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있었던 일이다. 경남 의령읍 정암리 79번 국도상에 위치한 다리 위에서 의료진을 태운 승합차가 난간을 들이받고 추락한 사고였다. 당시 사고로 승합차에 타고 있던 20대 여의사와 의료기사 등 4명이 숨졌다. 이상한 것은 이 승합차가 인근 병원에서 운영하는 차량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고가 난 곳에서 무려 190km나 떨어진 전남 광주에 위치한 H병원에서 운영하는 승합차량이었다. 알고 보니 H병원 소속 의료진이 멀리 경남 의령까지 원정 출장검진을 가던 길에 사고가 난 것이었다.<본지 기사 ' 스물일곱 새내기 여의사의 죽음…무리한 출장검진 탓? '>

이 사고가 나기 전, H병원에서는 광주에서 경남까지 넘나들면 출장검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당일에도 병원은 관할구역도 아닌 경남 의령에 위치한 산골마을까지 출장검진을 보냈다. 무리하게 장거리 출장검진 일정을 소화하려다 사고를 낸 것이다. 비단 이 사고가 아니더라도 출장검진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일부 출장검진기관의 경우 '싹쓸이 불량검진'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검진결과를 제대로 통보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뒤늦게 건강보험공단과 보건복지부는 출장검진 지역을 제한하고 검진기관의 검진 및 사후관리서비스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국가검진제도는 나름 역사가 오래됐다. 1980년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을 대상으로 건강진단이 실시된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검진 대상을 확대해 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국가 암 조기검진체계 구축과 생애전환기 건강진단, 영유아 건강검진 등이 도입되면서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와 마찬가지로 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건강검진체계를 갖추게 됐다. 외국의 선진국과 비교해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포괄적인 검진체계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검질의 질이다. 건강검진은 만성질환의 예방과 관리, 암의 조기검진 및 조기치료를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그 목적을 둔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건강검진의 질 관리와 수검자에 대한 사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국가검진은 이런 측면에서 상당히 소홀했다.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국가검진의 수검률이라는 수치에만 집착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일반검진 수검률은 70%가 넘고 5대 암 검진의 경우 40% 수준이다. 암 검진 수검률의 경우 암종별에 따라 60~70%에 달하는 선진 외국과 비교하면 낮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이미 민간종합검진을 받고 있다. 또 건강보험 가입자의 연간 의료기관 이용률이 90%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낮다고만 볼 수 없다. 높은 민간종합검진 수검률과 의료기관 이용률을 감안하면 70%가 넘는 건강검진 수검률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수검률을 낮추더라도 국가검진의 질을 높이는 일이 더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국가검진 중에서 일반검진에 드는 비용은 건보공단이 전액 부담한다. 암 검진은 그 종류에 따라 전액, 또는 90%를 공단이 부담한다. 2011년 기준으로 건강검진에 투입된 예산이 1조원을 넘었다. 그런데 과연 그 만큼의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가검진에 투입된 예산에 비해 국민의 건강 향상과 더불어 의료비 절감 효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진사업의 비용-효과(cost-effectiveness)를 평가할 수 있는 변변한 도구도 없다. 그동안 국가검진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는 도외시되고 오로지 수검율과 진단율 등의 양적인 지표만 확인됐을 뿐이다. 국가검진의 질 평가와 사후관리는 제쳐놓고 수검률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검진을 독려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싹쓸이 불량 출장검진'이 난무하는 상황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전남 광주에서 경남 의령까지 원거리 출장검진을 가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의료진들도 어쩌면 이러한 국가검진 사업의 피해자일 수 있다. 또한 민간종합검진과 비교해 높은 수치를 보이는 국가 암검진의 위양성률과 위음성률은 되레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초래한다. 의료장비나 검진 인력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국가검진을 하다가 적발된 검진기관도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가검진을 '싸구려 저질검진'으로 인식하는 국민들도 많다. 게다가 일부 질병은 조기검진 및 조기치료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기검진 대상 질병이 확대되면서 의료비 증가와 의료자원의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하는 의원급 검진기관의 질 평가를 놓고 말이 많다. 평가항목이 너무 많고 제출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라 소규모 인원의 동네의원에서는 너무 벅차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검진기관 평가가 너무 힘들어 건강검진을 포기해야 겠다는 의원도 나오나 보다. 검진기관에 대한 질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질이 낮은 기관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질을 높이도록 장려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국가검진의 도입 취지와 목표를 감안한다면.

건보공단은 평가지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앞서 건보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 2008년 수행한 ‘검진기관의 질 관리 체계와 건강보험공단의 역할 방향’이란 보고서를 살펴봤으면 한다.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검진기관 평가 관련 기관의 부담을 덜고, 평가 문항도 주요 지표중심으로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검진기관 질 평가사업 추진은 질 평가가 가능한 부분부터 실시하고, 평가 자체의 정확성에 따른 조치의 수준을 조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단은 이번에 만들어진 검진기관 평가지침이 과연 이런 제안을 잘 지켰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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