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산하 124개 지부 동시에 쟁의조정신청
지속가능한 코로나19 대응 위해 공공의료·보건의료인력 확충 요구
"인력 부족 속 업무폭증으로 의료인력 탈진·이탈 속출...희생과 헌신만 강요"

보건의료노조는 18일 오전 11시부터 136개 의료기관 동시 쟁의조정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는 18일 오전 11시부터 136개 의료기관 동시 쟁의조정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라포르시안] 코로나19 4차 유행이 지속하는 가운데 전국보건의료노조 산하 124개 지부 소속 136개 의료기관이 동시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올해 대정부교섭과 산별교섭, 지부별 현장교섭에서 공공의료 확충과 불법의료 근절,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관련한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오는 9월 2일부터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쟁의조정신청에 참가한 보건의료노조 지부에는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 등 감염병전담병원은 물론 주요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도 대거 포함돼 있다.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방역 대응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5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정부교섭, 산별교섭, 현장교섭을 진행해 온 124개 지부(136개 의료기관)가 지난 17일 노동위원회에 동시 쟁의조정을 신청했다고 18일 밝혔다. 

동시 쟁의조정신청에는 보건의료노조 196개 지부 중 136개 의료기관 소속 조합원 5만6,000명이 참가했다. 이렇게 많은 지부가 하루 한 날 동시에 쟁의조정신청서를 접수한 것은 2004년 주 5일제 도입 총파업 이후 최대 규모라는 게 보건의료노조 측 설명이다. 

쟁의조정신청에 참가한 의료기관은 ▲국립중앙의료원·24개 지방의료원·25개 적십자혈액원과 적십자병원·서울시 서남병원 등 감염병 전담병원 ▲서울아산병원·고대의료원·이화의료원·한양대의료원·아주대의료원 등 29개 대형 민간·사립대병원 ▲부산대병원·전남대병원·충남대병원 등 11개 국립대병원 ▲국립암센터·보훈병원·한국원자력의학원 등 13개 특수목적 공공병원 ▲녹색병원 등 19개 민간중소병원 ▲10개 정신·재활·요양기관 등 국내 주요 의료기관 대부분이 포함됐다. 

보건의료노조는 쟁의조정신청 돌입 이후 15일간의 쟁의조정기간을 거치는 동안 교섭이 타결되지 않으면 9월 2일 오전 7시기를 기해 전면 총파업투쟁과 공동행동에 돌입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노조는 오늘(18일) 오전 6시부터 오는 26일까지 조합원 대상으로 산별중앙교섭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들어갔다. 

앞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4월 말 개최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021년 대정부 교섭 요구로 ▲코로나19 극복과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공공의료 확충 강화 ▲적정인력기준 마련과 인력확충 ▲불법의료 근절 ▲교대근무제 개선 및 주 4일제 (주32시간제) 단계적 도입 ▲비정규직 정규직화 ▲산별교섭 제도화와 노조활동 보장 등으로 결정했다.

전체 지부 공동 요구로는 ▲코로나19 및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인력확충과 불법의료 근절 ▲교대근무제 개선 ▲비정규직 문제 해결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합의 ▲병가제도 도입 등을 확정했다.

2021년 임금인상 요구안으로 총액대비 5.6%(정액 기준 월 20만1천원) 인상을 요구하고 산별현장교섭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2022년 적용할 최저임금은 시급 1만 702원을 요구하기로 했다.

코로나19 4차 유행이 심각한 상황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산별총파업 선언에 나선 것은 의료현장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지속한 1년 7개월 동안 전담병원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확진자 발생이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상황에 따라 제대로 된 감염병 대응체계도 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근근이 버텨왔다. 정부 대응 기조가 유행 확산세가 심각할 때는 치료병상 확보, 인력 확보 정책을 제시하지만 유행 위기가 한풀 꺾이면 문제를 덮고 넘어간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하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은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방치한 채 민간파견인력을 배치하는 임시방편 대책만 되풀이해 왔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에 시달리던 공공병원 의료진은 4차례에 걸친 유행 기간 동안 소진에 탈진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간호사 등 많은 보건의료 노동자가 이직과 사직으로 병원을 떠났다.  

