급 건보법 개정 추진>

실제로 건보공단은 본인부담상한액 환급금을 진료가 이뤄진 이듬해 8월경 연말정산 및 소득세 신고가 끝난 후 해당 가입자에게 지급한다. 당장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환급금 지급까지는 수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게다가 실손보험 가입자는 보험사가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이 나올 예정이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더 큰 피해와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지급 거부를 예상치 못한 일부 환자는 빚을 지거나 비용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연구원은 "본인부담상한제와 관련해 의료비 보장공백이 발생하는 것은 진료비 발생시점과 상한액 초과금 지급 시점 사이 시차로 인한 것이므로 이러한 시차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