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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접종률만큼이나 중요한 것...공평하고 정의로운 백신 분배[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지금 접종률만큼 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

[라포르시안]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꽤 많은 사람이 접종을 받았으니 별 ‘문제’가 없다는 주위 사람도 늘었을 터, 각자 현실 세계에서 판단 근거를 얻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분위기가 바뀐 데는 네이버와 카카오를 통해 여분의 백신을 예약하도록 한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한다. 정말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채널로 예약 성공담, 백신 접종을 마쳤다는 사람, 실패에 대한 불만 등이 넘쳐난다.

접종률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정부는 한숨 돌릴지 모르겠다. 이 추세라면 백신 접종 속도를 지킬 수 있고 기한에 맞추어 목표 접종률에 이를 수 있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국가, 정부, 관료로서는 책임을 다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니, 그 관심과 고충, 그리고 실무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가 달성해야 할 것은 국가와 정부가 정한 유형의 목표, 예를 들어 언제까지 인구의 70%가 접종을 마친다는 목표 이상이다. 원론적으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안전과 건강을 지키고 생명과 삶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국가와 정부는 국가적, 집단, 총량, 접종률에 집중하지만, 그 결과 개인 각자의 위험과 안전, 생명과 건강이 좌우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다른 나라가 얼마나 했고 ‘K-방역’이 어떻다는 국가 시각으로 치우치기 쉽지만, 한편으로는 처지를 바꾸어 ‘사람 중심’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과학으로도 그렇다. 백신 접종의 경우 집단면역을 형성할 때까지는 개인을 보호하는 의미가 더 크며, 이는 그냥 이론이 아니라 접종 대상과 우선순위, 접종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접종률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감염과 질병 진행의 위험이 큰 사람들의 접종 우선순위를 높여야 하는 이유이다.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누구를 먼저 접종할지에 따라 접종률의 진도가 달라진다. 청소년을 접종하기로 하면 학교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접종률을 달성할 수 있지만, 재가 장애인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방법은 접종률 측면에서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다.

앱을 만들어 거의 실시간으로 여분의 백신을 파악하고 즉시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 말 그대로 한국에서만 가능한 첨단 기술의 ‘승리’이자 ‘효율성’의 극치일지도 모른다. 접종률을 높이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데다 백신에 대한 인식까지 바꿀 수 있다면야….

방금 경험한바 ‘K-접종’이 빠르고 효율적이며 선착순의 원칙에는 맞을지 몰라도 정의와 형평의 원리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구체적 방법까지 예측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민사회는 백신 접종을 시작하기 전부터 효율성 논리와 몇 % 접종률 달성이라는 목표의 독점을 경계했다.

“집단면역 형성을 위한 70% 접종이라는 목표가 단지 감염을 줄이기 위한 의료기술적 접근만으로 진행된다면, 언제든 실용적인 잣대로 존엄과 평등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너의 인권과 나의 인권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네가 감염되지 않는 것이나 나만 감염되지 않는 것이 온전한 인권의 실현이거나 정의일 수 없다.” (시민건강연구소 이슈페이퍼 '우리에게 필요한건 백신만이 아니다')

여분의 백신만 하더라도 지금 우선순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대체로 불리하다. 정보와 정보기기에 접근하기 힘들고 여유 시간이 부족하며 이동도 어려울 공산이 크다. 나이 기준을 채우지 못한 재가 장애인이나 환자 또는 홈리스를 생각해보라.

지금 바로는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나, 그 ‘실무’야말로 기존의 효율성 논리에 토대를 두고 진화한 결과이다. 스마트폰 앱은 초고속으로 개발할 수 있으나 홈리스와 재가 장애인, 만성 질환 환자는 현황 파악도 부실한 것이 우리 사회의 인프라가 아닌가. 우선순위가 높은 대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기존 제도와 시스템이야말로 구조적 불평등의 증거라 해야 한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 목표한 기한이 가까울수록 접종률이라는 목표만 살고 효율성 원리가 윤리와 정의를 압도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얀센 코인’이나 ‘얀센 고시’라는 말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백신이 좀 더 정의롭게 배분되도록 준비해주기 바란다.

이참에 백신 인센티브나 ‘백신 여권’ 논란도 같은 잣대로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또는 누가 유리하고 누가 소외되는가, 꼼꼼히 따져야 한다. 인센티브는 그럴 수 없는 사람에게는 흔히 ‘처벌’이거나 ‘손해’라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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