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 4대강 사업이 국민을 속였다는 감사결과는 놀랍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사실상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지난 7월 10일 발표된 감사원의 세 번째(!) 감사결과가 그렇다. 그러는 사이 4대강 사업의 화려한 목표는 간 데 없고 부작용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 경기도 용인시의 경전철은 혈세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악명이 높다. 건설과정도 문제지만, 처음부터 수요예측을 잘못했고 경제성을 부풀렸다. 2010년 완공되고도 2년 가깝게 운행을 못했던 것은 그렇다 치자. 올해 4월 가까스로 운행을 시작한 후에도 승객은 예상치의 3분의 1 수준이다.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매년 약 200억 원을 운영사에 물어주게 생겼다.

#.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에 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실험이 시작되었다. 당시 의과대학을 의전원으로 바꾸는 것은 고등교육 개혁의 상징으로 치부되었다. 2005년 첫 신입생을 뽑았고, 많을 때는 27개 대학이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실험에 동참했다. 더 많은 대학을 끌어들이기 위해 예산과 교수 정원 증원이라는 당근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2010년 의전원 전환 정책은 실패했다. 다섯 곳만 의전원 체제로 남고 나머지는 다시 의과대학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사례는 모두 ‘정책실패’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실패의 핵심내용과 맥락, 이유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처음 내세운 목표와 가치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명백하다.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실패의 이유를 찾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오늘 논평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따지고 보면 실패의 원인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바로 책임의 문제다.

앞의 세 가지 정책은 이미 큰 비용을 치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재정적으로도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으니 귀한 자원을 엉뚱한 곳에 낭비한 셈이다. 

보통 사람의 경험으론 실패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결정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었으면 파산을 해도 몇 번을 했을 것이다. 큰 처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비난을 받고 평판이 나빠지는 정도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실패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나 집단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4대강 사업을 두고 벌써부터 정책결정을 주도한 사람들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그리 쉬울 것 같지 않다. 기껏해야 서민의 술자리 안주거리 정도로 끝날 공산이 크다.

정책실패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유는 몇 가지로 나뉜다. 첫째, 정책실패를 흔히 “좋은 의도 나쁜 결과”로 호도한다. 의도와 목표는 좋았으나 어쩔 수 없는 요인 때문에 결과가 나빠졌다는 식이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협정(FTA)은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더라도 정책실패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몇 년간은 좋은 구실이 있다. 세계적인 경제상황 때문에 결과적으로 당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고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앞서 말한 의전원 정책의 실패는 의료계의 비협조와 반발이 주범이다.

의도는 좋았다는 데야 모두가 너그러울 수밖에 없다. 공익과 국익을 내세운 것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정책목표는 애당초 (그리고 의도적으로)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자유무역협정의 목표를 보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실패를 불러온 다른 요인이라는 것도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다.     

두 번째, 정책의 책임을 흔히 정치의 문제로 돌린다. 정책결정과 집행은 행정부와 관료의 책임 범위 안에 있지만 정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 4대강 사업, 경전철, 의전원 문제가 다 그렇다.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안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행정부와 관료의 가장 흔한 변명(또는 항변) 가운데 하나다. 부분적으로는 맞다. 이른바 “영혼 없는 관료”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은 또한 그들이 참여하고 이바지해서 만들어낸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를 핑계 삼는 것은 그야말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의 뒤에 숨어서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정책결정의 집단적 의사결정체계와 방식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정치와 행정체계에서 정책결정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무관이나 서기관, 과장 혼자서 정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도 소속 당의 결정에 따랐다고 하고, 장차관도 정부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둘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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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의사결정은 때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굳이 책임을 지우려면 집단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것 말고 다른 이유도 많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대부분의 정책실패는 이유가 복합적이어서 한두 가지에 책임을 돌리기 어렵다. 실제 예측하지 못한 환경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실패를 피할 수 없는 때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정책 내부의 이유, 기술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정책실패의 책임을 어떻게 규정하고 배분하는가 하는 과제였다. 정책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 과정을 문제로 삼는다. 과정과 기술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실제 책임을 묻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앞에서 열거한 이유들은 현실인 동시에 합리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한계를 구실 삼아 책임지기를 피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다른 무엇보다, 책임의 틀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기술적인 데서 책임을 찾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정책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정치적 책임이다. 무릇 실패에 책임을 지라고 말할 때, 그 실패는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정치적 실패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정치적 책임은 한계가 크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책임은 말로 그칠 뿐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많다. 4대강 사업의 감사와 결과를 두고 벌어지는 일을 보면 그러게도 생겼다. 엄중한 책임이 있는 집권당이 마치 남이 한 일처럼 시치미를 떼는 것은 참으로 당혹스럽다. 

그러나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다. 민주적 대표체계 자체가 정치적 책임을 묻는 일차적 통로라면, 가능성은 전적으로 시민과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역량이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달렸다. 사회적 평가나 압력, 공직의 수행과 같은 다른 종류의 정치적 책임도 마찬가지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정치적 책임이라고 해서 행정부와 관료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정책 참여자가 정책결정의 권한과 스스로의 관계를 부정함으로써 책임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 어떤 ‘실무자’의 역할도 기계적이고 맹목적인 것일 수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시민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수행한 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와는 조금 구별되지만 또 한 가지 정치적 책임을 명확하게 해 두어야 하겠다. 그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것으로, 아이리스 영이 말하는 정치적 책임과 비교적 가깝다(아이리스 영 지음.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이후 펴냄, 관련 서평 http://tinyurl.com/l75689g).

그가 말하는 정치적 책임은 구조적 부정의에 관한 것이다. 누구도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할 정도로 잘못하지 않았지만 구조적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부정의가 정치적 책임의 대상이다. 이 때 구조적 원인은 사회 구성원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행위의 배후에 있는 – 또는 그것의 원인이 된 – 것이기도 하다.

영이 말하는 정치적 책임이 정책실패를 따지는 책임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전혀 무관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구조 때문에 생기지만 일상과 습관 속에서 책임이 불분명한 부정의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정치적 책임은 그것이 일어나는 구조를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정책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거나 물을 수 없는 것이 구조라면, 그것을 바꾸는 것 또한 책임에 포함된다.

정치적 책임이란 관점에서, 정책실패는 ‘그들’의 책임인 동시에 ‘우리’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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