보건의료노조는 “코로나19가 던진 과제인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지속해 촉구해왔으며 대사용자 교섭과 대정부 교섭을 병행해왔다"며 "그러나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땀흘려 일해 온 보건의료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조측에 대해 사용자측은 '코로나19 때문에 어렵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핑계를 대며 시간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 같은 사용자측 태도 때문에 코로나19 방역인력 별도 배치, 교대근무자 일요근무에 대한 보상, 임금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입찰제 금지, 유급병가 60일 등 노조측 주요 요구 해결은 진전 없이 꽉 막혀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대사용자 교섭과 동시에 코로나19가 던진 과제인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보건복지부와 노정교섭을 벌여왔으나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5월 31일 1차 교섭을 시작으로 8월 12일까지 9차례 노정교섭을 진행했지만 보건복지부는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복지부는 인력확충, 간호등급제와 교대제 개선, 불법의료 근절 등 보건의료노조의 인력확충 요구에 대해 '취지는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이나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고, 공공의료 확충 요구에 대해 예산을 핑계대면서 유보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노정교섭은 실질적인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유행 장기화 속에서 방역 최일선에 있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과중한 업무부담과 피로도가 극에 달한 점도 산별총파업 투쟁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는 지난 2월 코로나19의 최전선을 도맡아온 보건의료 노동자의 각종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78.7%가 자신의 일상생활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뒤이어 심리상태 역시 70.6%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넘는 55.7%가 코로나로 인한 노동 여건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노조는 "10%도 안 되는 공공병원이 80%가 넘는 코로나19 환자를 담당하고 있지만 공공병원 확충정책과 취약한 시설·장비·인력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공공의료 강화대책은 제자리걸음"이라며 "인력 부족과 폭증하는 업무량,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의료인력의 소진·탈진·이탈이 속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인력확충과 처우개선 대책은 오리무중이고, 끝을 알 수 없는 희생과 헌신만 강요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7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 끝을 알 수 없고,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백신접종 지연 속에서 올 겨울 5차 대유행까지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는 땜질식 대응으로 버틸 수 없다는 게 의료현장의 판단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앞으로 언제 끝날 지 종식 시점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에서 현재의 인력 수준, 땜질식 인력대책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소진과 이탈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의료인력 붕괴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와 여야 대표를 향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지속가능한 방역 대응을 위해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국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특별 정책대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8월 19일쯤 열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여야정협의체에서 논의할 코로나19 4차 대유행 대응책에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 과제를 핵심 의제로 올리고 구체적인 대책을 협의해야 한다"며 "국회는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관련 법 제도를 전면 재정비하고 예산을 확충하기 위한 긴급 여야 협상을 시작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보건의료기관 사용자와 병원협회, 의사협회에도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기관 사용자와 병협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만 강요하지 말고, 임금인상과 인력확충 등 정당한 보상과 실질적인 처우 개선에 나서라"며 "병원 사용자들은 경영 회복분과 정부 지원금을 최우선적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불법의료를 근절하자면서 의사인력을 감축하자는 의사협회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율배반이며 국민 기만"이라며 "의협은 더 이상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무면허 불법의료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의사인력 확충,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반대 입장을 전면 폐기함으로써 의사 기득권 지키기가 아닌 국민생명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쟁의조정신청 이후 오는 9월 1일까지 쟁의조정기간 동안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실질적 해법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전면 총파업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9월 1일까지 공공의료 확충과 불법의료 근절,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관련한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9월 2일 오전 7시를 기해 전면 총파업투쟁에 돌입할 것"이라며 "파업 돌입 이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정부 여당, 병원 사용자들의 태도를 바꾸고, 국민과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파업투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 "파업 진행되지 않도록 노조와 적극 협의"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오늘(18일) 오전 11시부터 136개 의료기관 동시 쟁의조정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장기전 준비와 방역안보체계 확립을 위해 공공의료 확충·강화 3대 요구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처우개선 5대 요구 등 8대 핵심요구를 제시했다. 

공공의료 확충·강화 3대 요구로는 ▲감염병전문병원 조속한 설립, 코로나19 치료병원 인력기준 마련과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의료 확충 ▲공공병원의 시설·장비·인력 인프라 구축과 공익적 적자 해소 등이다. 

보건의료인력 확충·처우개선 5대 요구로는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 및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확대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교대근무제 시행 및 교육전담간호사 지원제도 전면 확대 ▲5대 불법의료(대리처방, 동의서, 처치·시술, 수술, 조제) 근절 ▲의료기관 비정규직 고용 제한을 위한 평가기준 강화 ▲의사인력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등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보건의료노조와 노정교섭을 계속 진행하면서 코로나 대응 인력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관련 질문에 "보건의료노조와 지난 5월부터 노정 협의체를 구성해서 협의를 계속 해오고 있으며, 8월까지도 충실하게 협약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코로나 유행 장기화로) 오랫동안 간호사나 또 보건의료인력이 굉장히 필요한 상태라는 걸 다 알고 있으며, 코로나 진료가 다른 일반 진료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코로나를 진료하는 데 있어서 인력기준을 지금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박 방역총괄반장은 "공공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중요성도 함께 공감하면서 공공의료 확충 부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방향을 가지고 노조와 협상에 임하고 있고, 코로나 상황에서 인력수급을 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며 "코로나 환자 치료라든지 의료기관을 이용하시는 분들께 불편함이 없도록 파업이 진행되지 않도록 노조와 함께 최선을 다해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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