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한국건선협회 회장)

[라포르시안] “국민학교 신체검사 때였어요. 팬티만 입고 홍반과 각질이 가득한 몸으로 섰을 때 경악하던 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김성기 씨(51세)는 중증건선 환자다. 그는 인생의 대부분인 44년을 건선 환자로 살고 있다. 그리고 건선 환자들의 모임인 한국건선협회를 만들고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일곱 살 때였다. 온몸에 물방울과 같은 빨간 반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옴에 옮았다고 했고 누구는 약 바르면 낫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약을 먹고 발라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악화됐다.

“건선으로 힘들었던 경험이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몸은 점점 홍반과 인설로 뒤덮혔다. 한창 예민한 학창시절 한여름 폭염에도 긴팔을 입고 다녔고, 스스로 친구들을 피하기도 했다. 누군가 자신의 증상에 대해 물어보면 금새 민감해져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대학교 입학 후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1학년 때 군대를 가고 싶었다. 대구까지 내려가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면제'였다. 당시 온몸에 건선 증상이 나타나던 시기였는데, 군의관은 그런 그를 보자마자 “집에 가라”고 했다.

“면제를 받고 다음날 새벽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몰래 울었어요. 아들이 병 때문에 군 면제를 받은 것을 알고 속상해 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더군요. 사실 입대했어도 문제는 있었어요. 현재 50~60대 환자들의 군대 이야기를 들어보면 밤에 몰래 모포를 뒤집어 쓰고 스테로이드 연고로 온몸을 범벅한 채 눈물로 밤을 새는 경우도 많았다고 해요.”

군대를 면제 받았지만 중증건선 환자가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너무 힘든 곳이었다.

김성기 회장 설명에 따르면 건선환자가 따뜻한 물에 들어가면 온몸에 빨간 홍반이 드러난다.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은 기겁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왜 저런 피부질환자를 받았느냐, 장사 그만하고 싶냐'고 목욕탕에 항의도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마음 편하게 목욕 한번하는 게, 아들 등 한번 밀어주는 게 소원인 중증 건선환자들이 많아요.“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20~30대에 중증건선이 발병하면 사회·경제적 약자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20~30대면 꿈도 많고 뭔가를 도전해보고 싶은 나이인데 건선이 발병하면 면접 단계에서부터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에 꿈을 접고 경제적 활동도 포기할 수 밖에 없어요. 우여곡절 입사를 해도 직원들과의 관계가 쉽지 않습니다.”

김성기 회장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내로라하는 외국계 기업에 취직했지만 스스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택지는 질환에 비교적 선입견이 적은 공공기관이었다. 현재 그는 용인시 처인구보건소에서 운동처방사로 근무 중이다.

그나마 질환과 증상에 대한 관리가 되고 있어 사회생활이 가능하지만 상당수의 중증 건선환자는 사회생활이 아예 불가능하다. 

“20대부터 취업이 어렵다보니 당연히 사회에서 경제적 약자가 될 수 밖에 없어요. 돈을 벌어야 치료를 받는데 치료비를 벌기 위한 취업 자체가 안되니 악순환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중증 건선환자의 인생입니다.”

치료제 중 가장 효과가 좋은 생물학적 제제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도 한달 주사값만 150만원에 이른다. 가뜩이나 경제적 여력이 없는 중증 건선환자에게 한달 150만원은 꿈같은 이야기다. 

그나마 산정특례를 받으면 본인부담이 10%로 줄어들지만 중증 건선의 경우 산정특례 단계에서부터 타 질환과 차별을 받고 있어 치료를 포기하는 현실이라는 것.

중증 건선환자의 생물학적 제제 건강보험 기준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중등도에서 ▲판상 건선이 전체 피부면적의 10% 이상 ▲PASI 10 이상이면서 ▲메토트렉세이트 또는 사이클로스포린을 3개월 이상 투여했음에도 반응이 없거나 부작용 등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없는 경우, 혹은 ▲피부광화학요법 또는 중파장자외선 치료법으로 3개월 이상 치료했음에도 반응이 없거나 부작용 등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없는 경우에 적용된다.

이에 비해 산정특례 기준은 메토트렉세이트 또는 사이클로스포린 등 약물요법과 부광화학요법 또는 중파장자외선 등 광선치료를 모두 실패했을 때만 해당한다.

즉, 건강보험 기준에서는 면역억제제 ‘또는’ 광선치료를 실패했을 때 적용하지만, 산정특례 기준에서는 면역억제제와 광선치료를 각각 3개월씩 받고 모두 실패했을 때로 제한하고 있다.

“크론병, 강직성척추염, 류마티스 관절염 등 다른 자가면역 질환은 보험급여 기준과 산정특례 기준이 같기 때문에 확진되는 순간 경·중등증·중증과 상관없이 산정특례 대상이 됩니다. 반면, 건선은 건강보험 기준과 산정특례 기준이 따로 있고, 산정특례 기준은 한단계 더 어렵게 만들어놨습니다. 왜 중증건선만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중증건선 환자들이 산정특례 기준의 개선을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광선치료가 환자 입장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광선치료는 서울을 포함한 일부 수도권 대형병원에서만 주로 가능하다. 실제로 김성기 씨가 근무하는 용인시의 경우 인구 수는 107만이 넘지만 중증 건선환자가 광선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한군데도 없다. 산정특례를 받기 위해 지방 중증 건선환자들은 직장과 생계, 생활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올 수 밖에 없다.

“상급대형병원에서 광선치료 한번을 받으려면 기본 반나절 이상 소요되는데 일주일에 3번, 3개월 동안 광선치료를 받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가뜩이나 투병으로 힘든 환자들이 정부 기준에 더욱 좌절하고 고통받고 있습니다.”

“산정특례 기준이 면역억제제 치료와 광선치료 두가지를 엮어놨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광선치료만이라도 없애달라는 것입니다.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분명히 보험급여 기준에서 약물치료와 광선치료를 ‘혹은’으로 분리한 것은 그만큼의 의학적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증 건선환자들은 산정특례 기준의 문제점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오죽하면 중증 환자들 사이에서는 생물학적 제제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증상에서의 무분별한 처방을 막음으로써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을 도모하고 꼭 필요한 환자들이 쓰도록 생물학적 제제에 대한 허들을 만들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보건당국에서는 자꾸 재정이 부담된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런데 건선환자 중에선 생물학적 제제 치료를 안하고 국소치료나 전신 광선치료만 받아도 충실히 관리가 가능한 환자가 있습니다. 따라서 바로 생물학적 제제 산정특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 및 보건당국과 함께 국소치료나 자외선치료를 통해 건선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다는 캠페인 진행을 통해 재정적 안정과 꼭 필요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중증 건선환자의 생물학적 제제 산정특례 기준이 반드시 개선될 것으로 믿고 있다.

“정부가 가진 재정적 부담에 대해서는 건선환자들도 이해를 하고 있는 만큼 광선치료와 같은 불가능한 기준이 아닌 실현 가능한 대안을 함께 만들자는 겁니다. 산정특례를 받는데도 10년이 걸렸습니다. 환자들의 요구는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면역질환과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건당국이 건선환자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듣고 소통에 나선다면 산정특례 기준 개선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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