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휴(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감사)

[라포르시안] 전 세계가 직면해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감염병에 대한 국가 간 연대와 공동대처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는 기회가 됐다. 의료기기산업 측면에서의 변화를 살펴보면 체외진단기기 수요가 비약적으로 늘었고 대부분은 수출로 직결됐다.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 2020년 의료기기 생산실적이 발표되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지난해 1조원 매출 체외진단기기업체가 나온 점을 고려할 때 최소 30% 이상 시장이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체외진단기기의 수출 증가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국산 체외진단기기가 세계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과 둘째는 우리의 기술력을 코로나19를 계기로 입증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되돌아볼 게 있다.

식약처가 역량을 동원해 체외진단기기 수출허가를 강화했고 품질 사전 검토로 시장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지만 정작 의료기기안전국과 의료기기심사부의 인력 등 규모의 한계로 인해 투입되는 행정 자원이 제한적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감염병 뿐만 아니라 여타 질병에 대한 검진에서 체외진단이 가지는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이에 상응하는 국내 체외진단기기산업 경쟁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체외진단기기시장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 투자대비 수익을 얻으려면 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기술은 ‘정밀의료’와 ‘맞춤의료’ 실현의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라마다 원천기술 확보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정책적 지원책을 마련해야한다.

이를 위한 여러 방안을 고려할 수 있지만 시급한 것은 허가를 맡은 규제기관의 역량 강화와 함께 중소 체외진단기기업체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이 요구된다. 선도 기업은 자체 기술과 관리 능력이 국제기준에 부합하지만 대부분의 체외진단기기업체는 기술력 대비 사후관리 유지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0년도 수입실적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전체 체외진단기기업체는 모두 687개다. 이 가운데 제조가 349개, 수입이 338개로 숫자 면에서는 제조가 조금 더 많다.

하지만 업체들의 규모를 살펴보면 5억원 미만 생산실적업체는 제조가 241개, 수입은 260개다. 이는 전체 업체의 약 72%에 해당하는 수치로,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해 자본과 기술력을 선투자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인원 규모를 살펴봐도 10인 미만 체외진단기기업체는 제조 134개, 수입 188개로 전체 687개 업체 중 322개 업체가 10인 미만 사업자에 해당된다. 이들 업체들은 품질관리나 기술투자를 통한 신제품 개발에 경제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5억원 미만 생산실적과 종사자 10인 미만 업체는 총 277개로 전체의 약 40%를 차지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 체외진단기기업체들이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정책적 투자가 이뤄져야한다.

그 이유로는 세 가지를 거론할 수 있겠다.

첫째 체외진단기기가 공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 품질기준을 충족시키는 생산설비와 품질관리 장비가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기본 투자는 수익자인 업체가 부담해야하지만 대부분 자본력이 영세한 체외진단기기업체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품질이 곧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가 직접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나라의 짧은 의료기기 역사와 특히 체외진단기기가 의료기기로 편입된 시점을 고려한다면 시장 경쟁력과 의료인의 사용 환경을 고려해 중소업체에 대한 적극적인 육성이 필요하다. 

의료기기는 대표적인 다품종·소량생산제품이다. 세계적 규모의 회사라 하더라도 모든 진단시약을 갖고 있지는 못한다. 따라서 중소업체의 역할은 국민 건강과 체외진단산업 기반을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셋째 코로나19 사태로 각 나라들은 자국 중심 의료기기 우선 공급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호흡기 수출을 막고 심지어 우리나라도 자국민을 위해 코로나19 대응초기 마스크 수출을 제한했었다. 우리나라 국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수입에 의존하는 시장은 향후 또 다른 위기가 왔을 때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이다.

따라서 의료 주권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국내 제조시설 확충이 요구된다.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하면 중소 체외진단기기업체를 위한 ‘진흥안’을 마련해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2020년부터 시행된 ‘체외진단의료기기법’에는 진흥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있어 개정만으로도 충분히 실행 가능하다.

필자는 우선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적 지원책 마련이 중요하고, 실효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정부가 중소 업체를 대상으로 지원을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일부를 개정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규제기관만이 아닌 규제를 통한 산업 진흥을 도모할 수 있는 법적 근거 수립이 선행돼야한다.

즉 체외진단기기업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식약처가 허가심사·인증·관리감독으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개별업체 시설·설비 현황을 파악하고 맞춤형 지원을 한다면 그 효과가 클 것이다. 

예를 들어 식약처가 업체 방문 결과 시정 조치가 나왔다고 가정하면 해당 업체는 시설 개수 명령이나 품질관리 설비에 대한 보완 명령을 받게 된다. 만약 이 업체가 영세해 투자 여력이 없다면 현재의 경우 단지 시설 폐쇄만이 대안일 수 있지만 지원법이 제정되면 식약처가 지시한 행정처분이 아닌 보완 명령에 따라 지원금을 받아 시설기준 등에 투자할 수 있다.

따라서 업체는 제품 품질 수준을 향상시키고 투자 여력이 확대돼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다만 모든 업체가 다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매출과 인원 등에 제한을 두고 정책 목적에 맞게 전체 체외진단기기업체의 절반인 생산실적 5억원 미만 혹은 10인 이하 종사업소라는 기준점을 둔다면 단기간 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규제기관인 식약처가 산업체를 지원하고 품질경쟁력을 키우는 산업 진흥 역할을 수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규제와 진흥은 창과 방패의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약처가 법적 근거에 따른 산업 진흥을 통해 중소 체외진단기기업체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키운다면 국가 차원의 미래 먹거리산업 선점과 맞춤의료를 실현해 국민 건강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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