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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PA 가운에 진료과·이름 새겨 의사로 착각하게끔 만든다"보건의료노조, 의사인력 정원과 실제 운영인력 실태조사 발표
다른 직종서 의사업무 대체 당연시 여겨
"의사인력 부족으로 업무전가, 갑질, 감정노동 극심"

[라포르시안]  “의사가 의사 본연의 일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다른 직종의 인력이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대학병원 등에서 의사인력 부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립대병원과 민간 중소병원은 물론 국공립병원에서도 의사인력 부족이 만성화하면서 아예 의사업무를 대리하는 PA, 전담채혈팀, 욕창 드레싱팀, 외래전담 간호사팀 등이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진료 파행은 결국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환자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은 지난 3월 22일부터 5월 7일까지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민간중소병원, 보훈병원, 근로복지공단병원 등 소속 93개 지부(102개 의료기관) 대상으로 의료현장 실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한 조사 결과는 의사인력 정원(TO)과 실제 운영인력 실태에 관한 내용이다. <관련 기사: "시키는 대로 안 할 거면 나가라, 그만둬라"...불법의료 내몰리는 PA>

조사 결과를 보면 사립대병원과 국공립병원 등 대부분 병원에서 의사인력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전문의 운영인력 실태를 보면 정원과 현원 격차가 가장 큰 곳은 157명으로, 정원이 454명인데 비해 현원은 297명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72명(사립대병원), 70명(국립대병원), 69명(국립대병원), 10명(사립대병원) 등의 순으로 정원과 현원 간 격차가 컸다. 병원 규모가 비교적 적은 지방의료원도 정원보다 전문의 인력이 9명이나 부족한 곳도 있었다. 

전공의는 정원과 현원 격차가 가장 큰 곳은 97명으로 정원이 182명인데 비해 현원은 85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에서 전공의 현원이 정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의사인력 부족은 진료 파행, 환자불편과 함께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에서 의사인력 부족이 환자불편을 초래하고 환자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조사에 참여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은“의사인력이 부족해 환자 응대를 제대로 못하고 처방도 제때에 하지 못해 환자들의 불만이 크다”, “의사인력은 그대로인데 당일 접수환자를 제한 없이 받다 보니 진료는 지연되고 환자 대기시간은 늘어난다”, “당직의가 응급실과 병동을 모두 담당하다 보니 진료와 처방이 지연된다”, “진료에 대한 설명을 의사에게 듣지 못하고 간호사에게 듣는 환자들의 불만이 많아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사인력 부족이 의료서비스 질을 떨어뜨리고, 의료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점이다.

실태조사에서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사 부족으로 응급수술을 하지 못해 고스란히 환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의사인력이 부족해 진료과별 당직체계에서 건물별 당직체계로 바꿨는데 그마저 당직의사가 줄어 응급상황 대처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드레싱을 의사가 아닌 전담간호사가 수행함으로써 의사가 환자상태를 잘 알지 못해 처치가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 등의 사례가 확인됐다.

 의사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지만 적극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병원 차원에서 이를 숨기려는 행태도 벌어지고 있다.

실태조사에 응답한 한 보건의료 노동자는 “간혹 환자들이 PA가 의사인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 PA 복장을 의사와 동일하게 입게 하고 근무복(가운)에 직종을 표기하는 것이 아닌 진료과와 이름을 새겨 환자들이 의사로 착각하게끔 한다”고 증언했다.

만성적인 의사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공공병원에서 진료파행도 이어지고 있었다.

실태조사 결과 공공병원에서는 ▲공보의로 운영하다가 공보의 수급이 끊겨 폐과 ▲정형외과 의사 부족으로 물리치료실 축소 운영 ▲심장내과, 신경외과, 호흡기내과 등 중증 필수의사인력 부족으로 지역주민이 타 지역으로 이동 진료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없어 지역주민과 병원 직원이 특수검진을 위해 타 시․도로 이동 등의 사례가 확인됐다.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해 코로나19 대응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실태조사 결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지만 관련 전문의가 없어 중증환자는 아예 받지도 못한다거나 환자 상태가 악화되면 다른 곳으로 전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곳도 있었다.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없어 다른 내과 의사가 코로나병동에 투입되다 보니 병원 전체 진료에 어려움을 겪거나 일반 환자 진료에 차질이 발생하는 일도 빈번했다.

심지어 의사인력 부족으로 의사업무를 대리하는 PA, 전담채혈팀, 욕창 드레싱팀, 외래전담 간호사팀(동의서 작성, 수술 설명, 스케줄 조정 등) 등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실태조사에서 “의사가 의사 본연의 일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다른 직종의 인력이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거나 “간호사 트레이닝 기간에 의사 처방 내는 법에 대해 트레이닝을 한다”는 응답이 나왔다.

“의사인력 부족으로 간호사가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간호업무가 마비되었다”거나 “검사나 수술 결과, 퇴원 예정 등에 대한 설명 부족으로 의사들에게 불만이 있어도 직접 하지 못하다 보니 간호사들에게 폭력적으로 불만을 표출해 너무 괴롭다”는 호소도 있었다.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해 간호사들이 겪는 업무스트레스도 극심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야간에 의사가 4시간 동안 오지 않아 소변줄에 출혈이 발생하고 막히는 일이 발생해 해결은 됐으나 보호자가 처치가 늦어진 데 대해 간호사에게 책임을 물으며 의자로 때리려는 사건이 있었다”, “의사가 상주하지 않아 응급콜을 불러도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고 제때 오지 않아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서 그 불만과 폭언을 간호사가 감당할 수 밖에 없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지금의 의사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관련 기사: '저수가' 체계 떠받치는 건 병원의 저임금·공짜노동·장시간노동>

보건의료노조는 "파행 진료를 정상화하고, 환자불편과 피해를 없애기 위해 의사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의사인력 확충은 의사들만이 결정권을 가진 의사들의 고유 영역이 아니라 환자 건강과 생명이 걸린 문제이고 국민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업무는 의사가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직종간 업무범위를 명확히 구분할 것과 국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적정 의사인력 확충정책을 과단성있게 추진해나갈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며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같은 의사인력 확충정책이 의정 합의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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