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미국의사협회(AMA) 홈페이지는 인상적이다. 방대한 정보량도 양이지만 다루는 정보가 상당히 다양하고 그 내용도 실제적이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고려해 의료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도 참고할 수 있는 관련 특집 콘텐츠를 지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리소스 센터 페이지를 별도로 마련해 다양한 직역에 종사하는 의료전문가가 임상현장에서 참고할 수 있는 정보가 풍부하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전문가가 고려해야 할 '건강 형평성' 관련 정보이다. AMA는 의료진의 편견이 팬데믹 상황에서 건강 불평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고착화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시스템과 의료공급자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한다. 그 일환으로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공평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을 그래픽 이미지 등을 활용해 도식화한 자료도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인종차별이 감염병 팬데믹에서 미치는 영향, 입원진료비 인상과 흑인 사망률, 외국인 포비아 등이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상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평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인종차별에 대한 경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모니터링, 방역용품 확보, 환자의 헬스리터리스 수준을 고려한 설명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AMA 홈페이지를 보다 보면 미국 사회에서 의료전문가 단체로서 신뢰를 구축한 배경은 높은 직업전문성 발현과 함께 다양성 존중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AMA는 산하에 특수집단 분과로 'LGBTQ(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 등 성소수자)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자문위원회는  LGBTQ 관련한 정책, 권익옹호, 교육 활동 등을 진흥하기 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AMA는 현재 홈페이지에 코로나19 유행 기간이나 그 이후에 LGBTQ 환자를 지원하고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 (AMA 홈페이지 바로가기) 의료전문가 단체로서 다양성 존중을 사회적 책무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보건의료정책, 의료윤리 등에 관한 미국의사협회 공식 입장을 정리한 ‘AMA Policy’는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건 물론 법원 판결에도 인용될 정도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는 '힘 있는' 의사단체 모습이다. 

대한의사협회(KMA) 홈페이지는 어떤가. AMA와 비교해 정보의 양이 크게 빈약한 건 그렇다고 치고, 그 구성이나 담긴 내용도 전문가단체 홈페이지치고는 조잡하다고 느끼게 한다. (KMA 홈페이지 바로가기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회원인 의사를 위한 정보도 찾아보기 힘들다. 협회 기관지에서 보도한 기사와 여러 매체에서 보도한 보건의료 관련 기사 링크로 홈페이지 초기화면을 채우고 있다. '면허 강탈법 무엇이 문제인가', '실패가 예견된 (공공의대 관련 )의료정책', '한방첩약 건보적용 NO' 등 의료계 현안 관련해 의협 주장을 담은 포스터 이미지가 홈페이지 초기화면의 주요 공간을 차지한다. 

의협 홈페이지에 '건강상식'이란 타이틀로 걸어놓은 게시판은 2018년에 등록된 게 마지막이다. 그마저도 단편적인 정보를 중구난방으로 등록해 놓아 리소스 가치가 떨어진다. 의료전문가 단체로서 의협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짐작하기 힘들다. AMA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의료정보와 다양성의 가치를 높이는 정보 제공은 언감생심이다.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의사면허 특성만 부각하느라 골몰하는 인상이다. 

최근 의협 홈페이지를 한 번이라도 들어가 봤으면 알겠지만, 새로운 협회장을 뽑는 선거가 한창이다. 모두 6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매번 그렇지만 의협 회장 선거는 유권자인 의사회원들 무관심 속에 각 후보캠프만 요란하다. 이번 회장 선거에 출마한 대부분 후보가 '당당하고 강한 의협'을 세우겠다고 강조한다. 2000년 의약분업 투쟁을 겪은 이후 의사단체장 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아젠다다. 잘못된 의료제도를 개선하고 의료체계를 개혁하기 위해선 투쟁을 잘하는 '강한 의사단체'가 필요하다는 의사집단 내부 인식이 투영된 구호다. 

강한 의협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 혹은 조직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투쟁하는 집행부'라는 막연한 구호처럼 다가온다. 의사사회 내부적으로도 강한 의사단체를 어떻게 조직화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논의되거나 정리된 게 없지 싶다. "감옥에 갈 각오로 문재인 케어를 막겠다"고 열변을 토하며 당선된 현 의협 회장은 임기 중 파업과 강경투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정작 지난해 공공의대 저지를 위한 의료계 총파업 투쟁에서 독단적으로 의정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배신자' 낙인이 찍혔다. 강한 의협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뭔지 모르겠지만 파업과 시위 등 강성투쟁이 곧 '강한 의협'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의협을 바라보는 외부 시각은 어떨까. 신뢰할만한 전문가단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전문가단체? 아니면 의사집단만을 위한 이익단체? 강한 의협이 추구하는 방향성부터 먼저 정리하는 게 필요할 듯싶다. 다만 전문가단체로서 '강한 의협'이 되려면 다양성 존중과 연대가 필요하다. 의료수가 적정화와 진료자율권 보장 등에만 목소리를 높이고 사회적 약자·소수자·취약계층에게 가해지는 건강 불평등과 노동자 건강권 보장에는 무관심했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의료전문가 단체로서 통찰도, 이에 개입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민사회 등 외부와 연대한 경험도 부재하다. '국민건강'을 앞세우지만 오로지 의사들만의 투쟁을 폈다. 외부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연대하지 않는 집단의 투쟁은 확장하지 못하고 변화를 이끌 동력도 얻기 힘들다. 

정부나 정치권도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의사단체 주장에 귀 기울일 이유가 없다. 반대로 미국의사협회처럼 국민이 신뢰하는 전문가단체 주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귀 기울이고 신뢰할 수밖에 없다. 신뢰할만한 전문가단체야말로 강한 조직이다. 지금 의협 모습은 유권자인 의사회원들이 선택한 결과다. 앞으로 변화하거나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그에 맞는 선택을 하면 된다.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의사협회를 선택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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