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권(변호사, 분당서울대병원 의료법무 전담교수)

텔레비전의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노라면 '입법의 불비'를 결론으로 드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처벌할 수 없다. 현행 규정으로는 규제할 수 없다는 식의 공무원 또는 법조인의 인터뷰를 보는 경우도 흔하다.

현재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에 대한 환수가 활발하게 된 이유를 따져보자면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의 개정이 지난 6월 말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즉, 일반국민 대부분은 제대로 된 직업이 없었던 전 대통령의 자식들이 몇 백 억대의 재산가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반면 수사기관들은 관계 법령에 따라 조사할 수 없다는 답만을 내 놓았었다.

추징에 대한 소멸시효의 완성 즈음에 악화된 국민 여론을 달래기 위해 국회가 추징시효를 연장하고 범인 외 가족을 비롯한 제3자가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불법재산 및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도 추징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꿈으로서 광범위한 수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에 반해 이런 법도 있었나 할 정도로 쓸데없는 법도 많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의 모든 행위가 원칙적으로 법령에 근거하여 이뤄지므로 현행 법령을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 법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없애는 것도 무지 힘들다. 그러다보니 시대에 맞지 않는 법이 여전히 그 효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치마길이가 과도하게 짧으면 범칙금을 부과하겠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근거는 경범죄처벌법이다.

사실 경범죄처벌법은 그 시작이 고약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그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는 상태로 1954년 4월1일 법률 제316호로 옷만 바꿔입었다. 광복이 이뤄졌다면 당연히 없어져야 했음에도 일본인이 아닌 우리 경찰들로부터 같은 내용의 통제를 받게 된 것이다.

시간을 내어 그 내용을 한 번만 읽어보라.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거의 모든 국민에 대해 벌금이나 범칙금을 물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끼어들기는 행렬방해로,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면 구걸행위로, 광고물을 붙이거나 끼우는 것은 광고물 무단부착으로 처벌된다. 이런 행위를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도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해야 하는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거의 전 국민은 전과자가 된다.

동승자에게 좌석 안전띠를 메도록 하지 않은 운전자에게는 3만원, 고인 물을 튀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경우에는 2만원의 과태료가 도로교통법에 의해 부과된다.

굳이 이런 것 까지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가? 최근 의료계를 돌아보자. 합리적인 사람들의 머리를 갸웃하게 하는 많은 법률들이 쏟아지고 있다. 왜 이럴까? 첫째,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거나, 둘째, 제대로 알지를 못하였거나 셋째, 대중적 관심이나 주목을 끌기 위해서 졸속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법령의 제·개정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왜 국회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출입을 하고 관련 국회의원을 만나겠는가?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삶이 바뀜에 따라 쓸모가 없어진 법은 폐지하고 규제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와 반대로 법령이 제·개정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입법기관이나 행정부에 대한 국민감시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절이다. 

이경권은?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의료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에 입학했다. 2008년 68회 의사국시에 합격했다. 현재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대표변호사이며, 분당서울대병원 의료법무 전담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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