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진 / 조나 레러 지음 / 김미선 옮김 / 21세기북스 펴냄, 2013년

우리는 지금 남들과는 다른 ‘무엇’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사회를 살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무엇’을 찾아내려면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데, 그 ‘창의적 사고’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조차 퍼뜩 떠오르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창의적 과정을 “모든 것이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쉿 소리를 내며 홱홱 돌아다니는 아이디어가 들끓는 가마솥”이라고 묘사했다고 합니다. 그 가마솥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많아야 들끓을 일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인문학공부야 말로 창의적 사고라는 가마솥에서 들끓을 수 있는 내용물을 넣어주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창의의 가마솥은 그렇다 치고, 창의적 사고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재능, 다시 말해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에 관한 것들을 설명하고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바로 조나 레러라는 이야기꾼이 쓴 <이매진>입니다. ‘콜럼비아 대학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로즈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 대학에서 20세기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캔들의 실험실에서 연구했으며 뉴욕의 일류 레스토랑인 ‘르 시르크 2000’과 ‘르 베르나르댕’에서 요리사로 일하기도 했다‘는 독특한 이력의 조나 레러를 만나게 된 것은, 제가 자주 인용하기도 합니다만, 바로 저의 ’꼬리를 무는 책읽기‘ 버릇 덕분입니다.

조나 레러가 스물여섯 살에 발표하여 큰 주목을 받은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를 읽게 된 것은 박완서 선생님이 <못가본 길이 아름답다>에 적은 다음 구절 때문입니다. “신경과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기도 전에 이미 뛰어난 작가, 화가, 작곡가, 요리사, 등 일급의 예술가들이 알아낸 진실들을, 신경과학을 전공한 저자가 그게 과학적으로 옳았다고 재확인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빛나고 멋있어 보였다.(박완서 지음, 못가본 길이 아름답다, 227쪽)”

먼저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를 소개하겠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나 레러는 이 책에서 모두 여덟 명의 예술가 - 요리사도 예술가라 한다면 -들의 작품에서 신경과학의 영역과 관련이 있는 것들을 추출해내고 그것들이 신경과학적 연구에 의하여 증명되고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레러박사가 인용하고 있는 여덟 사람은 시인 월트 휘트먼, 소설가 조지 엘리엇과 마르셀 프루스트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 시인이자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 요리사 에스코피에, 화가 폴 세잔,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입니다. 레너박사가 이들의 예술적 성과에서 추출한 키워드를 다시 정리해보면, 휘트먼에게서는 ‘감정’을, 엘리엇은 ‘삶의 복잡성’을, 에스코피에는 ‘미각과 후각’을, 마르셀 프루스트는 ‘기억’을, 폴 세잔은 ‘시각’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청각’을 거트루드 스타인은 ‘언어의 의미’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자아’를 찾아내 설명한 것입니다.

