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지털융합팀 팀장, 미래의료원정대 생애맞춤 건강관리 분과 총괄위원)

9월 11일, 2030년 미래의료의 창조적인 청사진을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해 필요한 기술들을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래의료원정대’가 출범했다. 보건복지부는 ‘미래의료원정대’를 의료전문가뿐 아니라 미래예측, 법·제도, 사회경제, 융합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했다. 지금까지의 각종 위원회, 포럼, 자문단 등이 대체로 보건의료분야 전문가로 구성되었던 것과 비교할 때 파격적이다.

최종결과물을 일반적 기술 기획서의 형식 대신 시나리오로 만들겠다는 것도 특기할만한 점이다. 현재 보유 기술을 토대로 미래에 개발해야 할 기술을 구상하는 기술 중심의 연구개발(R&D)가 아니라 인간의 욕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미래를 구체적인 이야기로 그려내자는 것이 목표이다. 뭔가 크게 변화될 조짐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최근 정부 각 부처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내년부터 성범죄, 인터넷게임 중독, 보육·육아와 같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R&D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사람 중심의 따뜻한 R&D 중장기 전략 로드맵` 개발을 통해 국민 행복에 필요한 기술을 수요자 중심으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기술 중심의 R&D가 인간 중심으로 변화되는 흐름을 알 수 있다. 정부R&D가 기술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인간 본연의 욕구를 실현하는 미래를 먼저 구상하고 그것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 변화의 선두에 나서야 할 영역은 역시 보건의료산업이라 할 수 있다. 보건의료산업의 고객들은 감정적이나 신체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어 어떤 산업보다도 인간의 욕구를 섬세하게 발견하고 심리와 감성에 대해 배려하는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 중심의 개발 방법, 디자인

인간의 욕구를 토대로 미래를 그리는 연구는 디자인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시도되어 왔다. 많이 알려진 사례로는 1996년 필립스디자인센터가 3년에 걸친 연구 끝에 발표한 '미래의 비전(Vision of the Future)'을 들 수 있는데 응급상황에서의 원격의료 등 10년 후 생활양식이 어떻게 변화될지를 구체적인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문화인류학자, 인간공학자, 사회학자, 엔지니어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300여개 이상의 창의적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60여개의 핵심 개념을  담은 개인, 가정, 공공, 이동의 4가지 영역으로 영상을 제시하였다. 이 영상은 당시 연구자, 제조사, 일반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발표 후 10년 시점에서 확인을 해보니 제시되었던 기술 중 80% 이상이 상용화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필립스의 디자이너들이 기가 막히게 예측을 잘했다기보다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시각화된 강렬한 비전을 통해 영감을 얻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 <미래의 비전. 필립스디자인센터. 1996> 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v=hvGb-o2Y_Xo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된 자신을 보고 온 아이가 진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창의력이 뛰어난 누군가가 미래를 상상해 그리면 그것을 보고 영감을 얻은 과학자, 기술자들이 그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디자인이 제품의 매력도를 높이는 역할을 넘어 미래의 비전을 창조하는 역할을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미래를 그럴듯하게 그리면 그것은 미래가 될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을 불러오는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는 사람들을 움직여 결국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도록 만든다. 공감력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깊은 이해도이다. 미래를 만들어내는 근본적 힘이 바로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사회와 문화, 정치를 변화시키고 법과 제도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인간의 욕구에 대해 연구하자면 디자인, 문화인류학, 심리학 등 인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는 학문이 나서야 한다.

IBM, GE, 엑손모빌 등 세계의 주요 기업들은 미래연구를 담당하는 다학제적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인텔의 경우 ‘상호작용 및 경험연구소’(IXR)를 통해 ‘기술의 주인은 사람’이라는 명제 하에 디자이너, 심리학자, 소설가 등이 주도가 되어 인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연구함으로써 미래에 필요해질 기술의 비전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 디자인센터에도 인문학 전공자가 15%가 넘으며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기업도 소비자의 욕망을 포착해 새로운 경험을 주는 신사업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서비스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 연구되고 있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디자인은 1900년대 후반 나타난 분야로서 사람들의 욕구를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디자인 영역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최근 보건의료분야에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해 혈액검진표를 바꾸고 외래진료실의 환경을 바꾸는 시도를 해보면서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의 필요성을 깨닫고 있다.

고령자의 건강관리와 사회 활동을 돕는 커뮤니티 디자인,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바른 습관을 형성시키는 서비스디자인 등 새로운 디자인 역할을 입증하는 시범사업을 다양하게 추진해 갈 계획이다. 최근 강북OO병원과 서울OO병원 등 주요 병원들이 내부에 서비스디자인 조직을 갖추는 등 국내에서도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 중심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필연적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산업이라고 예외랄 수는 없지만 특히 보건의료의 연구개발은 이제 따뜻한 인간의 시선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 선두에 보건복지부의 미래의료원정대가 서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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