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의 모든 것 죽서루 / 이희봉 지음 / 이담북스 펴냄, 2013년

금년도 대단한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면 어렸을 적 잠시 살던 시골 할머님 댁이 생각납니다. 야트막한 야산의 남쪽 자락 끝에 앉아 있는 집 앞으로 논이 널따랗게 펼쳐지는 곳입니다. 들로 나가는 길에서 슬쩍 빠져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 담장너머로는 뒷산 비탈이 올려다 보이고 담장가에는 대봉 홍시가 열리는 감나무가 몇 그루 서있습니다. 대문 오른편으로 돼지우리를 돌아가면 할아버님께서 생전에 쓰셨다는 사랑채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크지 않은 마당을 가로 질러가면 안채가 앉아있는데, 안채를 돌아가면 좁다란 장독을 안은 뒤란이 나옵니다.

작은댁에서 집을 새로 지으면서 사라지고 없는 할머님 댁을 그려보는 이유는, 어렸을 적 추억을 되살려보려 하는 것도 있지만, 한여름에도 더위를 별로 느낄 수 없었던 안채에 대한 아련한 향수 때문입니다. 뒤란으로 나있는 작은 문을 열어두면 뒷산에 빼곡하게 들어선 소나무 사이를 지나 흘러드는 바람이 지금의 에어컨보다도 시원했습니다. 여름에도 뒤란은 늘 서늘해서 냉장고가 없는 불편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네 다른 집과 같은 초가집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멋은 없었지만 특히 여름에는 좋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서민들이 사는 초가집과는 달리 전통기와집에 담긴 멋과 풍류는 이상현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건물도 세월의 흐름이 녹아져야 제 멋이 우러난다고 합니다. 요즈음에 새로 조성된 한옥마을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오래된 한옥마을에서 느껴지는 멋을 이상헌님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한옥에는 음악처럼 높낮이가 있어 끊임없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지붕 선이 리듬을 타고 추녀 끝에 걸리면, 벽면을 채운 재료들이 질감의 변화를 이끌며 흥을 돋운다. 한옥에서 시작한 율동감은 자연스럽게 마을로 이어진다. 가을이 봄처럼 화사한 도래마을이라면 율동감이 당연 도드라진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강한 율동감이 몸을 자극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흥겹다.”(이상현 지음,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 245쪽) 나무를 보나 숲을 보지 못하거나, 숲을 보나 나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고 하는데,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양수겹장의 심미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을에 집을 지을 때도 마을 전체와의 조화를 고려했다는 옛날 대목들이 큰 건물을 지을 때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궁금해집니다. 사실 우리의 고건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니 그저 비슷해 보이는 모습의 집들을 천편일률적으로 지어졌을 것이란 생각에 별 관심 없이 스쳐 지나고 말았던 것이 전통 건물에 대하여 더 이상 가벼울 수 없는 저의 인식의 전부였습니다. 이런 인식을 새롭게 할 책을 만났습니다.

중앙대학교 건축학부의 이희봉 교수님의 <한국 건축의 모든 것 죽서루>입니다. 이희봉 교수님은 건축역사와 이론을 전공하셨을 뿐 아니라 문화인류학을 공부하셔서 사물로서의 건축물에서 더 나아가 그 건축물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였는지까지 연구의 대상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희봉교수님의 이런 철학은 앞서 소개한 이상현님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라 하겠습니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다른 나라 건물과 달리 한옥은 사는 사람을 중시한다. 때문에 한옥을 제대로 보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대청에 올라 먼산바라기도 하고, 방에 앉아 머름(문턱보다 높은 창턱)에 팔을 얹고 마당도 내다봐야 한다.”(이상현 지음,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 211쪽)

이희봉 교수님은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책은, 누정 건축 삼척 죽서루 책이다. 그러나 한편 죽서루 책은 아니다. 죽서루라는 자그마한 건물 하나를 가지고 온 세상을 보는 책이다.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서 있는 죽서루를 관광 문화유산 답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층을 꿰뚫어 깊이 보는 책이다. 기존 보아오던 방식, 즉 문화재 안내판이나 학계의 방식을 뒤집는다.” 저자의 이런 생각은 ‘건축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총체적 체험’이라는 철학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죽서루에 관한 모든 것을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추론하여 나온 이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흔히 ‘관찰’하면 ‘본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힘이었던 ‘관찰’은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지식을 유보하고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눈의 망막에 비치는 것을 ‘본다’고 한다. 보는 것 자체를 관찰이라 하지는 않는다. 망막의 상을 뇌가 인식하는 것을 지각(知覺)이라 한다. (…) 다음으로 지각한 것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28쪽)”고 적고, ‘보기→특성 파악하기→해석하여 의미찾기’가 되어야 전통건축의 답사가 완성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아가 동양문화권에서 말하는 ‘본다’의 차원을 이렇게 나누고 있습니다. 즉 최하등이라고 할 감각의 단계, 눈으로 보는 육안(肉眼), 그 위에 통찰의 아래 단계라 할 마음으로 보는 심안(心眼)을 거쳐 지혜의 눈 혜안(慧眼)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대중들에게 우리 문화 답사를 유행시킨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달변의 문장력으로 대한민국에 남녀노소 유적답사를 유행시킨 공적은 높이 사지만, 베스트셀러 덕에 문화 교주가 될 만큼 영향력이 크지만, 또 대중 상대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겠지만 얄팍잡다한 흥미위주서술들이 대중을 오도하고 전문가들을 불편하게 만든다.(17쪽)”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단순히 죽서루를 답사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한국건축을 이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시작하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죽서루 보기, 육안에서 심안을 거쳐 혜안으로 올라가고, 깊은 생각과 더불어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는 여행을 떠나보자.(31쪽)” 이런 의도는 목차에서도 드러나 있습니다. 건물을 감상하는 일이 단순하게 건축기술을 살피는 일을 넘어 생활공간으로서의 의미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먼저 죽서루를 가볍게 훑어보고, 동양건축에 심취했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사이의 깡촌마을 베어런(Bear Run)의 계곡에 지은 낙수장(Falling water)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낙수장이 두 개의 폭포 사이에 바위 위에 집을 앉혔기 때문입니다. 바로 죽서루가 강원도 삼척시를 흐르는 오십천 절벽 위에 있는 바위 위에 앉힌 누각이라는 점에서 비교대상이 된다고 본 것이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를 두었습니다.

