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백신 접종, ‘디테일’이 관건이다

[라포르시안] 정부가 코로나 예방접종 세부계획을 발표했다(질병관리청 보도자료 바로가기). 전보다 좀 더 상세하게 계획을 짰으니 세부라는 말이 맞겠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모든 이의 관심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제쯤 어디서 접종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정도가 되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정부가 모든 역량을 동원한 결과물에 대해 일반 원칙과 원리는 시비하지 않으려 한다. 문제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야말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만큼, 정부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능력과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 <논평>도 비판이라기보다 “일이 잘 되기 위한” 충고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이 어마어마한 일의 몇 가지 특성이다. 백신 접종의 목표로 볼 때 ‘모든 사람’이란 그 범위가 국민, 시민, 경제활동인구, 지역사회, 국내 거주자 등을 넘는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서류가 있든 없든 대상자는 그야말로 보편적이다. 일의 양과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첫째 특성은 유례없이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다. 어떤 백신이 언제 들어올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 많으니, 그때그때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세부 원칙, 방침, 방법을 논의하고 정해야 한다. 2월 말에 들어온다는 5만 명분의 백신이 늦어지거나 예상을 넘어 10만 명분이 들어온다면 누가 어떻게 계획을 바꿀 것인가? 방역 당국과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다 정하기 어렵다.

다른 정책이나 사업과 비교해 백신 접종과정이 길고 복잡한 것도 또 한 가지 특징이다. 예방접종 전반이 다 비슷하기는 하나, 이번에는 불확실성이 크고 전체 인구를 접종대상으로 하는 만큼 ‘과정의 복잡성’이 한층 더하다.

상상해 보라. 인구 3만의 어떤 군, 인구 20만의 어느 도시에 속한 주민이 이 예방접종을 받기까지 도대체 몇 단계를 거쳐야 하고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협력해야 할까. 미리 백신을 확보해 놓고 시스템도 갖추어진 인플루엔자 예방접종과는 완전히 다르다. 의원 등 지역에서 예방접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할 수는 있는데 수요보다 공급이 적을 때, 누가 순서를 정하고 누가 조정이나 관리를 할 것인가. 그 많고 다양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은?

세 번째 특성은 민간이 참여하고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50개 접종센터와 ‘위탁’ 의료기관 대부분은 크든 작든 민간 인력과 시설에 의존해야 한다. 지금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구성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문제는 공권력으로 민간을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시장원리에 따라 정부가 서비스를 ‘구매’해야 한다는 점. 정부가 비용을 치러야 할 뿐 아니라 이른바 공공-민간 사이에는 ‘거래 비용’과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드시 질과 책임 문제가 따를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문제들, 우리는 그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를 걱정한다.

첫째, ‘미시적’ 불평등과 차별의 가능성.

정부는 2분기에 ‘노인·장애인·노숙인 등 시설 입소자 및 종사자’ 약 90만 명을 접종대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보건소를 활용해 방문접종도 한다고 했으니, 불평등이나 차별에 대한 대책으로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시설 입소자가 아닌 노인·장애인·노숙인에 대한 대책도 문제지만, 불평등과 차별은 이런 범주와 호명 이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사람에 대해 각양각색으로, 불평등과 차별은 그야말로 공기처럼 널리 퍼져있는 잠재적 가능성이라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불거질 수 있다.

기존 방식과 생각으로, 즉 하던 대로 하면 불평등과 차별은 필연적이다. 특히 백신 공급의 불확실성과 접종까지의 복잡한 과정, 그리고 여기에 개입하는 많은 행위자까지 고려하면 행정 또는 일반 원칙 차원에서 특정 집단을 분류하는 것만으로는 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둘째, 중앙에서 지방으로, 공공에서 민간으로, 큰 곳에서 작은 곳으로, 책임의 연쇄적인 외주화(아웃소싱).

현행 보건의료체계의 특성 때문에 ‘전국민’ 백신 접종의 전체 과정은 연속적인 분권화가 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는 시도와 시군구를 통해야 하고,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민간 병원과 의원을 동원해야 한다.

2월에 시작한다는 접종은 중앙접종센터 한 곳과 권역 접종센터 세 곳이 중심이 되지만, 결국 다른 병원들과 생활치료센터에도 백신과 접종 책임을 넘겨야 할 것이다. 후반기 이후 들어오는 백신은 더하다. 전국으로 배분할 때 시도 → 시군 → 위탁의료기관 등 접종기관의 순서로 몇 번을 재배분해야 한다.

현재 여건으로는 접종의 ‘분권화’와 ‘외주화’가 불가피하다고 하나, 우리는 접종의 실무 부담과 함께 의사결정과 책임까지 전가되어 사라지는 사태를 걱정한다. 지침과 공문으로 “접종 우선순위에서 OO을 고려하도록 유의할 것” 또는 “적정 인력과 시설을 확보하여 접종의 안전성을 보장할 것”을 명시하는 것으로 끝이면? 자원과 지원이 보장되지 않는 분권화는 위임을 받은 기관이 각자 알아서 하는 것, 결과적으로는 일선, 주변, 최종 단계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문제 삼는 이유로, 인력을 ‘착취’해야 할지도 모르는 보건소와 민간 의료기관의 이해관계는 둘째다. ‘떠넘기기 형’ 분권화와 외주화가 불러올 사태, 즉 생명이나 안전에 관계된 질이 떨어지고 불평등이 더 악화하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문제를 줄이려면 다른 접근이 보완되어야 할 터, 우리는 그나마 가능한 방법은 민주주의와 참여 강화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이야기 뜬금없는 소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와 참여는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정부가 지금 준비하는 과정에서라도 당사자의 목소리와 현장의 요구를 더 듣는 것부터 출발이다.

정부가 발표한 계획에는 접종을 받을 당사자, 특히 잘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 자원이 적고 사정이 좋지 않은 지역, 직접 일해야 할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인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지역 ‘협의체’를 만든다는 정도가 전부다.

이래서는 불평등 등 예방접종의 윤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단순 접종률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백이면 백, 세부적으로는 모두 다른 일들을 파악하고 미리 대비하며 맞는 해결책을 구하기 어렵다.

정부 계획을 보완해 민주주의와 참여의 원리를 바탕으로 ‘과정’을 다시 구성할 것을 촉구한다. 그 과정에 대한 일반 지침과 분권화에 따른 중앙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름과 구조는 어떠하든, 여러 단계의 당사자들이 논의하고 공론을 만들며 같이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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