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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건강보험 급여기준, 존재의 이유를 묻다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3.08.2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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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건강보험 시대가 된 지 오래다. 거의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 가입자이거나 피부양자다. 달마다 건강보험료를 내고 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으면 보험료 혜택을 누린다. 그렇다고 모든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3% 수준이다. 그 나머지 비율만큼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이 어떻게 정해지는가는 설명하기 힘들다. 딱히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보면 된다.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그때 요구나 재정 상황에 따라 정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급여 항목에 적용되는 건강보험 혜택은 철저한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바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이다. 이 기준에 맞춰 의료행위가 이뤄져야만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입을 수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장관 고시로 나온 급여기준은 1,600여개가 넘는다.

의사에게 있어서 건강보험 급여기준은 ‘존재의 틀’이자 ‘속박의 굴레’다. 우리나라에 개설된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에 가입된 환자를 거부할 수 없고, 국가가 정한 비용을 받도록 하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묶여 있다. 그렇기에 급여기준은 의사, 혹은 의료기관이란 존재를 규정하는 그 자체인 셈이다. 문제는 임상현장의 현실과 맞지 않거나 의학의 빠른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급여기준이 많다는 점이다. ‘교과서적인 진료’는 언감생심이고,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도 급여기준에 가로막혀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있다. 1개월 전 인근 대학병원에서  목 부위를 절개하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얼마 전 수술 후 꿰맨 부위가 곪아 농양이 생겼다. 병원을 찾았더니 실밥의 매듭이 이물질 반응을 일으켰다고 한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 그나마 예전보다 봉합사의 질이 향상돼 많이 줄기는 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없는 봉합사도 있다. 내시경 수술용으로 개발된 봉합사인데 매듭이 필요없어 봉합 부위에 농양이 안 생긴다. 다만 기존 봉합사(3천원대)에 비해 가격이 6배 정도 비싸다.

병원을 찾아간 이 환자가 의사에게 원망 섞인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자신에게 내시경 수술용 봉합사를 사용하지 않았냐고. 그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의사가 설명한다. 그 봉합사는 내시경 수술용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절개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사용할 수 없다고. 건강보험 급여기준상 절개 갑상선 수술에는 그 봉합사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환자가 다시 따지듯 묻는다. 그럼 건강보험 적용 없이 내가 전액 부담할 수 있지 않냐고. 의사가 다시 말해준다. 그렇게 되면 임의비급여가 되기 때문에 나중에 병원이 비용 전액을 환수 당할 수 있다는 점을. 환자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내가 비용을 지불해 좋은 봉합사를 쓰고 싶다는데 사용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게다가 수술 부위에 생긴 농양 때문에 병원에 진료받으러 다닌 시간과 비용을 따져보니 내시경 수술용 봉합사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 화가 치민다. 병원이 청구한 진료비를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따라 심사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문의했다. “그 봉합사는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따라 내시경을 이용한 수술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심평원에 이 같은 불만 민원이 많이 접수되고 있다.

알고 보면 이해하기 힘든 급여기준이 적지 않다. 손상된 손가락 수가 6개 이상일 경우 그 개수와 관계없이 동일한 수술 수가를 적용받는다거나 인공디스크를 이용한 추간판전치환술을 받더라고 21세 미만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급여기준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관련 급여기준이 개선됐다.

왜 이렇게 비합리적인 급여기준이 만들어진걸까. 건강보험 재정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돼 있고, 혜택을 받아야 할 건강보험 가입자는 갈수록 많아진다. 늘 재정이 부족하다. 분명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기술이나 치료재료, 의약품이 있더라도(당연히 비용이 더 든다) 급여 혜택을 제한하거나, 혹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다. 궁금하다. 건강보험 급여기준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 건강보험 가입자의 건강인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인가.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더라도 불합리한 급여기준을 계속 강요할 수는 없다. 바꾸고 개선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재정 탓만 하면서 급여기준을 앞세워 의료인과 환자들의 불만과 갈등을 더는 모른 척 해선 안 된다. 임상현장의 불만이 거의 임계점에 다다랐다. 불합리한 급여기준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합리적인 보험료 부과체계를 만들고, 보험료율을 높이고 국고지원을 확대하는 등 건강보험 재정 확충 방안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에 얽매인 잘못된 급여기준은 건강보험제도의 존재 이유를 위협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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