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 산책 / 최경화 지음 / 시공사 펴냄, 2013년

몇 년 전에 동경가는 길에 장윤선님의 <도쿄 미술관 산책>의 도움으로 우에노공원에 모여있는 도쿄예술대학 미술관, 도쿄 국립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좋은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예술작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잘 알려진 작품만 챙겨 감상하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보기를 즐기는 편입니다.

시공사에서 ‘이국적인 도시에서 즐기는 예술의 향기’ 시리즈로 나온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을 읽을 기회가 있어 소개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보면 책읽기에도 묘한 인연 같은 것 같습니다. 아내와 함께 걷기를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정진홍님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최미선님의 <산티아고 가는 길> 등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리뷰에서 적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저도 가보고 싶은 길이기 때문에 이미지 훈련 삼아 그 느낌을 얻어 보려는 생각에서입니다.

유럽에서도 서쪽 끝에 있는 나라인 탓인지 지금은 금지되고 있는 투우 말고는 별로 기억되지 않던 스페인은 한 때 유럽을 제패한 나라이며, 배를 타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겠다는 콜럼버스에게 탐험비용을 대줄 정도로 진취적인 나라였습니다. 1492년 이사벨여왕의 승인을 받아 출항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1898년 쿠바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미국과 붙은 미서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할 때까지 400년 동안,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재화 덕분에 대제국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돈이 모이는 곳에 예술의 향기도 넘쳐나기 마련인데 그런 매력적인 모습을 누군가 먼저 보고 전하게 된 것이겠지요. 결국 역사 속에 잠자고 있던 스페인의 매력이 우리들에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우리네 삶에 여유가 생긴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들과 함께 미술관을 중심으로 돌아본 42일간의 유럽여행을 담은 고형욱님의 <아빠의 자격>에서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걸려 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비롯해서 200년째 공사 중이라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에 관한 이야기는 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EBS인문학 특강]을 통하여 김상근교수님께서 엘 그레코와 카라바조의 미술에 대하여 설명해주셨는데, 특히 엘 그레코는 르네상스 미술이 완성되던 시기에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스페인에 대한 저의 동경을 키우도록 만들었습니다.

<스페인 미술관 산책>에서 안내를 맡은 최경화님은 미술사학을 전공했는데, ‘꿋꿋하게 나만의 길을 가자’는 인생철학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인연으로 스페인 어학연수와 산티아고 가는 길 순례를 비롯한 몇 차례의 스페인 여행 끝에 “이럴 바에 아예 스페인에서 살아보자”고 마드리드를 찾았고, 프라도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등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전문가이드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전공과 경험으로 볼 때, 스페인 미술관을 안내하는데 꼭 맞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의 삶을 이 길로 안내한 계기는 <스페인 미술관 산책>의 첫 번째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는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본 느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들이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고 죽는 것을 지켜본 어머니 마리아는 울다가 끝내는 기절했다. 죽은 아들보다 낯빛이 더 창백하다. 요한은 눈가가 붉어지도록 울었고, 시신을 내리는 남자들의 미간에는 주름이 져 있다. 십자가 밑에 있는 사람들의 슬픔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25쪽)” 이런 느낌은 베이던이 인간적인 감정을 잘 표현한 화가이기도 하지만, 예전 종교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적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베이던처럼 플랑드르 출신 화가의 작품이 많은 이유라던가 지금의 벨기에 해당하는 플랑드르는 유화가 처음 시작한 고장이라는 이유로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까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해골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설명으로 앞으로는 무식한 티를 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쓰러지는 마리아를 부축하려는 요한의 발밑에 놓여있는 해골이 바로 최초의 인간 아담의 해골이라는 것인데, 사람들은 예수를 매단 십자가가 아담의 무덤 바로 위에 세워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첫 번째 인간이자 인류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아담이 지은 죄를 씻기 위해 예수가 자신을 희생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방식(29쪽)”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해석은 그렇다고 쳐도 “서양회화에서 해골이 등장하는 경우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너희도 곧 죽어서 이 해골처럼 될 테니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설명이 더 그럴 듯하게 느껴집니다. 오래 전에 루브르박물관을 찾았을 때 유난히 해골이 등장하는 그림들이 모여 있던 전시실에서 발길이 멈추어지더라는 이야기를 적은 바 있습니다. 그때는 해골을 가지고 해부학 공부를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최경화님의 설명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페인 미술관 산책>에서는 프라도 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국립 카탈루냐 미술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을 따라가는 모데르니스모 루트,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그리고 작지만 알찬 미술관으로 마드리드의 소로야 미술관과 세랄보 미술관, 바르셀로나의 마드리드 카이사 포름과 호안 미로 재단, 그리고 톨레도의 산타크루스 미술관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술관의 대표작을 소개하기에 앞서 미술관이 설립된 배경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을 예로 들면, “프라도 미술관의 기반이 된 컬렉션은 15세기 스페인 왕실에서 시작되었다. 왕들이 취향에 따라 수집한 작품들, 왕실화가의 그림, 그밖에도 왕실 소유의 건물에 걸려 있던 작품 등이 기반이 되어 1819년에 미술관이 설립되었다.(19쪽)”라는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루브르박물관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만, 프라도 미술관 역시 길을 잃기 쉽다고 합니다. 이렇듯 규모가 큰 미술관을 제대로 감상하는 팁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거대한 건물 안에 일정한  리듬으로 작품을 전시해 놓기 때문에 레게리듬에 몸을 맡기듯, 우리는 그 리듬에 몸을 맡기면 된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미술관에서 제작한 안내 팸플릿이다. 건물안내도와 함께 색상별로 어느 구역에 어느 나라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지 표시를 해놓고, 대표작품들도 명기되어 있다.(22쪽)”

