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동물의 딜레마 / 마이클 폴란 지음 / 조윤정 옮김 / 다른 세상 펴냄, 2008년

매주 토요일 심야시간에 방영되는 리얼 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야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듯이 이미 우리네 삶에서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문명의 이기를 배제한 삶을 통하여 그 소중함을 느끼게 하거나, 생각없이 소비하고 버리는 생활패턴에 제약을 두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는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인간의 조건>에서 원산지와 생산자가 확인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만을 먹을 수 있다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만약 한 차원 높여 스스로 얻은 식재료, 혹은 스스로 얻은 식재료로 교환한 음식만을 먹을 수 있도록 한다면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요? 당장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를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수렵이나 채집을 해야 끼니를 해결하게 될 터인데, 들이나 산에 나가 채집한 식재료가 독이 없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면 굶는 도리밖에 없겠습니다.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우리가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식품의 재료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제공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유칼립투스나무잎만 먹고사는 코알라와는 달리 인간은 식물, 동물에서 광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코알라는 유칼립투스나무잎의 모양과 냄새만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면 되지만, 채집과 수렵시기의 인간들은 비슷한 모양이나 냄새를 가진 다양한 것들 가운데 독이 있는 것을 가려내야 해를 입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안전이 확보되지 못하면 먹을 수 없다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농경기에는 먹을 수 있는 동물과 식물을 길러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었고, 산업사회에서는 식품분야의 전문가의 판단에 의존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만, 지식의 축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판단과 기억을 공유하는 문화라는 이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즉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하여 축적한 음식에 관한 풍부한 지혜를 문화로 보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는 금기, 의식, 조리법, 예절, 전통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구조 안에서 지혜로운 식사규칙을 규범화해놓았고, 이에 따라 우리는 식사 때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19쪽).

인구가 늘고 식품산업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딜레마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빵과 파스타를 삼가면 고기를 많이 먹으면서도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로버트 엣킨스박사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황제다이어트로 알려진 다이어트법의 이론적 바탕이 된 연구이기도 합니다. 엣킨스박사의 주장은 건강의 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던 스테이크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반면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던 빵과 파스타는 도덕적 오명을 뒤집어쓰고 수많은 빵집과 면류제조회사가 파산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엣킨스박사의 주장은 몇 가지 새로운 역학연구결과로 지지하는 분위기를 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국가적 섭식장애라고 표현하고 식문화를 통하여 극복했던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사례로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이 이념적 주장 때문에 식품으로서의 안전성이 의심받았던 2008년 광우병 파동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에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입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 혹은 쇠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무엇을 먹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하여 땅에서 식탁까지 식재료가 어떻게 생산되고 식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즉 음식사슬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음식사슬은 태양광선으로부터 에너지를 합성할 수 있는 식물로부터 그런 능력이 없는 종들에게로 에너지가 전달되는 시스템입니다. 식품이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 수렵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해결하던 시기로부터 유기적으로 농작물을 키우고 가축을 길러 먹거리로 이용하던 시기를 거쳐 농작물과 가축을 산업적으로 생산하여 먹거리로 만드는 시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먹거리가 발전해온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가면서 음식사슬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제 1부에서 산업적 음식사슬을 먼저 설명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면서 우리가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제2부에서는 저자가 전원적 음식사슬이라고 부르는 산업농업의 대안방식(유기농, 지역농업, 생물학적 농업, 초유기농 등)으로 생산되는 음식사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제 3부에서는 후기 구석기적 음식사슬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렵·채집 음식사슬입니다.

저자는 이들 세 가지 음식사슬 모두에서 경험이 가능한 범위에서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농가에서 옥수수재배와 관련된 노동을 직접하고 축산농가에서 공장식(?)으로 키우는 소를 키우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였는데, 닭을 키우는 농장이나 공장식 도축시스템을 적용하는 도축장은 보안을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는 제한 때문에 직접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유기농 기법으로 경영되는 농장에서 밭작물과 가축을 키우고 도축하는 과정은 직접 경험한 것들 입니다. 마지막으로 맷돼지를 사냥하고 버섯과 소금을 채집하는 경험을 직접하고 그렇게 얻은 식재료를 가지고 직접 조리를 해서 특히 사냥과 채집을 도와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조그만 파티로 음식사슬을 탐구하는 저자의 긴 여행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세 가지 음식사슬 가운데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는 단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후 간식시간에 구수한 냄새가 딱 좋은 찐옥수수를 먹을 수 있는 계절입니다. 강원도 옥수수가 간식거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만, 옥수수에 숨어있는 놀라운 비밀을 바로 <잡식동물의 딜레마>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중미가 원산지인 옥수수는 1492년까지 구세계에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식물인데, 옥수수가 우리의 땅과 몸을 점령해온 이야기는 식물세계의 가장 위대한 성공스토리 가운데 하나라고 저자는 단정합니다. 1621년 봄, 원주민 스콴토로부터 옥수수 재배법을 배운 미국 최초의 청교도 이주민들은 구대륙에서 들고 온 밀이 혹독한 신대륙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유전적 변이성이 뛰어나 새로운 환경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옥수수야말로 답이었던 것입니다. 옥수수의 풍요로움 덕분에 식민지 개척자들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옥수수씨 한 알을 심으면 150알 이상, 많게는 300알까지 생산되었는데, 1950년대 개발된 화학비료가 더해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여기에 유전자재조합방식으로 개발된 신품종은 대단한 생산량을 보장하게 된 것입니다. 병충해 뿐 아니라 밀식재배에 대한 저항성이 뛰어나 1920년 아이오아에서 1에이커당 평균 20부셀(미국도량형으로는 35.2리터) 생산되던 옥수수는 1950년대 70~80부셀로 늘고, 지금은 200부셀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 다큐멘터리 영화 '푸드주식회사'의 한 장면.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옥수수가 자라는 일은 언제나 태양광선을 포획하여 이를 음식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는데, 이제는 상당 부분이 화석연료를 음식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67쪽)