박완서 선생님이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를 읽고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고 하신 것처럼, 저도 이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게 되었고, 나아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이 예술과 과학이 어떻게 통합되어 비판적 이성의 범위를 확장해갈 수 있는지 독자에게 보여주려 했다.(조나 레러 지음,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2007년, 336쪽)”고 적은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를 ‘거듭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책’이라 하신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에 저 역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조나 레러에 매료되어 있었기에 그의  신작 <이매진>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이고, 역시 <이매진>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매진>의 주제는 창의적 사고과정의 바탕이 되는 ‘상상력’입니다. 그런데 주제에 대한 접근방식이 조나 레러답습니다. 옮겨 보겠습니다. “상상력의 해부구조를 해독했다고 해서 그 비밀을 풀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창의성이라는 주제가 그토록 흥미를 끄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여러 관점에서 기술해야 한다는 데 있다. 어쨌거나 각각의 뇌는 언제나 배경과 문화 안에 놓여 있으므로, 우리는 심리학과 사회학을 섞어서 마음의 내부와 외부세계를 융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이매진>이 뉴런의 씰룩거림으로 시작하지만, 주위 환경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도 탐구하는 이유다.(14쪽)” 이 책의 얼개가 ‘따로’ 그리고 ‘또 같이’로 구성된 배경입니다. 1부 ‘따로’에서는 창의성과 관련이 있는 뇌의 신경해부 및 생리학적 연구 성과를 설명하고 2부 ‘또 같이’에서는 창의성이 폭발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창의성을 주관하는 기능은 뇌의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시죠? “궁금하시면 14,400원!” 왜 500원이 아니냐구요? 답은 <이매진>에 있습니다. 저자는 통찰을 연구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방법과 그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터바바라 캠퍼스의 심리학교수인 조너선 스쿨러는 창의성을 시험하는 문제를 주고 피험자에게 단서가 담긴 단어를 보여주었는데, 그 단서를 왼쪽 눈에 보여주었을 때가 오른쪽 눈에 보여주었을 때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최근 뇌과학자들이 신비에 묻혀있던 뇌기능에 한발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뇌혈류의 변화를 감시하는 스캐너인 기능성MRI(fMRI)가 개발되면서입니다. fMRI와 뇌파검사(EEG)를 결합하면서 다양한 뇌기능을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서 통찰의 순간을 찾아내려는 실험을 해보았더니 귀 바로 위의 우측 대뇌의 표면에 조그맣게 접혀있는 전측 상측두회(anterior superior temporal gyrus(aSTG)가 깨달음을 얻기 전 몇 초동안 유난히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살인적인 공연일정에 치여서 노래를 만들어내던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가던 밥 딜런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무용품을 만들어내는 3M회사의 연구원들의 생활방식과 버무려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도 조나 레러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기도 합니다. 창의성이 어디서 만들어지는가를 찾고, 그 다음에는 창의성의 바탕이 되는 통찰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본적인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분명 외부의 것들이 의식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것들이 의식에서 사라지는 순간……그녀의 마음은 깊은 곳으로부터 장면, 이름, 말, 기억, 아이디어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던져 올렸다. 마치 뿜어져 나오는 분수처럼……”통찰이 창의적인 사고의 결정체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역시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덕분에 읽었던 책입니다.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평가된 부르스 아돌프의 첼로곡을 연주해낸 요요마의 놀라운 재능이나, 야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는 서퍼 클레이 마르조가 ‘원을 그리며 보드를 돌려 파도의 꼭대기에 내려앉으면서, 날아오르는 중간에 몸의 방향을 뒤집어 해안에서 먼 뒤쪽을 바라보도록 하는’, 즉 바다에서 즉흥연주를 하는 식으로 스스로 개척한 ‘마르조 뒤집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을 읽으면서, 창의적 사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조나 레러의 창의적 탐구활동의 범위가 그저 놀랍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50세를 전후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단 기간에 놀라운 수준의 작품을 그리게 된 앤 애덤스와 존 카터의 예술적 성공의 배경에는 그들이 앓게 된 전측두엽치매 때문이라는 점도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맑은 정신을 잃기 시작하면서 예술적 재능이 드러나는 비극적 질병의 본질이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해답은 전전두엽 피질에 있습니다. 배외측 전두엽 피질에는 충동을 제어하는 기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게에서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이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나, 혹은 창피한 고백을 하거나 먹을 것을 욕심내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피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신경세포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전두엽치매 환자에서는 이 부위의 신경세포들이 파괴되기 때문에 제어기능이 없어져 화를 내기 쉬운 성격이 된다거나 외부로부터 들어온 다양한 감각정보가 오른쪽 측두엽에서 처리되어 통합된 느낌이 그대로 의식의 흐름으로 풀려나와 표현하려는 욕망이 제어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매진>의 1부 ‘따로’에서 개인에서 창의적 사고가 생기는 기전을 설명하고 있다면, 2부 ‘다같이’에서는 개인의 창의적 사고를 서로 융합하여 효과를 극대화하는 과정을 심리학적, 사회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시도로 노스웨스턴대학의 사회학자 브라이언 우지교수가 고안한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맥연결망의 밀도(Q)를 측정하는 방법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Q의 양은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친밀도’를 반영하는데,  어떤 뮤지컬이 그전에 여러 번 함께 작업했던 예술가들의 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면 Q값이 높게 나타나고, 처음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Q값이 낮게 나타나게 됩니다. Q값이 1.7 이하로 낮은 경우 그 뮤지컬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데, 재미있는 것은 Q값이 3.2이상으로 높은 경우에도 작업에 고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작품이 전작들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제작팀은 Q값이 2.6수준으로 구성되었을 때 최고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탄생하였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즉 오래된 친구들의 상호 작용으로 만들어내는 팀워크에 신참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녹아들어 시너지를 내게 된다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 최고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라고 합니다.

이어서 저자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애니매이션 영화를 잇달아서 제작하고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사의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조나 레러박사는 픽사 영화사의 독특한 건물구조와 업무방식이 이 영화사의 성공요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처음 세 채의 별도의 건물로 된 설계도를 버리고 중앙에 널따란 아트리움을 둔 광활한 공간으로 다시 설계된 이유는 직원들의 상호작용을 절대적 가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책을 직접 읽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요약해보면, 픽사에서는 사람들이 가혹하거나 비판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면서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게 하는 플러싱(plussing)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플러싱이 제대로 작동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돌파구가 뚫린다는 것인데, 비판이 오히려 깜짝 선물처럼 느껴지면서 십중팔구는 논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각자 한 가지씩 플러스를 떠올리고, 새로운 발상이 영화를 진전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합니다(210쪽).

<이매진>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례들을 맞춤한 구절에 인용하여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저자의 독특한 글솜씨를 다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4문화운동은 임의적인 지적 경계선을 무시하고, 구분하는 선들을 흐려놓으려 할 것이다. 그것은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자유로이 지식을 이식하며, 환원적 사실들을 우리의 실제 경험과 연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출 것.(조나 레러 지음,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2007년, 334쪽)”이라고 했던 저자의 예고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초일류의 뇌사용법’이라는 부제와는 달리 초일류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으로 뇌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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