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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괄수가제 반대는 반개혁인가?이진석(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前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 위원)

의료계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7개 질병군에 대한 DRG 포괄수가제가 확대 시행되었다.

그리고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 이전의 뜨거운 논란과 앞으로 병원 운영에 미칠 영향에 비하면, 놀랄 만큼 조용하게 한 달 여의 시간이 흘렀다.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의 문제점에 대한 의료계의 여론 작업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과 환자는 자신의 진료에 기존의 행위별수가제와는 다른 지불제도가 적용되는지 조차 모른 채 의료이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7개 질병군에 국한된 포괄수가제 적용 대상이 점차 다른 질병군으로도 확대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가파른 국민의료비 증가에 대응해야 하는 정부와 보험당국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론이고, 국제적인 추세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측면에서, 올해와 같은 논란과 이해관계의 충돌 가능성은 상존해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간의 포괄수가제 도입과 확대 적용의 과정을 보면, 이해당사자 간의 공감대와 상호 이해가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반대에 부딪혀 포괄수가제 도입이 무산되거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도 도입을 강행하는 과정이 반복되곤 했다.

그리고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의료계를 ‘반개혁’ 혹은 ‘지나친 탐욕’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흔했다. 이런 갈등과 대립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이해당사자 간의 상호 이해가 필요한 몇 가지 지점을 짚고자 한다.

첫째, 재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의료계가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행위별수가제는 재정적 위험(Financial Risk)을 전적으로 보험자가 짊어지는 체계이다. 의료공급자가 제공한 의료서비스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전액을 보상해 주어야 하는 것이 행위별수가제의 기본 원칙이다. 여기서 재정 파탄의 대상은 보험자이지, 의료공급자는 아니다.

그러나 포괄수가제에서는 보험자와 의료공급자가 재정적 위험을 분담하게 된다. 의료공급자 입장에서는 이전에는 감당한 필요가 없었던 재정적 위험을 짊어지게 되는 셈이다. 자칫하면, 의료기관이 재정 파탄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의료공급자 입장에서 이를 반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포괄수가제에 대한 의료공급자의 찬성을 기대하는 것은 의료공급자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도덕군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포괄수가제를 반대하거나 부정적이라고 해서, 의료계를 반개혁으로 내모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제적 이해관계의 발현을 흡사 품성의 문제인양 인격화하는 것으로 타당하지도 않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접근 방식이다. 각각의 경제적 행위주체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은 어떤 사회에서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기형적인 급여·수가체계는 포괄수가제에 대한 의료계의 반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건강보험의 급여 수가는 원가 보전율이 75% 수준에 불과하다. 이로 인한 재정 손실을 의료기관은 (1) 원가 보전율이 낮더라도 양을 늘리면 마진이 생기는 박리다매의 원리에 따라 서비스의 양을 늘리고, (2) 원가 보전율이 높은 비급여 진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메워왔다.

그런데 포괄수가제는 이 두 가지 수단을 모두 차단하는 매우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건강보험 수가가 원가와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인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기관은 그나마 있던 우회로를 모두 상실하게 되는 상황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정부와 보험당국은 7개 질병군의 포괄수가를 상대적으로 후하게 책정하거나, 해당 진료과목의 수가를 일부 조정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성의 표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기형적인 급여·수가체계에서 기인한 의료계의 근본적인 우려와 불만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와 보험당국은 아이가 울면 떡 하나 주는 식의 땜질처방이 아니라,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기형적인 급여·수가체계를 개편하고, 의료기관의 왜곡된 수입 구조를 정상화하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포괄수가제에 대한 전향적인 논의도 가능하고, 국민과 의료계 모두에게도 이롭다.

셋째, 의료계의 근거 있는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포괄수가제 확대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불가피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변화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포괄수가제의 정책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이다. 혹자는 포괄수가제를 통해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실현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2011년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은 7.4%로 OECD 평균인 9.3%에 한참 미달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보건의료 분야에 투입하는 자원 총량이 OECD 평균에 한참 모자란다는 의미이고, 국민 입장에서 볼 때에는 OECD 국민이 평균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건강보장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비 지출을 더 줄이자는 것은 국민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의료계 입장에서는 도저히 수용 불가능한 주장이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점은 국민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OECD 평균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매우 가파르게 의료비 지출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행의 증가 추세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미래의 우리 사회가 감당 가능하도록 의료비 지출 증가 추세를 적절히 조절하는 기전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즉, 당분간 국민의료비 지출 증가는 불가피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것이지만, 증가 추세를 적정화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당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괄수가제 도입 혹은 확대의 목표도 지금 당장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의료비 지출 증가에 대비하는 여건을 갖추는 것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여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초기 투자에 인색한 제도 개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명확한 정책 목표의 공유와 적극적인 초기 투자는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전향적이고 발전적인 논의의 전제 조건이다.

이 글은 서울대학교병원 웹진 'e·Health Policy' 8월호에 게재됐으며, 이진석 교수와 서울대병원 대외정책팀으로부터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본지에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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