미국대륙에서 옥수수가 넘쳐나게 된 것은 각종 보조금을 포함한 정부 정책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산된 옥수수 가운데 사람들이 직접 먹는 것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 가축사료의 원료가 되거나, 옥수수를 증류하여 에탄올을 만들고, 그리고 옥수수로부터 고과당옥수수시럽을 포함한 다양한 식품첨가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사우스다코타에 있는 블레어목장에서 송아지를 사서 입식하는 방식으로 소를 키우고 도축되는 과정도 뒤쫓았습니다. 소와 같은 반추동물은 풀을 양질의 단백질로 바꾸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의 반추위는 용량이 45갤런이나 되는 발효탱크로서 그 안에 사는 박테리아가 풀을 셀룰로오스로 분해하여 소화할 수 있도록 진화된 것입니다. 이런 소에게 엄청난 양의 옥수수와 단백질 및 지방보충물, 그리고 수많은 새로운 약물을 투입하여 불과 14개월 만에 80파운드에서 1,100파운드로 만드는 것입니다. 20세기 초반 만해도 4~5년 걸리던 일입니다.

농축칼로리라고 할 옥수수를 먹고 자란 소는 금세 살이 찔 뿐 아니라 고기의 마블링이 좋아서 소비자들이 좋아한다는 것인데, 풀을 먹도록 진화된 소가 옥수수 사료만 먹게 되면 고창증과 산중독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이번에는 항생물질을 사료에 첨가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반에 소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하여 동물성 단백으로 만든 육골분을 사료에 첨가하는 방식이 개발되어 광우병이 발생하고 인간에게까지 전달되는 불행한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전원적 음식사슬의 시작은 풀입니다. 저자는 닭과 소, 칠면조, 토끼, 돼지에다 토마토, 단옥수수, 딸기류까지 다양한 농작물과 가축들을 키우고 있는 버지니아의 폴리페이스 농장에서 초유기농 농산물과 고기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생산되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100에이커의 목초지에서 4만 파운드의 쇠고기, 3만 파운드의 돼지고기, 1만 마리의 영계, 1,200마리의 칠면조, 1,000마리의 토끼, 42만개의 달걀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하여 목초지가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더 풍요로워지는데, 풀은 더욱 무성해지고 땅은 더욱 비옥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지렁이 덕분입니다. 폴리페이스 농장주 셀러틴은 우리가 먹을 음식을 생산하는 일이 제로섬 게임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더 많은 먹을거리를 거두어들인다고 해도, 자연이 꼭 더 많은 것을 빼앗긴다고-표토가 줄어들거나 생산력이 줄어들거나 서식 생물이 감소한다고-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나무와 풀, 야생동물 그리고 가축이 모두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방식의 농장경영을 통하여 농장폐기물을 줄이고 인공화학물질의 투여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폴리페이스 농장의 또 다른 특징은 이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은 대부분 농장 인근 지역에서 소비된다는 점입니다. 산업적 음식사슬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아이오아주에 있는 옥수수농장으로부터 캔자스시티의 사육장과 포장공장을 거쳐 이곳저곳에 산재해있는 식품가공업체로 흩어진 식재료가 마린 카운티의 맥도날드 매장에 이르기까지 대략 1,500마일을 이동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대단히 짧은 식품마일리지라고 하겠습니다. 이 농장에서는 농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팔거나 농민장터, 대도시의 구매클럽, 인근의 소규모 상점, 혹은 원하는 레스토랑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농장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신선하다는 점과 도축과정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오래 전 방문했던 도축장에서 소와 돼지가 도축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짐승을 도축하는 모습을 보면 그 고기를 먹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자가 다루지 않고 있는 공장식 도축시스템에 관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게일 아이스니츠의 <도살장>을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독후감을 쓰면서 ‘알고는 먹기 어렵겠네요’라고 제목을 붙였던 것을 보면 저 역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세 번째 주제 ‘수렵과 채집의 음식사슬’은 내가 직접 사냥하고, 채집하고, 재배한 식재료들로만 저녁식사를 준비해보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이런 방식은 오늘날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사냥감, 야생식물이나 버섯도 충분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잡식동물의 축복은 자연에 있는 아주 많은 것들을 모두 먹을 수 있다는데 있는 반면 잡식동물의 저주는 그 가운데서 먹어도 안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365쪽)”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고르든 그것이 산업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주어진 은총이라는 것을 더 이상 애써 떠올릴 필요가 없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름 아니라 세상의 몸이다.”라는 마무리 글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되새깁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