저자는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작으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작품과는 비교가 될 정도로 열 쪽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홉, 아니 열 한 사람에 더하여 개까지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왕궁의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공간감 표현이 자연스럽다.(109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가운데 서있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주인공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만, 사실은 벨라스케스가 국왕 펠리페4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마리아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장면을 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정작 상황의 주인공인 왕과 왕비는 멀리 벽에 걸린 거울에 비쳐서 조그맣게 그려지고 오히려 화가는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전체 인물 가운데 가장 크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자화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말입니다.

<시녀들>을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고 있는 것은 수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 가면 피카소가 리메이크한 <시녀들>을 볼 수 있다고 하고, 그림 오른쪽에 앉아서 졸고 있는 덩치 큰 개가 주인공인 소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시녀들>보다도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제일 먼저 설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어떤 미술관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그림을 발견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167쪽)”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만나는 도메니코 가를란다이오의 <조반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그 의미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대단한 절세미인은 아니었을 것 같지만, 단정한 옆얼굴의 선과 목에서 등으로 떨어지는 곡선 등은 첫눈에 봐도 시선을 확 끌 정도로 아름답다. 젊음, 부족함 없는 생활에서 오는 여유로운 무엇이 이 여인에게 있다. 들여다보고 있는 나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앞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에는 무언가 명상하게 만드는 힘도 있다.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도 아닌 500년 전 여인이 내 시선을 이렇게 잡아두고 있다는 것이 미술의 힘이다.(166쪽)”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왔습니다만,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대표하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저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37년 4월 26일 오후 4시 30분경, 바스코지방의 한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히틀러가 프랑코를 돕기 위해 최신 기종의 전투기를 보내면서 엄청난 양의 폭탄을 무차별 투하한 것이다. (…) 당시만 해도 비행기로 폭탄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게르니카는 이틀 내내 불탔고 1,5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인구의 3분의 2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223쪽)” 폭격이 있었던 3일 후에 피카소는 이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파리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걸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을 알면 “그림에는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가 있다. 이미 죽어서 힘없이 축 늘어진 아이를 품에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 창에 찔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말, 불타는 건물, 폭탄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하늘을 보며 두 팔을 들고 절규하는 사람, 그는 하늘을 본다. 그들을 곧 끝장낼 죽음이 오는 하늘이다. 한 손에 부러진 칼을 든 채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도 있다. 그러나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꽃은 피어났다.(226쪽)”는 작가의 설명이 충분히 이해될 것 같습니다. <게르니카>를 준비하면서 피카소가 남긴 45점의 스케치와 당시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가 제작과정을 찍은 사진들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어 같이 감상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도 주목할 작품이겠습니다만, 저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과학과 자선>을 꼭 보고 싶은 그림으로 꼽겠습니다. 피카소가 열다섯 살 때 고전적 유화기법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 중앙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안색이 좋지 않은 여인이 누워 있다. 그 오른쪽에는 환자의 맥을 짚으면서 시계를 들여다보는 의사가 앉아 있다. 즉 ‘과학’이다. 침대 반대편에서 한 수녀가 어린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인에게 마실 것을 건네준다. 이 아이는 병든 여인이의 아이일 것이다.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르는 병자를 돌봐 주고, 그가 세상에 남겨둘 갈 곳 없는 아이를 돌봐 주는 역할을 하는 수녀는 ‘자선'이다.(337쪽)”라는 저자의 설명이 와 닿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걸음 나아가서 치료와 간병의 개념을 병존시켜 환자의 질병을 다루어야 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어집니다. 스페인에 가실 계획이 있으시거나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을 읽고 소개할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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