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이란 말 그대로 급성질환이나 손상으로 인해 신속한 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응급실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환자나 보호자도 적지 않다. 찾아가면 무조건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만일 응급환자라면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응급환자가 아니라면 조금, 아니 많이 기다릴 수도 있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다 응급환자가 아니냐고? 아니다. 응급환자는 엄연히 법규정상 그 기준이 정해져 있다. 급성질환이나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해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않을 경우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이 바로 응급환자다. 더 구체적으로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응급증상 및 이에 준하는 증상을 정해 놓았다. 

그런데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의 30% 이상이 비응급환자라고 한다. 비응급환자 비율이 많게는 70~80%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야간이나 휴일에 아플 경우 외래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이 적다보니 비교적 증상이 가벼운 경증환자들도 일단 응급실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야간이나 휴일의 응급실은 늘 북쇄통이다. 앞서 말했듯이 응급실은 증상이 중한 응급환자를 최우선적으로 치료하는 곳이다. 당연히 경증환자는 진료 순서가 밀릴 수밖에 없다. 일반 외래진료처럼 접수 순서에 따라 진료를 보는 곳이 아니다. 

이런 규정에 아랑곳없이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다른 사람부터 먼저 진료하나” 혹은 “응급실인데 왜 빨리 치료해주지 않냐”고 울화통을 터뜨리는 환자나 보호자가 꼭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은 제한적이고 진료해야 할 환자는 많다. 의료진은 환자의 증상과 상태를 보고 응급처지 순서를 판단한다. 이유없이 환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생명이 위독한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간혹 참을성 없는 환자나 보호자, 혹은 술에 취한 주취 환자가 이성을 잃고 의료진을 폭행하거나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실제로 응급실에서는 그런 일이 숱하게 생긴다. 욱하는 마음에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휘둘러 나아질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자신과 다른 응급환자에게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환자나 보호자의 폭언·폭행으로 의료진이 정상적인 진료가 힘들어진다면 응급의료의 공백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의료진에 대한 폭행을 넘어 일종의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접수부터 하세요”란 말에 발끈해선 안된다. 환자한테 치료비를 받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꼭 필요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외래진료도 마찬가지겠지만 접수부터 해야 진료가 가능하다. 접수가 안되면 차트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환자에게 필요한 약 처방이나 처치를 입력할 수도 없다. 진짜 응급환자라면 당연히 응급처치부터 먼저 한 다음에 접수절차를 밟는다.  

응급실을 찾아 진료를 받고 돌아가면서 진료비 때문에 당황하는 환자들도 많다. 몇 시간을 머무는 동안 고작 증상만 물어보고 간단한 약 처방만 받거나, 혹은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외래진료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진료비가 수 만원이 나왔으니 말이다. 일반 외래진료 같았으면 본인부담금이 몇 천원에 불과했을 텐데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자신이 응급환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응급실을 찾아 진료를 받은 환자 중에서 응급환자로 분류되지 않을 경우 처치료에 응급의료관리료를 전액 본인부담해야 한다. 응급의료관리료는 비응급환자로 인한 응급실의 혼잡을 막고 병원이 응급실 시설 등의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내는 일종의 기회비용이다.

응급실은 24시간 내내 쉴새 없이 돌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응급의료 수가체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운영 할수록 병원이 손해를 보는 구조다. 얼마 전까지 응급실 원가보전율은 7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최근 응급의료수가를 인상했지만 여전히 원가에도 못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응급실의 시설이나 인력 확충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유지하기도 벅차다. 이런 이유로 응급실 의료서비스의 질은 점점 떨어진다.

응급실을 이용하면서 느낀 불만의 대부분은 여기서 비롯된다.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 던진다고 나아질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 불만은 응급실 의료진이나 병원이 아니라 정부를 향해 터뜨려야 한다. 응급의료수가라든지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결정을 하는 곳은 병원이나 의사단체가 아니라 정부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