“바위 위에 올라앉은 집의 설계개념은 죽서루와 같다. 물이 낙수장은 폭포요, 죽서루는 절벽 밑의 깊은 소라는 점이 조금 다르다. 자연을 집으로 끌어들여 와 안팎공간이 상호 편입한다는 점은 똑같다. 그러나 라이트의 낙수장이 현대 건축가가 창의적 설계를 하여 잠깐 사용한 집이라는 점에 비하면 죽서루는 먼 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절벽 바위의 큰 스케일의 자연에서부터 집터의 미세 자연까지 구석구석 기운이 살아 있는 건축이다.(68쪽)”

이어서 죽서루의 모습을 상세하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집터에 있는 바위를 있는 그대로 주춧돌로 이용하여 기둥의 밑면을 바위의 표면에 부합되도록 깎는 그랭이질을 적용하였다는 것이나 북쪽 진입로의 바위를 깎아내지 않고 그대로 살려 마루로 파고든 모습 등을 보면 죽서루가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건축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 고건축에 무식한 저도 처음 다섯 칸 건물로 건축되었다가 후대에 남북으로 각각 한 칸씩 증축했다는 지금까지의 통설보다는 저자의 주장이 더 논리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까래, 대들보나 처마와 같이 몇 개의 친숙한 우리의 고건축용어를 넘어 주심도리, 외목도리, 살미, 첨차, 동귀틀, 장귀틀 등과 같은 전문용어가 생경스럽기는 하지만 죽서루는 물론 다른 고건축물의 답사를 통하여 얻은 사진들과 스케치들을 통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아직 가보지 못한 죽서루의 상세한 부분까지도 눈으로 직접 보는 듯합니다. 죽서루는 삼척부사 이성조가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써 붙일 정도로 으뜸이 되는 누각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생활공간으로서의 죽서루를 체험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만, 객사의 부속 건물로 건축되었던 만큼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죽서루가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그리고 수덕사 대웅전 다음으로 4번째 쯤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최근에 고려 명종 때 시인 김극기(1148~1209)가 지은 죽서루에 대한 시가 발굴되어 건축연대를 끌어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庾樓夕月侵床下 滕閣朝雲起棟間(유루석월침상하 등각조운기동간; 누각의 저녁달은 누마루 아래로 스며들고, 물에 솟은 누각 아침 구름 마룻대에서 일어나네)(52쪽)” 이처럼 죽서루는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 시를 짓는 장소로 꼽혀왔기 때문에 죽서루에 관한 시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는 정조와 숙종의 시도 있다고 합니다. 임금께서 이곳까지 올 수는 없었겠지만, 궁궐화공이 그려 올린 그림을 감상하고 느낌을 남긴 것이라고 합니다. 휘돌아드는 개울에 드리운 암벽과 그 위에 서 있는 죽서루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김홍도의 그림 ‘죽서루’ 뿐만 아니라 죽서루 아래 오십천에 떠있는 배까지 그린 겸재 정선의 ‘죽서루’와 강세황의 ‘죽서루’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죽서루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망한 고려의 수도 개성을 돌아본 심정을 읊은 야은 길재의 시,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를 인용하면서, 저자는 ‘건물에 당시 옛 사람을 집어넣어 그들의 삶 속에서 건축을 보아야만 그것이 건축을 보는 바른 역사’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삶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보는, 즉 건축을 사물로 보는 경향은 실패한 근대건축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이 통일된 건축을 만들려했던 근대건축의 개념은 노이버그 슐츠가 건축에 현상학 철학을 접목하여 만든 건축현상학에 밀려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니우스 로치(Genius loci, 장소의 혼)’라는 개념에서 땅은 건축 설계 시 건축가 누구나 다 하는 대지분석의 단순한 분석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땅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고 부질없는 인간이 짧은 시간 낙서하며 그 속에서 살다가 사라져가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죽서루가 바로 그런 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서루가 자리 잡은 바위 절벽은 오십천 전 구간에서 딱 한군데,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바로 그 장소, 천지의 혼이 서린 경건한 생명체라는 해석인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 이전에 ‘이미 거기’에 존재해 있었고, 우리는 세상과 다시 원시적·직접적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세상은 사물로서의 대상이 아니며 ‘객관적 세계’란 없으며, 인간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자기 자신의 ‘의미의 세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적 시각으로 죽서루를 본 저자는 “죽서루는 하나의 물건덩어리가 아니라 나와 또 선현들의 관계 속에서 의미의 세계에 존재한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또 과거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의 체험 속의 종합적·역사적 생명체(207쪽)”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흩어져 있는 역사유물을 답사(?)할 때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우리의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려 그 유물이 선조들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었는지를 종합적으로 감상하는 혜안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물론자의 죽서루’에서는 죽서루를 건축물이라는 사물로서 보아온 건축학자들의 시각에서 나온 통설들을 뒤엎는 저자의 독특하고도 새로운 설명을 감상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전해지는 다양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죽서루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건축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의 문화다’는 철학을 가진 저자는 삼척 오십천 절벽 위에 세워진 죽서루를 통해서 한국의 고건축을 제대로 보는 법을 우리에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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