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국제보건에 대한 한국의 책임

[라포르시안] 『양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 고통을 인식하고 팬데믹을 종식시키고 미래 글로벌 보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다자 협력에 대한 약속을 공유한다.

우리는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하의 협력을 확대하고, 팬데믹 예방과 대응을 강화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또한 이와 같은 시급한 전 세계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백신 생산 및 관련 물자, 그리고 제조 혁신을 확대하기 위해 양국 간, 그리고 감염병혁신연합(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 CEPI) 및 코백스(COVAX)와 함께 협력하기로 한다.

양국은 적극적인 리더십을 통해 우리의 집단적 글로벌 보건 안보를 향상시키고, 코로나19 대응 노력을 확대하며 다음 팬데믹 예방 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조치들을 이행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파트너십 설명자료’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관련 자료 바로보기). 우리는 원칙적으로 이를 환영하며, 특히 글로벌 수준에서 ”조치들을 이행“한다는 다짐이 빈 소리가 되지 않기 바란다.

1. 합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이야 본래(!)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이 지금 ‘글로벌보건’을 말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다. 좋든 싫든, 준비가 되어 있든 아니든, 한국은 이제 국제보건의 중요한 행위자로 역할을 해야 할 모양이다.

형식과 표현으로는 아예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선언에 가까운 ‘글로벌’ 또는 ‘협력’ 논의는 끊이지 않았다(☞관련 기사 바로보기1 , 바로보기2),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팬데믹과 백신이 여러 가능성을 현실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지금 ‘보건안보’라는 말을 그 누가 외교용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국과 미국이 국제 사회에 대한 도덕적 의무 때문에 이런 합의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시 냉정한 국제 정치의 논리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며, 현재의 팬데믹 상황과 대응이 그런 논리가 통하는 토대를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국제 차원에서도 도덕은 실재하며 분명 변화를 부르는 힘이 있다. 무수한 사람이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 몇몇 강대국이 백신을 독점하고 다국적 제약사가 천문학적 이익을 얻는 상황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움직인다. 다른 나라의 지진과 태풍 피해에 인도주의적 구호가 가능한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도덕은 단지 개인 윤리가 아니라 규범이자 이념이며 그리하여 또한 권력이다.

이런 공통의 책임과 도덕은 국제적 정치경제와 맞부딪치며 각축하며, 흔히 그 관계는 기우뚱하다.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으나, 한국에서는 ‘국제’에 관한 한 정치경제가 도덕을 압도한다. 한 가지 특징은 이번 경우 한 국가의 이익을 중심에 둔 국익론이 (외형상) 국제보건의 도덕과 결합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국익은 백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백신 관련 국내 역량을 키우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 미국은 이런 한국을 자신의 국제보건 전략을 수행하는 데 활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소프트파워’가 미국을 움직이는 국제전략의 한 가지 축이라면(☞관련 자료 바로보기 ), 세계적 차원의 팬데믹 대응과 백신 공급은 미국의 도덕적 책임인 동시에 국익이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이에 대해 한국의 국익은 국제 사회나 다른 나라에 대한 책임과 의무, 인류 공영 등의 가치와 결합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미 정상회담은 주로 ‘국제’를 말했지만(적어도 겉으로는), 국내 정치와 언론은 한국민이 쓸 백신 확보 여부와 ‘글로벌 백신 허브’라는 산업과 경제에 관심을 집중했다(☞관련 기사 바로보기1바로보기2).

2. 정치경제적 이익을 넘어 글로벌 공동체에 대한 책임으로

분명 국익이 국제적 책임을 압도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는 각 나라의 정치경제적 이익이 국제 사회와 인류 공동체에 대한 국민국가의 책임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생명과 건강, 인권, 불평등에 대한 문제라면 정치경제적 이익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론이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흔히 이런 ‘도덕’을 탁상공론으로 치부하지만, 그 도덕이 때로 힘을 발휘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미국이 백신의 지식재산권을 유예하는 데 찬성하는 것이나 고소득국가가 저소득국가에 백신을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하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이를 자국 중심주의와 정치경제적 이익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에 참가하는 형식처럼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한국이 국제보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좋은 기회이다. 국제보건이 요구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원리와 목표, 방법을 충실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은 위기지만, 본격적으로 세계에 대한 책임(도덕)을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정치경제적 이익만 따지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며, 과거와 같은 접근으로는 (역설적으로) 작은 이익조차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국제협력이라는 말은 같아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니 경제협력 또는 ‘윈-윈’과 같은 과거의 역할론은 접자. ”한국의 국력에 걸맞은“ 책임이라는 논리도 마찬가지, 이는 여전히 국익 중심 그것도 경제 중심의 시각이다.

우리가 선 곳과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인류 공동체의 지속과 번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는 전제에, 구체적 방향은 앞서 인용한 설명자료에 나온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마치 벌써 국정 방침이 된 듯한 ‘글로벌 백신 허브’라는 방법 한 가지만 해도, 국익을 넘어 국제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보면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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